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병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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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는 원래 영어숙어다. 영국경제학자 「월리엄· 비버리지」경은 1943년 3윌 22일자 런던 타임지에 바로 그 숙어를 제목으로 인용한 논문을 발표했다.『「요람에서 무덤까지」 의 영국 사회보장에 관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 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영국은 그 후 「비버리지플랜」을 받아 들여 1945년부터 평생사회보장제를 실시했다. 직업, 지위, 수임, 연령, 성에 관계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복지다.
연금보조와 무료 의료시술은 물론 결혼수당, 임신수당, 아동수당, 과부수당에서 장례수당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보장」하는 제도다.
1940년대 만해도 그 비용은 GDP (국내총생산)의 4%에 불과했다. 영국이 그만큼 부자 나라이기도 했지만, 복지의 운과 질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40년을 지내오는 동안 영국의 사회보장비는 나라 재산의 30%, GDP의 11%로 불어났다. 국방이나 교육의 3∼4배에 달하는 액수다.
문제는 「영국병」 이다. 나라의 돈이 비생산적인 쪽으로 빠져나가니 국력은 수척될 수 밖에 없다. 산업혁명 무렵 영국사람들의 그 부지런하고 성실하던 미덕은 사라지고 저마다「놀고 보자」 는 쪽에 더 흥미를 갖게 되었다.
결국 영국의 사회복지는 제 닭 잡아먹고 남의 닭까지도 넘보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국가예산의 3분의1이나 되는 돈은 하늘이 아니라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와야 한다.
지금 영국 국민의 조세부담률과 사회보장 부담률은 47·8%에 달한다. 월급의 거의 절반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일하는 사람 혼자서 일 안하고 놀고 먹는 2·3명의 생활비를 대주어야 할 지경이 되었다.
그 쯤 되면 일하는 기쁨도 보람도 없을 것이다. 차라리 나도 놀고 보자는 생각이 절로 들것 같다.
그렇게 놀아도 얼마동안은 실업수당이 나오고, 병원 가는 비용 거저고, 답답할 것이 없다. 내내 그럴 수는 없지만 상당기간은 빈둥빈둥 편안히 살수 있다. 이것이 영국병이다.
「철의 나비」로 불리는 「대처」수상은 보다 못해 칼을 빼어 들었다. 영국병 수술에 나셨다. 국가보조 연금제를 폐지하고 전액 자기부담 연금제로 바꾸는 대수술을 단행할 계획이다.
사회복지가 지나치면 보약의 효능보다는 마약의 효능이 나타난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놀고 먹는 복지」아닌,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위한 「활기찬 복지」야말로 국가의 이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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