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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려고 따라간 남학생이 다 운동권…야학이 인생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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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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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사범 사상 최장기 수배자, 25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한 여성, 진보정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이력을 본 대중들은 그를 보며 ‘심다르크(심상정+잔다르크)’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나 심 대표를 가까이 두고 본 사람들은 내면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겉보기엔 ‘심다르크’지만 알고 보면 ‘심블리(심상정+러블리)’라는 얘기다.

[젊어진 수요일] 심상정과 함께한 신문콘서트 시즌2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청년들과 허심탄회한 속내를 나누기 위해 2일 오후 7시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열린 중앙일보 신문콘서트 시즌2를 찾았다. 5월 신문콘서트의 주제는 ‘2030과 한국 정치’였다. 심 대표는 “젊은 유권자들을 가까이서 만난다는 생각에 설렜다”고 말했다. 4·13 총선 직후인 만큼 관객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이날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렸지만 관객들은 공연 한 시간 전부터 자리를 가득 메웠다.

 # 낭만 대학생활 꿈꾸던 심블리=‘She may be the face I can’t forget…(그녀는 내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에요).’

심상정 대표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영화 ‘노팅힐’의 주제곡 ‘She’가 흘렀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무대 위 스크린에 심 대표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긴 생머리에 종아리가 드러나는 원피스. 대입 재수 끝에 합격 통지를 받은 직후 울릉도에 놀러가는 배에서 찍힌 ‘스무 살 심상정’의 모습이었다.

“심블리, 예뻐요!” 객석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심 대표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마이크를 잡고 그가 건넨 첫마디는 이랬다.

“혹시 신문콘서트 기사를 수애씨가 볼까 봐 걱정이 되긴 하는데…. 실은 제가 일명 수애로 통한답니다. 하하.”

‘심블리’ 심상정 대표와의 신문콘서트는 그의 청춘 시절을 추억하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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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일 서울 롤링홀에서 열린 신문콘서트에서 “평소에 만나는 청년들의 눈빛에서 ‘나도 취직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어요’라는 열망을 자주 느꼈다”며 “그럴수록 현실을 빨리 바꿔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더라”고 말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젊은 시절엔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유명했을 것 같다.
“대학 때는 7cm보다 낮은 힐은 신지 않았다. 긴 머리, 스커트, 하이힐만 고집했다. 운동권 학생들은 왜 청바지에 운동화, 짧은 머리로 다니는지 이해를 못했다. 운동권이 돼보니 하이힐을 신고는 뛸 수도 없고, 스커트 입고 아스팔트에 앉을 수도 없고, 최루가스 맞으니 긴 머리가 엉망이 된다는 걸 알게 되더라.”
-운동권과는 안 어울리는 외모였겠다.
“원래 절대 운동권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애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따라간 남자는 전부 학회 소속이고 운동권이더라. 그 친구와 사귀고 싶어 발을 들였다가 연애는 못하고 내가 운동권 학생이 됐다. 처음에는 긴 머리에 스커트 입고 시위대를 쫓아다니니 사진이 얼마나 많이 찍혔겠나. 학생처장이 시위 현장에서 찍힌 내 사진을 잔뜩 쌓아놓고 운동권은 아닌 것 같고 긴가민가해서 불러다 묻더라. 운동권 애인 뒀냐고.”
그게 운동권이 된 계기인가.
“시작은 야학이었다. 공장이나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교육한 건데 가르치다 보니 그 친구들이 사는 현장엘 가보고 싶더라. 그래서 농활(농촌활동)처럼 방학 기간 공장 생활을 경험하는 공활을 했고, 그 뒤로 25년간 노동운동을 하게 됐다. 공장 안에 대한민국의 현실이 모두 들어 있더라.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노동자들이 헌법상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교육자로서 하고자 했던 걸 공장에서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어머니가 걱정이 많으셨겠다. 갑자기 노동운동을 한다니.
“구로동맹파업 주모자로 찍혀 9년간 수배생활을 했다. 여성 정치사범 최장기 수배자다. 경찰이 계속 찾아와 딸 찾아내라고 해 어머니가 안면마비를 겪기도 했다. 수배 기간 동안 어머니를 보러 가겠다고 전했더니 어머니가 “큰일난다. 엄마는 평생 못 봐도 된다. 절대 오지 마라”라고 하셨다더라. 너무 미안해 혼자 밤새 펑펑 울었다.”

