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매거진M] 국민 말괄량이 자두가 나가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올해 5월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은 모두 여섯 편. 그중 유일한 국산 애니메이션이 있으니, 바로 ‘극장판 안녕 자두야’(5월 4일 개봉, 손석우 감독)다. TV에선 ‘시청률의 제왕’으로 통하는 인기 작품이지만 극장 개봉은 처음이다. 열 살배기 왈가닥 소녀 자두(여민정·목소리 출연)와 가족의 공감 가는 일상사가 매력 포인트. 2011년 SBS와 케이블 채널 투니버스에서 첫선을 보일 때부터 ‘뽀롱뽀롱 뽀로로’ 시리즈(2003~)에 대적할 라이벌로 꼽혀 왔다. 해외에서도 인기다. 태국·중국·홍콩·대만 등지에도 수출됐고, 특히 대만 디즈니 채널에선 시청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여전히 척박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안녕 자두야’는 어떻게 우뚝 서게 되었을까. 제작사 아툰즈의 이진희 대표와 원작 만화가 이빈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국산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가 사랑받는 비결

기사 이미지

[중앙DB]

-19년째 연재 중인 원작 만화, 스토리의 힘

1990년대 얘기를 먼저 해 보자. 만화가 이빈이 “순정만화잡지 종류가 열 개도 넘었다”고 추억하는 호시절 말이다. 학교에서 교과서보다 만화책을 더 닳도록 빌려 보던 그 시절, 여자아이들이 용돈을 쪼개 사 모은 것이 월간 순정만화잡지였다. 1988년 최초의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가 발간된 뒤 ‘미르’ ‘댕기’ ‘나나’ ‘윙크’ ‘밍크’ ‘이슈’ 등이 차례로 세대 교체했다. 1997년 성인 독자층을 겨냥한 ‘나인’과 함께 탄생한 게 바로 ‘파티’다. 서울문화사가 기존 순정만화 독자층보다 어린 초등학교 저학년을 겨냥해 ‘밍크’를 먼저 선보였고, ‘파티’는 그 대항마로 학산문화사가 펴낸 후발 주자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웹툰이 급부상하면서 출판 만화잡지의 시대는 빠르게 저물어 갔다. 2016년 현재, ‘파티’는 서점가에 깔리는 유일한 월간 순정만화잡지로 남았다. 그리고 이 잡지 창간 첫해부터 지금까지 연재돼 온 만화가 바로 이빈의 『안녕?! 자두야!!』다.

이빈이 1970~80년대 자신의 유년기를 토대로 그린 추억담이 주된 내용. 혼식 장려 운동 탓에 쌀밥만 싸 온 아이들이 도시락 검사 때면 친구에게 보리쌀을 빌려 쌀밥에 심고, 채변 검사 봉투를 채우느라 아랫배에 힘주던 당시 풍경은 어린 독자에겐 신기하고, 성인 독자에겐 추억이 된 것들이었다. 자두가 막내아들 애기만 예뻐하는 엄마와 티격 대는 시시콜콜한 일상사는 폭넓은 독자층을 끌어들였다. 지난해까지 출간된 단행본은 총 스물세 권. 국내 10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투니버스 PD로 시작해 20년 남짓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지켜봐 온 이진희 대표가 『안녕?! 자두야!!』에 주목한 이유가 바로 “철저하게 검증받은 스토리의 힘”이었다.

기사 이미지

[중앙DB]

-롱런하는 가족 애니메이션이 되기까지

이진희 대표는 2000년 제작사 아툰즈 설립 초기부터 순수 창작물로 시장 개척에 나섰다. 창립작 ‘재동이’ 시리즈는 여섯 살 유치원생 재동이가 부모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10년간 그리는 대기획. 그는 ‘안녕 자두야’ 애니메이션도 최소 시즌10까지 나올 만한 저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동시대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엔 지금 시점의 일상사가 더 유리할 터. 2008년 라이선스 계약을 하며 이 대표는 이야기의 배경을 1970~80년대에서 현대로 옮겨 왔다. 시대적 특성이 드러나는 에피소드보다 자두 삼남매와 여장부 엄마(양정화·목소리 출연)의 다사다난한 가족사에 집중했다.

‘안녕 자두야’ 시리즈가 롱런의 토대를 마련한 데에는 베테랑 제작진의 파트너십이 큰 몫을 했다. 원작자 이빈은 연재 만화를 통해 풍부한 원안을 제공하는 한편, 애니메이션 버전의 바뀐 세계관을 존중하며 스토리 감수에 적극 참여했다. 연출엔 ‘재동이’ 시리즈부터 아툰즈와 함께해 온 손석우 감독이 나섰다. “아이를 키우듯 성장시키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애니메이션·캐릭터 사업의 특성상 안정적인 자본력은 필수. 대기업인 CJ E&M 애니메이션 사업본부와 시나리오 단계부터 주제가·후반 작업까지 함께하며 협력 관계를 다져 나갔다. 그리고 2011년 7월, 드디어 시즌1이 첫 방영됐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있어 2011년은 고무적인 해였다. 영화사 명필름의 ‘마당을 나온 암탉’(오성윤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으로 관객 200만 명을 동원해 흥행을 거뒀다. EBS에선 ‘로보카 폴리’가 ‘뽀롱뽀롱 뽀로로’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며 국산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과시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양과 질이 향상됐다는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안녕 자두야’는 안착했다. 투니버스에서 3주 만에 4~14세 타깃 시청률이 4.47%(AGB닐슨미디어리서치)까지 올랐는데, 이는 케이블 채널에선 드물게 높은 기록이다.

