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미묘해진 盧·鄭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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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의 늦은 밤. 공조 파기 선언을 한 정몽준(鄭夢準) 국민통합21 대표의 평창동 집으로 황급히 달려가던 노무현(盧武鉉)후보와 정대철(鄭大哲)선대위원장이 탄 차가 광화문에서 5분간 멈춰섰다.

"鄭대표가 지금 집에 없다"는 박상천(朴相千)의원 측의 연락이 왔기 때문. 鄭위원장은 "그래도 가야 한다"고 盧후보를 다그쳤다. 당사 출발 때부터 "내가 꼭 갈 필요가 있느냐"고 주저했던 盧후보가 다시 "안 가는 게 낫겠다"고 차에서 내렸다.

두살 위인 鄭위원장이 盧후보에게 벼락 같이 화를 냈다. "이 사람아. 당신은 이제 자기 혼자 몸이 아니잖아…. 盧후보, 그럼 안돼." 결국 盧후보는 이끌려 가야 했다. 鄭대표 집의 굳게 닫힌 문 앞에 머쓱하게 서 있던 TV 속의 盧후보 모습은 다음날 지지층의 표를 결집시켰다.

'대선자금 2백억원 파문'의 한가운데 서있는 민주당 鄭대표와 盧대통령. 두 사람은 3金정치의 '비주류 저항아'라는 정치적 공감대를 지녀 왔다. 鄭대표가 경성 사건으로 구속됐던 1998년 민주당 盧의원이 鄭대표 면회를 갔다.

盧의원은 "형님이나 나나 DJ가 크게 예뻐하지 않으니 이렇게 고생하는 게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盧대통령과 鄭대표는 평소 서로를 형님.아우로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평민당 시절 DJ에 반기를 든 91년 정치발전연구회(政發硏)의 정대철 대표나 국민회의 행을 거부한 통추(統推) 주역 盧대통령의 집권은 '비주류 연합군의 첫 승리'로 불렸다.

후보 시절 盧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쳤던 지난해 9월 선대위원장으로 가세한 鄭대표는 盧대통령의 명분얻기에 도움을 줬다.

민주당은 鄭대표의 선친인 정일형(鄭一亨)박사와 당시 공동위원장이었던 조순형(趙舜衡)의원의 선친 조병옥(趙炳玉)박사를 계승한 대목을 늘 '정통성의 증거'로 내세웠던 때문이다.

鄭대표 개인적으로는 '주류로의 도약'이라는 정치역정의 마지막 목표를 위해 盧후보에게 도박을 건 듯했다. 盧후보를 설득, 의원회관의 비노(非盧).반노(反盧)의원들을 설득하러 다닌 鄭대표였다.

지금이야 돈의 출처가 궁금하지만 "鄭위원장이 자비 4천4백만원을 들여 선대위 참석자들의 노트북을 사줬다"는 게 당내 미담(美談)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鄭의원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뛰고 있다"는 얘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鄭대표에 대한 盧대통령의 시각은 좀 다른 것 같다. 盧대통령의 한 최측근 의원은 사석에서 "盧대통령은 김원기 고문에게는 인간적 신뢰가 있다. 그러나 鄭대표는 야심을 지닌 한명의 정치인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은 자기 이해를 따를 정치인"이라는 얘기다.

이런 盧대통령과 鄭대표의 관계가 지금 기로를 맞았다. 鄭대표 측은 "수사 상황을 다 알고 있었을 청와대가 이럴 수 있느냐"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다.

"도덕성이 이 정권의 유일한 밑천"이라고 했던 盧대통령은 굿모닝 시티의 정치권 뇌물이 주로 서민들의 돈이라는 점에서 "여론이 좋지 않다"고 보고받고 있다. "특등공신을 내쳐야 하나, 그럼 당은, 원칙과 여론은 어떻게 하나". 盧대통령의 관저엔 침묵만이 흐른다고 한다.

최 훈 청와대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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