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현 선처 호소문 (요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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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00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고 둘 사이에 김△△라는 이름의 딸까지 얻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김△△의 존재는 철저하게 숨겨져 왔다.

그런데 김△△가 어느 때부터인가 질환으로 문제가 생겼다. 김△△의 이런 상태가 지속되자 김00는 병원비를 부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런데 1997년 12월, 김 대통령이 당선되고 비슷한 시기, 김△△가 자신의 이야기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면서 김△△의 존재가 조금씩 밖으로 드러나게 됐다. 그러자 병원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김00는 대통령과의 관계를 함구하는 대가로 막대한 경제적 원조를 요구했다.

김00의 요구가 본격화된 시기는 2000년 초로, 김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 스캔들로 대통령의 도덕성이 재평가받게 된다면 국정 혼란은 물론 노벨 평화상 수상 역시 불투명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때문에 국정원 측은 김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 의원(새천년민주당)을 찾아가 의논했으나 그는 이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국정원은 김00가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줘야만 한다고 판단했지만 국정원 예산을 유용할 수 없어 별도의 자금 지원책을 찾아야만 했다. 당시 국정원 제2차장은 공기업 사장을 통해 진승현을 정성홍 당시 국정원 경제과장에게 소개했다. 당시 진승현은 자신의 돈이 국가를 위해 쓰일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며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후 진승현은 3억5000만원을 정 과장을 통해 김00에게 주었다. 도중에 사망한 엄익준 차장의 뒤를 이어 국정원 제2차장이 된 김은성이 이 사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런데 2001년 3월, 갑자기 김00가 자살했다. 김00의 장례식은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김승훈 신부(2003년 10월 사망)의 집전으로 이뤄졌으며 모든 절차는 국정원에 의해 진행됐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김은성 차장이 임동원 국정원장과 함께 김홍일 의원을 다시 찾아가 의논하려 했지만 김 의원은 일절 관계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던 중, 2000년 11월 전후하여 조사가 시작된 열린금고 불법 대출 사건에 진승현이 연루됐다. 국정원 측은 보답 차원에서 그를 구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검찰조사 과정에서 드러나 사건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호소문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딸 부분만 발췌했으며 딸과 그녀의 생모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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