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전 이관은 빠를수록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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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양중세 그림 가운데는「탄탈로스」를 그린 작품이 더러 있다. 몸이 늪에 빠진채 물을 보고도 못 마시고, 눈앞에 과일이 있어도 못 따먹는, 영원한 갈증과 굶주림의 벌을 받는 희랍신화 「탄탈로스」왕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것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에 관한 정부의 정책은 흡사「탄탈로스」왕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먼 앞을 내다보지 못한채 낡은 제도의 늪속에서 허위적거리는 느낌이다.
지난 5일에 열렸던 문예진흥원의 미술대전에 관한 공청회만 하더라도 그렇다. 과거에도 국전의 제도개혁안이 수년간 논란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제도개혁으로 국전의 체질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관전의 형태에서 탈바꿈시켜 문예진흥원으로 이관시켜 이제 3년째다. 한나라의 미술정책이 한갓 낡은 제도의 전시회 하나에 얽매어 설왕설래해야 할지 의문이다. 현실은 현실에 맞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고, 대국적으로 장래를 내다보는 길을 취해야 마땅하다.
미술대전의 민간이관문제 공청회에서 드러난 미술계의 의견은 대충 3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이미 사단법인체가 구성되어 전국적으로 4천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한국미협이 당연히 대전을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이고, 둘째는 과거국전과 인연이 깊은 국전출신 작가회가 주축이 되어 법인체를 구성해서 인수하자는 의견이며, 또 하나는 미협이나 작가회등 기존 단체와 관계가 없는 제3의 기구 (법인체)를 새로이 출범시켜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와같은 의견은 모두 그 나름대로의 논리와 설득력이 있는 주장들이다. 그러나 작가회가 지적한 것처럼 미협은 미술인들의 친목과 권익단체이기 때문에 대전을 주관하게되면 오히려 회원간의 친목을 깨뜨릴 우려가 있고 또 미협 이사장선거가 과열될 조짐마저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는 국전출신작가회도 마찬가지다. 「국전」이란 이름이 사라진지 오래인데 새삼 그 이름을 들고 나오는 것도 새로운「민전」에 어울리지 않으려니와 이들의 대부분이 미협의 회원이거나 고문이라는 점도 문제가 있다.
따라서 미협이나 작가회 어느 한쪽이 주관하게될 경우 회원끼리의 반목이 생길 것이고 이렇게 되면 화단의 불화는 과거 어느때보다도 심화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사실이다. 결국 화단의 결속과 함께 우리의 미술문화를 보다 다양한 방식과 높은 수준으로 이끄는 길은 제3기구의 탄생밖에는 없다는 결론이다.
지나친 낙관론인지는 몰라도 이날 공청회의 분위기를 잘 관찰해보면 이 방법을 택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도 같다. 왜냐하면 미협측도 대전운영위원회의 구성은 화단의 원로에서부터 신인에 이르는 광범위한 의견을 반영한다는 대목이 있고, 작가회측 역시 범화단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계의 중론이 이러할진대 문예진흥원은 더이상 미술대전을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시기상조라는 일부의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관을 몇 년 뒤로 늦추면 늦출수록 그에 따르는 잡음과 부작용은 더욱 확산될 것이며 미술인들의 자율의지와 역량 또한 감소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1663년「루이」14세에 의해 창설된 프랑스의 관전 「르·살롱」이 지나친 권위주의와 형식주의에 얽매어 발전을 못하다가 결국 1881년 프랑스 작가협회로 이관되었고, 그나마 20세기에 들어와서는「살롱·도톤」 「살롱·드·메」 또는「앙데팡당」전 같은 개성있는 각종 민전의 출현으로 빛을 잃은 것은 그 좋은 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미술대전을 과감하게 민간에 이관시키고 보다 높은 차원의 미술문화육성대책을 강구해야 할것이다.
오늘날 미국이나 서구의 미술선진국들이 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벌이는 각종 미술운동은 거개가 미술관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국제적인 대규모 기획전은 물론 작가의 교류 같은 사업은 우리가 당장 본받을만한 것들이다.
이러한 행사를 주관하려면 우선 다양한 성격을 지닌 미술관이 많아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프랑스에는 공공 미술관만도 3백여개가 되고 미국에는 뉴욕의 한 도시에 1백20개의 미술관이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크고 작은 미술관이 전국에 3백80여개가 산재해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국제적 수준을 지닌 미술관은 불과 2개밖에 없고 그나마 하나뿐인 국립현대미술관의 85년 예산은 4억3천만원으로 대부분 경상비에 불과하며 작품의 구입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특히 요원양성은 더욱 시급한 과제다.
86년에는 우리도 번듯한 미술관을 하나 마련한다. 새 국립현대미술관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미술대전 같은 낡은 제도에 얽매이지 말고 진정한 미술정책 내지 미술관육성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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