#정치인 심상정=평생 노동운동에 몸을 담은 그가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17대 총선에 당선되면서부터다. 그는 그 뒤로 진보정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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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소울차일드의 보컬 진실(왼쪽)씨가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진실씨는 이날 영화 아저씨의 OST ‘Dear’ 등 세 곡을 불렀다.

경기도지사에 도전했다가 중도 사퇴했고, 2012년 대선에서도 야권 단일화 명분으로 중도에 그만뒀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야권 단일화’ 전략이 진보정당의 확장을 가로막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중도 사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민심에 부합한 선택을 했으니까. 다만 진보정당을 더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해선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이번 20대 총선을 계기로 후보 단일화와 야권연대는 원점에서부터 재검토될 것이다. 소수정당 후보의 사퇴가 반복되는 야권연대는 정당의 미래 성장을 잠식한다. 희생을 강요하면 좋은 정치인이 성장할 수 없다.”
야권연대 없이 진보정당이 유력 정당이 될 수 있나.
“백년 정당의 초석을 놓겠다. 그게 제 정치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핵심 활동가 500명 정도를 육성해 2018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당 재건에 나설 예정이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할 것이다.”
수권정당이 될 자신이 있다는 건가.
“유치장에 6개월 있던 시절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읽었다. 거기에 ‘정당은 현대의 군주다’라는 말에 영감을 받았다. 유능하고 책임 있는 정부를 준비하는 조직으로 정당이 서야 한다. 정치 하면서 ‘큰 당 가서 하라’는 얘길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길을 고집하는 이유는 좋은 정당을 꼭 만들어 보고 싶어서다. 이제 단순히 희망뿐 아니라 확고한 의지와 프로그램을 갖게 됐다. 기대해 달라.”
좋은 정당이 뭔가.
“재벌에게 돈 받지 않고 진성당원들의 당비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당, 유능한 정책 제일 민생 정당이다. 우리는 기득권에 당당히 맞서는 도덕적 정당이다. 낡은 진보가 아니라 한국형 복지정당을 추구한다.”
최전방 철책선에 가면서 안보에 관심을 가지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진보정당이 노동문제나 민생, 경제문제에는 관심이 있지만 외교안보는 무지·무능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많이 있었다. 그런 인식을 과감하게 혁파할 필요가 있다. 안보는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안보 포퓰리즘과 싸우며 진짜 안보를 세우는 역할을 하겠다.”
결국 확고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어떤 노력을 하나.
“민주노동당 시절 한 직장인이 ‘나의 욕망을 거세하는 정당’이라고 표현한 걸 들었다. 진보정당 지지자는 멋을 부려도 안 되고 돈이 많아도 안 되고.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혁신이 일상화된 젊은 정당을 만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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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말아요 그대’를 열창하는 심상정 대표.

#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상정씨=관객과의 질의응답을 앞두고 심 대표가 마이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여러분을 위한 노래를 준비했다”며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관객들이 손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이어 객석에선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하순철(28)씨=“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는 이해관계나 문제 해결 능력에 앞서 ‘따르고 싶은 리더’를 뽑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대표님이 생각하는 리더십은 무엇인가요.”

▶심 대표=“국민들이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심상정은 믿는다고 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리더십의 핵심은 신뢰라고 생각해요.”

‘심상정 대표를 네 글자로 표현하면?’이라는 질문도 있었다. 사회를 맡은 정강현 기자가 “인지상정-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상정씨”라고 답해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심 대표는 공연을 마무리하면서 “20대 국회에서 야당 내 야당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겠다”며 “국민들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국회 내에 전달하는 것이 정의당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콘서트 1부에선 중앙일보 정치부 김경희·안효성 기자가 ‘4·13 총선에 나타난 젊은 표심’이란 주제로 관객과의 대화를 나눴다. 독자 김영천(26)씨는 “평소 쓰고 싶었는데 못 써서 아쉬운 기사는 없나”라고 물었다. 김경희 기자는 “정치부 기자들과 일반 독자 간 관심이 서로 다르다는 걸 자주 느낀다”며 “김무성 대표가 어부바해 준 사람 중 당선자와 낙선자를 전수조사해 ‘어부바의 저주’라는 기사를 쓰면서 ‘이런 기사를 누가 읽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는 독자 반응이 쏟아져 놀랐다”고 답했다.

1부가 끝나고 매드소울차일드의 보컬 진실씨가 영화 ‘아저씨’의 OST ‘Dear’ 등 세 곡의 노래를 불러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실씨는 “저도 정치가 변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투표를 한 2030 세대”라고 말했다.

채윤경·조한대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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