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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떠 온다, 강~강~수월래~…모든 사람 마음에 달이 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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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기획 인터뷰 통도사 수좌 성파 스님


고려청자의 청색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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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이 옻칠을 해서 만든 달항아리 작품 ‘우주’를 들고 있다. 뒤에 보이는 큰 항아리에는 용을 그려 넣었다. [양산=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멀뚱멀뚱 앉아 있는데 답이 날아왔다. “하늘빛이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그게 ‘극락(極樂)’이다. 고려청자를 자세히 봐라. 국화도 없고, 돌멩이도 없다. 들짐승도 없다. 땅이라면 그런 게 있을 거다. 왜 그렇겠나. 청색이 하늘(극락)이라서 없는 거다. 대신 구름이 있고, 학이 있다. 운학(雲鶴)이다. 구름은 허공에 있을 수 있다. 옛사람들은 학이 하늘에서 최고 멀리 날아가는 동물이라 여겼다. 청잣빛은 극락인데, 그곳에 갈 수 있는 게 구름과 학뿐이었다. 그러니 고려청자가 뭘 그리고 있나. ‘불국토(佛國土)’다. 고려시대에는 모두가 불교 문화였다.”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성파(性坡·77) 스님을 만났다. 영축총림 통도사의 수좌이자 조계종 원로의원인 스님은 도예 작업도 한다. 앞에 놓인 탁자 위에도 직접 빚은 달항아리가 여럿 놓여 있었다. 옻염료를 사용해 색감과 질감이 독특했다. 둥그런 지구 같기도 하고, 은하계 행성 같기도 했다. 성파 스님은 “이 작품들의 제목은 모두 ‘우주’다”고 했다. 고려청자의 ‘불국토’와 달항아리의 ‘우주’, 둘은 묘하게 통했다.

왜 달항아리인가.
“달처럼 둥그렇지 않나. 달을 마음에 많이 비유한다. 절집에서는 만월(滿月·보름달)을 원각(圓覺·원만한 깨달음)으로 본다. 달 중에서도 정월 보름달이 제일 크다. 옛날에는 정월 보름날에 강강수월래(강강술래)를 했다. ‘강강수월래’에는 깊은 불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
‘강강수월래’에 불교적 의미라니. 그게 뭔가.
“저 하늘의 달이 내 마음의 강에도 도장을 찍듯이 ‘꽝’ 찍힌다는 뜻이다. 그래서 ‘江江水月來(강강수월래)’다. 강마다, 강마다 수월(水月)이 온다는 말이다. 나는 밝다, 나는 밝다. 그런 밝음을 터득하자는 거다. 그래서 대원각(大圓覺)이다. 대보름날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면서 원을 그리지 않나. 그게 만월이고 대원각이다. 그런 만월이 강에만 뜨는 게 아니다. 내 마음에도 떠야 한다.”

성파 스님은 “불교인뿐만 아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달이 뜨라는 거다”며 즉석에서 노래를 한 소절 불렀다. “달 떠 온다, 달 떠 온다, 월~출 동산에 달 떠 온다, 강~강~수월래~.” 스님은 말했다. “이건 불교 이전, 기독교 이전, 종교가 나기 이전의 이야기라. 이건.”

스님의 거처에서 나와 불화(佛畵) 작업실로 내려갔다. 길 양옆에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작업실로 들어서니 성파 스님에게서 옻칠 불화를 배운 제자들이 있었다. 불화는 벽에 세워져 있었다. 옻염료를 이용해 그리는 중이었다. 색감도 선명하고, 입체감도 있고, 상당히 모던한 느낌이었다.

예부터 내려오는 불화는 늘 보존이 문제다. 비용도 상당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색감도 떨어진다. 그래서 성파 스님이 찾아낸 게 옻칠이다. 절집에서는 옛날부터 발우(밥그릇)에 옻칠을 해 왔다. 스님은 그걸 미술로 확장했다. “세계 불화 미술에서 옻으로 불화를 그린 건 내가 처음이다. 서양에도 없고, 중국과 일본에도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옻나무가 아예 없다. 아시아에도 한국·중국·일본·베트남에만 있다.

국내에 있는 불교 탱화는 모두 32종, 156점이다. 성파 스님은 옻칠을 이용해 156점 모두를 다시 그려내고 있다. 단순한 모사가 아니다. 옻에다 색소를 넣어 컬러 옻칠을 한다. 1000년 불교 미술에 대한 재창조 작업이다.

성파 스님은 “옻칠 불화는 500년, 1000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 습기로 인한 변형도 없다. 작품에 대한 보존비도 안 든다. 게다가 1000년 후에도 이 색감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156점의 옻칠 탱화가 완성되면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된다. 그럼 거대한 불교미술 갤러리가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불화뿐만 아니다. 성파 스님은 민화 작업도 한다. 역시 옻칠을 한다. 작품을 하나 꺼냈다. ‘수기맹호도(睡起猛虎圖)’. 잠을 자다가 일어난 호랑이 그림이다. 민화에 있는 호랑이를 재창조했다. 도자대장경에 불화에 민화, 불상, 단청, 도예, 들꽃축제, 시조 문학상, 백일장, 장 담그기, 전통 사찰음식 보존 등 작업의 양과 범위가 어마어마하다.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나.
“손을 펴봐라. 이걸 뭐라고 하노. 손등이다. 뒤집어 봐라. 그게 뭐꼬. 손바닥이다. 그럼 이건 또 뭐라고 하노. 손가락이다. 이 전체가 뭐지. 손이다. 거 봐라. 한 가지라. 그게 다 하나라고. 하하하.”
부처님 오신 날이다. 독자들에게 ‘딱 한 구절’ 건넨다면.
“‘호안우보(虎眼牛步)’라. 범의 눈, 소의 걸음이다. 호랑이 눈은 한 번 스치면 그 안에 다 들어온다. 빠져나가는 게 없다. 황소의 걸음은 어떤가. 빠르지 않다. 느리다. 그런데 말보다 황소가 더 멀리 간다. 짐승 중에서 황소가 가장 멀리 간다고 하지 않나. 다른 동물은 가다 쉬어야 하는데, 황소는 꾸준히 걸어간다. 호안우보. 그걸 가슴에 품고 일을 하면 된다. 그럼 아무리 어려운 일도 뚫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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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BOX] 연꽃 위 물새가 물고기 노려보는 민화 그린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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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의 민화에는 연(蓮)을 그린 작품이 있다. 불교에서 ‘연꽃’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초기 경전 『수타니파타』에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라는 구절도 있다. “연꽃은 물속에 있어도 물에 젖지 않는다. 우리의 자성(自性)도, 심성(心性)도 탁한 세상에 살지만 오염이 안 돼야 한다. 그걸 표현한 거다.”

그림에는 ‘연꽃’만 있지 않았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도 있었다. 연 위에 앉은 물새가 그걸 노려보고 있다. 먹잇감이다. 깨달음의 풍경에 왜 먹고 먹히는 관계를 집어넣었을까. “요놈이 물고기를 노리고 있어. 잡아먹는 걸 그리면 좀 잔인하잖아. 그래서 요만큼 떼어놓았지. 그래도 잡아먹을까 말까 하는 긴장감이 흐르지. ‘용사혼잡(龍蛇混雜)’이라. 용도 있고 뱀도 있는 법이다. 세상은 혼잡이거든. 부처와 중생이 그렇게 공존하는 거다. 그게 이 세상이다.” 성파 스님은 그게 하나의 세계라고 했다. 거기에는 성(聖)과 속(俗), 극락(極樂)과 사바(娑婆·중생세계)가 본래 둘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양산=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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