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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이승만과 트럼프

중앙선데이

입력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 미국 주류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트럼프 쇼크'가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도 상륙하고 있습니다. 연초 3% 지지로 캠페인을 시작할 때만 해도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던 관측이 100% 잘못된 전망이었다는게 드러난 이상 '트럼프 대통령' 가능성도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닐테니 말입니다.? '중1 수준'이라는 조롱을 받는 트럼프가 막말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력 후보들을 차례로 넉 다운시키고 공화당 후보에까지 오른 건 미국사회의 '정신적 주류'인 백인 남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커지는 양극화에 분노하는 이들에게 일찌감치 '고기밥'을 던져놓은 트럼프의 용의주도함에 혀를 내두를 뿐입니다.


?? 문제는 '낚시밥'에 한국과 관련있는 재료들이 여럿 있다는 점입니다. 주한미군 방위비 100% 한국 부담,주한미군 철수 가능성,한·일의 핵 무장 용인,한미 FTA 재협상 같은 것들 말입니다.? 물론 트럼프의 공약이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대통령 맘대로 모든 걸 좌지우지 할 수도 없거니와 국익을 꼼꼼히 따져본 후 외교안보 전략을 수립해나가는 시스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미국 유권자들이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미치광이가 있는 북한에 맞서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정치적 수사에 열광하고 있는 걸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트럼프 못지않게 트럼프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트럼프 쇼크'는 우리에게도 한미동맹의 가치와 현주소에 대해 되돌아봐야 하는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지난 60여년 대한민국의 성장사(成長史)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그 가치와 의미를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아온 측면이 있습니다. 마치 평소엔 의식하지 못하다가 황사나 미세먼지가 닥칠 때 깨끗한 공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 한미동맹은 저절로 얻어진 건 아닙니다. 우선 탄생부터 그렇습니다. 이는 '이승만의 작품'입니다. 국제 정세 변화를 꿰뚫어 본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건 도박끝에 얻어낸 과실입니다.? 당초 미국은 한국전이 끝나자 미군을 오키나와로 철수시키려 했습니다. 남한엔 유엔군만 남겨둔다는 계획이었죠. 그러자 이 대통령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없이는 휴전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단독으로 북진통일에 나서겠다"고 미국을 '협박'합니다. 심지어? 유엔군 사령관 동의없이 독단으로 2만명이 넘는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몽니'를 부리기도 합니다.'북한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휴전 협정에 훼방놓을 수밖에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겁니다.? 당시 미국 조야와 국민들의 반대도 거셌습니다."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이래 미국이 어느 나라와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적이 없다"는 반발을 살 정도로 미국인들의 정서를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북진통일을 막는 대가로 ▶미군 주둔 ▶7억달러 규모(1955년 기준)의 경제·군사 원조 ▶전투기(100대)·군함(79척) 제공에 이르는 '패키지 선물 세트'를 한국에 줘야했으니까요. 오죽하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때 강짜를 부리는 이 대통령을 몰아내고 군정을 실시하려는 계획까지 검토했겠습니까.? ①미군의 남한 주둔 ②북한 공격시 미군의 자동개입(trip-wire)? ③양국이 원하는 한 조약을 계속 유지한다는 내용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처럼 이승만의 혜안과 정치적 결단이 낳은 산물입니다.


? 한켠으론 자주 국방 논란이 일고 있지만,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미국의 힘을 빌려 막으면서 산업화·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 한미 FTA,한미 통화 스와프,국제 외교무대에서의 미국의 지원등 한미 동맹은 다양한 분야의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면서 효용을 배가시켰습니다. 반면 팍팍해진 생활에 짜증난 미국인들의 불만을 사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한국이 동맹의 과실만 따먹고 미국을 백안시한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불만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 시간이 지나면 모든게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한미동맹도 62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양국민의 인식 변화,국제 정치·경제 환경의 변화와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당장 전문직 비자(E4) 1만5000개 발급법안이 몇년째 미국 의회에서 표류하고 있는게 한 예입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에 내주는 E4 비자는 무제한 체류가 가능할뿐 아니라 가족의 취업까지도 가능한 만능 비자여서 청년 실업 해소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2013년 발의된 이래 미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똥이 튈까봐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기 때문이죠.


? 올 연말 미국 대선의 승자가 가려지면 내년은 한국 대선입니다. 소문엔 차기 대권을 꿈꾸는 여야 정치인이 줄잡아 20여명은 된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한미 FTA 재협상,환율·통상 압박의 파고에 대한 전략은 무엇인지,미국 조야와 국민들을 설득할 인적·물적 대비는 돼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한미 FTA 협약서에 버젓이 나와있는 E4 비자 연 1만5000개 확보를 위한 복안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 이번주 중앙SUNDAY는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기획 기사를 마련했습니다.?? 또 어버이날(8일)을 맞아 박노해 시인의 아내이자,국산 라디오 1호를 만든 엔지니어 김해수씨의 딸인 김진주씨를 인터뷰했습니다. 산업화의 상징인 아버지와 민주화 세력의 표상인 남편 사이에서 기구한 '경계인의 삶'을 살아온 김진주씨의 이야기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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