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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물려받은 「바다의 멋」…"발동선 탐안나요"| 작가 한림화씨, 제주「뗏목어부」한계생옹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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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화는 여름을 타지 않는다. 비록 전시·공연 예술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뒷전에선 개인은 창작·연구활동이 왕성하다. 여름속의 정중동-. 기행에서 서제에 이르기까지 이 여름에 펼쳐지는 문화활동을 점검해 본다.
한여름, 뗏목을 타고 바다 한가운데서 「자리」를 낚는 할아버지가 있다. 제주시 서편은 작은 어촌 내도동에 사는 올해 73세의 한계생할아버지. 소설가 한림화씨가 그를 찾아 현장을 다녀왔다. 그의 얘기를 들어본다 (『전통문화』8월호 게재예정).
여름이 사납게 밀려드는 하지날 새벽 5시쯤.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16㎞ 떨어진 작은 어촌 내도동의 월대포구는 이른 아침부터 사뭇 분주했다. 어부들과 함께 바람이 멎기를 애타게 기다린 지 열흘째 되는 날. 그날 바람은 나뭇잎에도 감겨들지 않았다.
너 나 없이 바쁜 틈에 끼어 한계생할아버지도 테우(제주도의 뗏목)를 타고 포구를 벗어났다.
다 헤진 남방셔츠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앞 지퍼가 고장난 반바지를 입고도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검붉은 팔뚝을 쭉 펴서 노를 잡고 나아가는 할아버지.
월대포구에선 꽤 큰 발동선이 들어앉을 자리조차 없을 만큼 사람을 가득 싣고 물살을 헤치며 테우 허리께를 스쳐지났다. 그 배는 결을 지나면서 신기한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소란을 피웠다. 일본에서 원정온 바다낚시꾼들이었다.
산허리께부터 손톱만큼씩 위로 차차 높아 보이던 한라산이 꼭대기까지 완연히 보일 만큼 그사이 테우는 한 바다로 나와있었다. 바다밑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한 떼의 고기무리가 테우를 앞질러 나갔다.
『아직도 닻을 내릴 바다는 아니여』
할아버지는 계속 노를 저으면서 이야기를 끌어갔다.
할아버지가 첫아들을 본 그해 3월. 『훈장 할으바지 지시를 따르며 목수 한사람을 데리고 혼자서 테우를 꾸몄지.』
원래 테우를 한 척 꾸미려면 통나무가 굵은 것으론 8개, 보통것으론 10개가 든다. 지금부터 50여년전만 해도 음력3월 어느인일을 잡아서 한라산 중턱에 올라 구상나무를 베어다가 테우를 꾸몄었다. 테우중에 으뜸은 구상나무로 꾸민것이지만 일제말기에 접어들어 한라산 벌목을 금한 후부터 주로 대마도 삼나무를 들여다가 썼다.
할아버지는 그때 물려받은 테우를 해마다 약간씩 손질을 하고 통나무를 한통나무를 한 주씩 새것으로 갈아끼우며 오늘가지 지탱해오고 있다.
누구나 테우의 멋을 알고는 발동선이나 거룻배에 눈을 돌릴 수 없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할어버지는 그의 「바다」를 찾았던지 수경을 통해서 바다밑을 살피느라고 이야기를 끊었다. 서너번 노를 저어 물밑을 확인하고 또 노를 저어 테우의 방향만 살짝 바꿔놓기를 여러 차례. 「자리밭」을 가늠하기에 바빴다. 자리떼의 서식처를 제주사람들은 자리밭이라 하는데 자리떼는 조류에 따라 장소를 옮겨다니면서 주로 물 속 암초에 노닌다.
신사임당의 「자리도」그림 정도로나 알려진 자리는 붕어과의 작은 돔이지만 제주사람 입맛에는 옛날부터 길들여져 여름이면 시원한 자리물회로, 겨울부터 다음여름까지는 젓갈로 밥상에 올라 일품 토속맛을 뽐내는 고기다.
할아버지가 테우를 세운 자리밭은 내도동이 빤히 보이는 뭍으로부터 3백m근간이었다.
태양은 바닷물을 데웠다. 할아버지가 구슬땀을 흘리면서 그물을 내릴 준비를 서둘렀다.
혼자하는 그물질은 꽤 힘겨워 보였다. 원래 테우로 자리잡이를 할 경우 두 사람이 한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테우를 함께 탈 배 동서가 없어서도 혼자 일을 하지만 그보다 테우 자체가 워낙 부실해서 두 사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테우로 자리를 잡아 돈벌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노릇이다.
아주 제철이 익어서 자리풍년이라고 소문이 나도 테우로는 하루벌이가 고작 2만원 안팎이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개량그물을 쓰거나 테우를 버리고 발동선을 타보고픈 생각이 전혀 없다. 다 늙어서 돈을 바라는 짓은 남의 눈에 꼴사납게 보일 것이 뻔하고 그저 하루 벌어서 좋아하는 담배나 사 피우고 할머니 감기약값에만 보태 쓰면 그만이다. 봄에는 우럭·어랭이를 낚고 여름엔 자리와 오징어를 잡는다. 가을엔 갈치를 낚으면 심심소일로 시간을 보내다보면 파도가 거친 9월이 닥친다. 그러면 테우를 뭍으로 끌어올릴 때가 되는 것이다.
얼마 후 한라산 꼭대기로 구름이 살살 피어오르며 바람이 잔물결을 일구었다.
『제주바다에서 테우 탈 때 제일 무서운 게 마파람이지.』
할아버지는 황급히 노를 잡았다. 테우가 바람길에 들지 않도록 노를 젓는 요령은 노련한 어부의 생존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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