최근엔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 진출에 나섰다. CJ E&M이 중국 최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유쿠·투도와 VOD 온라인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게임·체험 전시·제과 제품 등 ‘안녕 자두야’ 관련 상품은 200여 종. “예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던 가족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게 제일 큰 의미”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시즌10까지 만드는 게 목표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한국 애니메이션·캐릭터 산업이 국내 콘텐트 산업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진희 대표는 “15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인지도 있는 웹툰·드라마 등을 활용해 다양한 타깃의 애니메이션 제작이 시도되는 등 양적 성장이 눈에 띕니다. 문제로 지적됐던 시나리오 등의 프리프러덕션(Pre-production) 역시 월등하게 좋아졌죠.”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움은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제작되는 TV 애니메이션은 한 에피소드가 10분 안팎. 짧은 호흡에 익숙해진 제작진에게 극장판 장편 스토리를 개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극장판 안녕 자두야’는 가족과 놀이공원에 간 자두가 오래된 동화책 속 세상으로 빨려 들면서 펼쳐지는 모험담. 상영 시간 75분 중 절반가량은 ‘신데렐라’에서 착안한 먹보 자두렐라의 이야기, 나머지 절반은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에 들어간 자두 삼남매의 탈출기를 그린다. 잘 알려진 동화들을 자두 캐릭터와 버무려 익숙하게 즐기게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 호흡의 스토리로 온전한 장편의 재미를 주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 극장판으로 털어 내겠다”고 이 대표는 다짐했다.

향상된 제작 능력에 비해 취약한 투자 구조와 수익 모델을 개선하는 것도 숙제로 남았다. 애니메이션 특성상 2~3년 안에 수익을 내기가 힘들고, 여러 경로로 제작비를 조달하는 탓에 작품의 성과가 나도 정작 제작사에 돌아가는 수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진희 대표는 말한다. “누가 더 오래 버티냐의 싸움이죠. 꾸준히 활로를 개척해 자두가 더 오래 우리 곁에 살아 있게 하고 싶어요.”

<‘안녕 자두야’의 매력 포인트>
1997년부터 연재 중인 스테디셀러 원작 만화의 검증된 스토리, 탄탄해요.
공주 캐릭터 일색인 기존 애니메이션과 달리 나와 닮은 여자아이의 평범한 가족 이야기, 공감돼요.
중소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대기업 그리고 원작자의 오랜 파트너십, 든든해요.

가족과의 일상에서 영감 얻는다
원작 만화가 이빈

기사 이미지

[중앙DB]

-만화 『안녕?! 자두야!!』를 연재한 지 올해로 19년째다. “원래 본업은 순정만화가다. 『안녕?! 자두야!!』는 내 유년기를 기록하는 수필처럼 그려 왔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사랑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작사 아툰즈의 이진희 대표가 정말 고생 많이 했다.”

-20대에 연재를 시작해서 열한 살배기 아들의 엄마가 됐는데. “연재 초기엔 자두의 시점에서 어릴 적 추억을 더듬어 가며 그렸는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자연히 자두 엄마의 시점으로 옮겨 가게 되더라. 요즘은 나와 아들의 일상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아들은 제일 든든한 팬이기도 하다.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다음 장이 궁금하다며 빨리 그리라고 재촉한다.”

-시리즈에 애착이 많을 듯하다. “이 만화를 그릴 때만큼은 돌아가신 부모님과 가족이 옛날 모습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기분이다. 어릴 적 엄마한테 뭘 사달라고 떼쓰면 ‘나를 팔아 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셨거든. 그걸 만화에 썼는데 애니메이션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동생들이 보고 살아생전 엄마 같았다고 얘기하더라.”

-다음 극장판이 제작된다면 원하는 스토리는. “지금 구상 중인 번외편이 극장판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 자두와 엄마가 서로 초등학교 시절로 타임슬립하는 얘기다. 어릴 적에 샛별공주·밍키 같은 요술공주 시리즈를 정말 좋아해서, 요술공주 자두 특별판도 재밌을 것 같다.”

-『안녕?! 자두야!!』 연재는 계속될까. “힘 닿는 데까지 해 볼 생각이다. ‘극장판 안녕 자두야’도 많이들 보러 와주면 좋겠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