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회수 위해 신병확보 20일간 "쉬쉬"|이흥순씨 도피 외자 어떻게 되찾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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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스위스은행 싱가포르지점비밀구좌에 들어있는 70만 달러를 회수해라-.』
대림산업 전 해외담당부사장 이흥순씨의 외화도피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은 이씨의 신병을 확보한 뒤 20일에 걸친 「70만 달러 긴급회수작전」을 극비리에 펴왔다.
외화회수가 급선무이기는 하나 상대방은 「예금주 보호」를 내세워 예금주가 수사 받고있다는 사실을 알 경우 인출을 해주지 않는 등 까다롭기로 유명한 스위스은행이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씨를 설득, 검찰청에서 현지에 있는 스위스인에게 이씨가 직접 전화를 걸어 인출해주도록 요청하고 수사관대신대리인을 두 번씩이나 싱가포르에 보내는 등 애를 먹었다.

<입금>
이씨는 72년부터 동남아일대의 대림산업 사업본부장 등을 지내면서 스위스은행 싱가포르지점 간부인X씨 (스위스인) 와 친해졌다. 이씨는 83년8윌 커미션으로 받은 20만 달러를 들고 X씨를 찾아가 계약서만 작성하고 「하워드·스트롱」이란 가명으로 비밀구좌를 개설했다.
스위스은행의 비밀구좌는 예금통장 없는 철저한 신용거래인 것이 특징.
특히 은행간부를 통해 입금시킨 경우 본인이 그 간부에게 예금잔고를 물어보고 인출액수만 얘기하면 즉시 인출해 준다는 것.
이씨는 그후 두 차례에 걸쳐 41만 달러를 추가 예금했으나 이자관리·예금기간경신 등은 X씨가 맡아 줘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84년1월 이씨가 대림본사부사장으로 전근되자 예금계약서는 싱가포르은행 귀중품 보관함에 맡기고 열쇠는 현지교민인 K목사에게 보관시킨 후 맨몸으로 귀국했다.


수사과정 중 도피시킨 외화를 모두 국내에 반입시키겠다는 이씨의 동의를 받은 검찰은 한국외환은행 싱가포르지점을 통해 스위스은행의 전화번호를 확인한 뒤 회수작전에 나섰다.
검찰의 조사를 받고있던 이씨는 지난달28일 검찰청조사실에서 전화 다이얼을 직접 돌려 은행의 대리인인 스위스인 X씨와 통화를 했다.
이=입금된 돈이 얼마나 되나.
X=원금 61만 달러와 이자 등 70만 달러다.
이=급히 돈이 필요한데 대리인을 보내 찾을 수 있는가.
X=물론이다. 대리인 이름과 여권번호만 알려달라.
이씨는 이때 자신이 조사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대림산업에 근무할 당시 부하직원으로 있던 Y씨를 대리인으로 지정해주었다.
스위스은행은 비밀구좌에 가입한 예금주가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있는 경우 본인의 의사라 볼 수 없다며 예금을 지급치 않기 때문.

<대리인 파견>
수사관 대신 Y씨가 싱가포르에 도착한 것은 지난달 30일. 그러나 위임장이 은행양식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인줄에 실패했다.
싱가포르와 서울을 다시 오가며 위임장을 만들어 인출에 성공한 것은 지난5일. 그러나 은행측은 현금으로 주지 않고 지급지가 스위스은행 뉴욕지점으로 된 수표를 건네줬다.
입금당시 화폐가 미국화폐였다는 이유였다.
서울의 지시를 받은 대리인 Y씨는 이 수표를 한국외환은행 싱가포르지점에 추심을 의뢰했고 결국 70만 달러는 스위스은행 뉴욕지점을 거쳐 10일하오 외환은행 싱가포르지점에 입금됐다. 70만 달러는 11일 상오 텔렉스를 통해 국내외환은행본점입금에 성공했다.

<이씨 주변>
인천이 고향으로 서울대공대를 졸업했으나 영어실력이 뛰어나 경남거창에서 한때 영어교사를 지냈다.
65년 대림산업에 입사, 순탄하게 승진, 20년만에 부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슬하에 남매가 있으나 모두 미국유학을 보내 69평짜리 아파트에는 부부만 살고 있다. <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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