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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또 항공기 충돌 위기, 활주로가 동네 주차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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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형 여객기 두 대가 충돌할 뻔한 일이 발생했다. 비슷한 상황이 올 들어서만 두 차례 일어났다는 점에서 단순 실수로 넘기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인천공항 활주로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행 싱가포르항공 여객기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충돌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이날 오후 5시50분쯤 싱가포르항공 여객기가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를 시속 90~100㎞ 속도로 달리던 중 활주로 반대편 끝에 대항항공 여객기가 나타난 것이다. 관제탑의 긴급 정지 지시로 급제동을 할 수 있었지만 당시 두 여객기의 거리는 1.7㎞에 불과했다. 싱가포르항공 여객기는 급제동으로 타이어에 펑크가 났고, 출발이 19시간 지연됐다. 당시 싱가포르항공엔 186명, 대한항공엔 188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던 상태에서 여객기들이 충돌했다면 대형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비슷한 일이 지난 3월 18일 청주공항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대한항공 여객기가 청주공항에 착륙해 활주로를 달리고 있는데 중국 남방항공 여객기가 정지선을 넘어 활주로를 침범한 것이다. 당시 대한항공 조종사가 기체를 활주로 왼쪽으로 붙여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청주공항에선 지난달 30일 활주로를 함께 사용하는 공군 전투비행단 부대 내에서 있었던 지역 기관장 만찬에 참석한 여성이 승용차를 몰고 활주로에 진입하는 사고도 있었다. 작은 실수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활주로가 얼마나 허투루 통제·관리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인천공항의 경우 대한항공 조종사의 실수일 가능성이 크다. 대한항공 측도 자사 조종사가 관제탑 지시를 따르지 않았음을 인정했다고 한다.

활주로 진·출입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제탑 지시에 따라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조종사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국토교통부와 인천공항은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는 한편 보다 엄격한 규정을 만드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라의 관문인 공항 활주로가 동네 주차장처럼 허술하게 이용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