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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영란법’ 취지 유지하며 합리적 집행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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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될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을 두고 정부가 9일 시행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공직자나 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이 직무 관련인에게 3만원 이상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까지만 받을 수 있다.

이는 농·수·축산업 등 관련 업계의 요구를 정부가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는 식비를 3만원, 경조사비를 5만원까지로 제한한 현행 공무원 행동 강령보다 허용 금액 상한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말 언론사 간부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이) 경제를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밝힌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김영란법의 근본 취지에 찬성한다.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공직 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획기적 시도다.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풍토를 바꿀 이례적 사건”이라고 칭송했을 정도다. 법에 따르면 공직자와 그 배우자는 한번에 100만원이나 1년에 300만원 넘는 금품(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처벌받고, 연좌제적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워낙 뿌리가 깊은 공직사회 부패상을 발본색원하려면 이처럼 ‘제로 톨러런스(무관용)’에 기초한 법 시행은 불가피하다.

김영란법은 이렇게 옳은 법이지만 완벽한 법은 아니다. 미국(10만원)·일본(5만원) 등 선진국은 공직자 금품 수수 상한선을 10만원 안팎으로 못 박고 있다. 이런 선례를 참고해 합리적인 상한선을 법으로 정해 합리적으로 집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에서 정작 고쳐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단지 시행령으로 금액 상한선만 올려 편법·탈법 소지를 만들 게 아니라 법 내용을 보다 세밀하고 엄정하게 다듬는 게 올바른 접근이다.

우선 사립학교·언론사 등 민간 영역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점이다. 법의 형평성이나 언론 자유 차원에서 부적절하고 적용 대상자도 300만 명이 넘어 법 집행의 실효성이 담보되기 어렵다. 과감히 수정해 국민들에게 엉뚱한 불편을 주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반면 부패 소지가 큰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에겐 광범위한 예외조항을 통해 면죄부를 준 점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의원이 자녀 특채를 청탁하는 등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행위를 금지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누락된 게 대표적이다. 이 조항은 김영란법의 핵심 내용이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 담합으로 삭제돼 윤후덕·신기남 의원의 자녀 취업·로스쿨 구제 청탁 의혹이 불거질 토양을 제공했다.

김영란법은 민간 영역까지 적용 대상으로 포함시킨 점과 관련해 지난해 국회 통과 직후 헌법소원이 청구된 상태다. 하지만 법 시행까지 5개월도 남지 않았는데도 헌법재판소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시행령은 물론 법까지 고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헌재의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