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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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던 언니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이따금 형부직장의 사보며 여성지·신문 등에 투고한다. 그런 식으로 학교 때의 재능을 잠재우지 않더니 얼마 전엔 주부백일장에 나가겠다며 날더러 하루만 조카들을 봐달라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시외전화를 했다.
아침 일찍부터 언니가 몸단장을 할 동안 형부도 언니의 외출준비로 부산했다. 언니의 도장과 주민등록증·볼펜·책받침 등을 챙기고 주방에서 도시락을 가져다 신문지로 싸서 가방에 넣어 주시더니 백일장이 열리는 곳까지 언니를 바래다주겠다며 집을 나섰다.
오후 5시쯤 되자 아침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뒷머리가 아프다며 힘없이 들어서는 언니의 모습에어 나는 「떨어졌구나」하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느 때보다 일찍 퇴근하신 형부를 보자 언니는 낯선 사람을 대하듯 멋적은 얼굴로 말했다.
『장원은 고사하고 입상도 못했어요,』 『꼭 장원하란 법이 어딨어. 참가하는데 뜻이 있지. 난 말야, 당신이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면서도 글쓰려는 태도와 그런 고상한 취미를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오늘 힘들었지? 자, 이거 받아.』
형부는 서류봉투를 내밀며 다른 쪽 손으로는 언니의 등을 토닥거려 주셨다. 금세 눈물이 그렁해진 눈으로 형부를 올려다보던 언니가 조심스레 봉투에서 꺼내 든 것은 어느 여류작가의 에세이집 두 권이었다.
아내의 취미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의 마음씀에 한없이 감사할 줄 아는 아내·부부란 어떤 값진 물질보다 그렇듯 자상한 마음 때문에 더욱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마냥 행복해 뵈는 언니와 형부를 보며 나도 절로 즐거워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느덧 까닭 모를 심술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바람에 나는 그만 안고 있던 돌박이 조카의 엉덩이를 꼬집고 말았다. <충남 대전시 동구 읍내동266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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