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35주년…이번엔 뭔가 결실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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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쟁이 터지던 그해 늦가을께의 어느날 오후였다고 기억된다. 그때 필자는 참 민망하게도 유엔군의 포로라는 한심한 처지가 되어 부산진역에서 거제리 임시수용소쪽을 향해 끌려가고 있었다. 누르무레한 인민군 내의바람의 몰골이었다.
역을 출발하고 나서 족히20분쯤은 지나서였다고 생각된다. 이때 50대중반쯤 되어 보이는 웬 사내 하나가 번들번들 광기어린 두 눈알을 휘번득이며, 시익시익 더운 김을 코로 내뿜으며 우리들 옆을 비껴지나가다 말고 후다닥 대열 속으로 덮쳐들었다.
『이 빨갱이놈의 새끼덜, 이동물만도 못한 새끼덜, 더럽다 더러워. 카악 퇘 카악 퇘』사내는 이러면서 그렇게 덮쳐들었다.
당시 필자는 우리 식으로 꼭 스무살이었는데, 그때의 그암울하던 심정이, 스무살의 그 분노와 오열이, 혹은 그 스무살의 허무주의가 지금도 감지되듯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뭐라고? 나더러 발갱이라고? 오오, 맙소사. 이 늙은 것이, 오오. 그래 백보를 양보하여 내가 빨갱이라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무엇인가. 당신의 나이를 쉰다섯쯤으로 잡고, 1910년 왜놈들의 말발굽에 이 강토가 짓밟힐 때 그 왜군을 막지못한 책임이 당시 겨우 열다섯정도 되었을 당신에게는 없었다고 할 수있다. 그러나 이전쟁, 이전쟁에 대한 책임은 해방당시 40대후반 쯤이었을 당신들에게있다.
열강을 들먹이고, 공산주의·공산당을 들먹여도 그건 말장 헛소리에 지나지않는다. 당신들이 목숨을 걸고 단합하여 『안된다』했으면 되는 것이다. 38선으로 나라가 두동강이로 갈라지게 생겼을 때 당신들은 모두 죽었어야 옳았다. 그 다음에야 당신들은 발언권을 가지게된다』
그 뒤 다 알다시피 그 사이에는 다시 35년이라는 긴세월의 틈이 끼어들었다.
이제 가령 어떤 계기가 주어져서 35년전의 필자의 나이와 똑같은 나이에 이른 어느 대학생 하나가 이런 질문을 해왔다고 가정해보기로 하자.
『그래 좋다. 35년전의 그전쟁에 대하여는 그 책임이 당시 겨우 스무살 정도들이었을 당신들에게는 없었다고 해두기로 한다. 그러나 방금전에 당신들도 확인했듯이 그사이에는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다시 흘러갔다. 한번 대답해 보라. 그 사이에 당신들은 무엇을 했으며, 그 결과로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것은 그러면 누구의 책임인가』
참 기가 막힌다. 결국 우리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아무런 답변자료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딱한 자각 때문만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6·25의 문제란 곧 분단의 문제·통일의 문제인 터이고, 또한 그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요만큼의 의문의 여지조차 용납이 안되는 지상의명제로 취급이 되어오는 바인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오히려 그와같은 절대성의 측면 때문에 어떤 권력지향주의자들에게는 정권유지용으로 악용이 되기도 했고, 그 결과 공연히 속빈 말들만이 풍성하게 난무했을뿐 실제적으로는 누구도 여기에 힘을 경주해온 바가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니 그렇게 우리는 참으로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아직 더 많이 부정적이고 따라서 더 기다려 보아야 알 일이긴 하지만 다행히 지난 8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제1차 고향방문단과 가무단의 교환방문을 추진하기로 합의를 본바있다.
별 성과는 보이지 않지만 경제회담도 이미 두번 열렸으며 국회회담도 쌍방간에 논의가 되고 있는 중이다. 기필코 이번만은 무엇인가 열매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세대에게 부과된 우리의 엄숙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강용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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