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효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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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평소 간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가 요즘 들어 부쩍 자주 피곤해하시자 그이는 나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병원에 가보라고 벌써부터 여러차례 말해왔다. 그러나 살림하는 주부의 입장으로 적당한 시간을 내기가 그리쉽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어제서야 어머니를 모시고 막 집을 나서려는데 친구들 서너명이 또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데 어머니께서『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으니 할 얘기도 많을테지』하시며『이왕 나선 길이니 혼자서 갔다오마』고 하셨다.
병원에 다녀오신 어머니께서는『별 이상은 없다더라』고 하셨다. 저녁때 퇴근한 그이에게 어머니 말씀을 그대로 전했더니『어머니가 병세를 사실대로 말씀하신 건지 아닌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참 천하 태평이구먼』하며 화를 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무책임했던 것 같다. 내가 어머니께 소홀했던 탓으로 행여 중대한 결과를 놓치지나 않았는지 걱정도 되고, 어머니께서 말씀은 그렇게 하셨어도 내심 섭섭해하고 계시지나 않을까도 마음에 걸렸다. 이래저래 마음이 개운치 않아 오늘은 몰래 병원으로 갔다. 어머니의 진찰권으로 진료신청을 해놓고 차례를 기다려 담당의사를 만났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사실대로 털어놓자 그 의사는 웃으면서 정말 가족들에게 자신의 병세를 숨기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차트를 들여다보면서 어머니에 대한 진찰결과를 설명해주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병세는 크게 염려할 정도가 아니며 영양만 충분히 섭취하면 괜찮을 거라는 얘기였다.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쇠고기 한근과 쇠간 반근을 샀다. 고기를 양념에 재워서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며『내일 아침 그이와 아이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다 가버리고 나면 어머니께 구워드려야지』하고 별렀다. 나의 잘못을 얼버무리려는 얄팍한 효도인 것 같아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나의 죄송한 마음이 도저히 씻어지지 않아서였다.

<대구시 수성구 만촌2동 995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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