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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내비게이션] 금융학과, 금융상품 설계부터 코딩까지…AI 금융시대 경쟁력 배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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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학과는 주가연계증권인 ELS 상품 등 실제 금융상품을 분석하는 실습이 많다. 이런 과정엔 수학이 많이 응용된다.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학생들이 파생상품의 원리를 분석하며 적절한 가격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관심 있는 대학과 학과를 소개하는 ‘학과 내비게이션’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늘면서 진학을 희망하는 학과에 대한 탐구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여전히 대학의 명성이나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합니다. ‘열려라 공부’에서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돕기 위해 학과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관련 진로가 무엇이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3회는 금융학과입니다.

인공지능이 애널리스트 대신하는 시대
투자 옥석 가리는 상위 10% 전문가 돼야
경영학과와 달리 금융 특화 교육에 주력

통계·재무·회계·투자 등 경제 이론 수업
3학년부터 실제 금융상품 작동 원리 배워
수학적 사고력과 외국어 능력은 필수

대표적인 억대 연봉 직업으로 꼽히는 금융맨은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다. 주식·채권·파생상품 등 금융상품을 다루는 금융업은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을 요구한다. 경제 흐름을 조망하고 수많은 정보 중 옥석을 가려내 기업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해내는 분석력·판단력·추론력 등 다방면의 소양을 요구한다. 상경 계열 직군 중에서도 제네럴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의 영역이라는 얘기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결합한 ‘로보어드바이저’ 등 최신 IT 기술이 가장 빠르게 접목되는 산업 영역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에 맞춰 많은 대학은 학부에서부터 금융 전문 지식을 갖춘 전문가 배출을 위해 금융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학과에선 무엇을 배우는지, 졸업 후 어떤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AI 등장으로 급변하는 금융업계

최근 금융업계의 화두는 인공지능·로봇 등 최신 IT 기술과의 접목이다. 얼마 전 이세돌9단과 세기의 대결을 펼친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AlphaGo)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금융업 내부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미 많은 금융기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서비스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로, 컴퓨터가 고도화된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처리 기술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투자자의 자산 관리를 해주는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 은행·증권사 창구에서 이뤄지던 면대면 상담과 자산 관리를 이런 인공지능 서비스가 빠르게 대체해간다.

인공지능·빅데이터 처리 기술의 발전은 금융산업 전반을 뒤흔든다. 시장에서 정보가 유통되는 속도·범위·파급력은 혁신적이다. 오지열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시장에 어떤 정보가 흘러들었을 때 주가에 반영되기까지 45초가 걸렸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주가 반영이 이뤄진다”며 “수백만의 1초 단위로 주식·채권 매매가 이뤄질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고 규모가 거대해졌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핵심은 탄탄한 기초실력이다. 경제 동향을 분석하고 시장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분석력, 수많은 정보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통찰력과 직관력, 그리고 고도로 전문화된 금융 지식이 필요하다. 많은 대학이 일반적인 경영학과의 틀을 넘어 투자·재무·회계 등에 특화된 금융학과를 개설해 운영하는 이유다. 엄찬영 한양대 파이낸스경영 학과장은 “일반적인 경영학과가 마케팅·생산관리·조직론·경영정보시스템·재무·회계 등 경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지식을 두루 섭렵한다면 금융학과는 재무 기초를 닦으면서 주식·채권·옵션·선물 등 금융상품에 특화해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경영학과가 얕고 넓게 공부하는 제너럴리스트를 길러낸다면 금융학과는 금융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를 길러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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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글로벌 이슈 분석 수업

금융 특화 인재에게 경제·경영 기초 지식은 필수다. 심규철 아주대 금융공학 학과장은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즉각 반영되는 주식 시장은 경기를 미리 읽는 선행 지표로 불리기도 한다”며 “금융상품을 다루는 인재로서 경제 동향을 분석하는 능력은 필수적인 소양”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금융학과에선 1·2학년 때 미시·거시 경제이론과 기초금융통계, 회계학원론 등 경제·경영의 기본 과목을 수강한다. 중앙대 글로벌금융전공 3학년 이진창(24)씨는 “보통 경제·경영학과에서 3~4학년 때 들을 과목을 금융학과에선 1~2학년 때 압축적으로 듣는다”며 “1학년부터 학업량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경제·경영 기본 과목을 들으면서 ‘글로벌 금융 이슈’ ‘금융시장의 이해’와 같은 수업을 통해 금융 관련 기초 지식을 함께 배양한다. 아주대는 매 학기 ‘글로벌 금융 이슈’를 진행한다. 중간·기말고사 기간을 제외하고 평일 오전 7시부터 1시간반 동안 매일 진행하는 특별 수업이다. 국내 경제·금융 신문은 물론 월스트리트·파이낸셜타임스·뉴욕타임스·블룸버그 등 해외 저널을 읽으면서 전 세계 경제·금융 이슈를 분석하고 리포트를 쓰는 수업이다. 심 학과장은 “졸업 전에 총 6학기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며 “급변하는 경제 흐름을 좇고 실무적인 분석 능력을 기르기 위한 수업이다”고 설명했다. 아주대 금융공학 4학년 이성림(24)씨는 “매일 오전 7시까지 학교에 와야 한다는 게 처음엔 정말 고역이었다”며 “하지만 2년 정도 꾸준하게 해보니 실물 경제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이 길러졌다”고 말했다.

중앙대 글로벌금융전공 학생들은 매해 여름 방학을 이용해 9박10일 동안 홍콩·싱가포르·미국 등 세계 금융 선진국으로 해외 연수를 떠난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세계 과학기술계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재무·금융 특강 등을 들었다. 정준영 중앙대 글로벌금융전공 교수는 “학생들은 항공료만 부담하고 나머지 비용은 모두 학교에서 지원한다”며 “세계 금융을 이끄는 중심 국가의 현지 기업과 증권사·자산운용사 등을 방문해 선진화된 금융 시스템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고 소개했다. 중앙대 글로벌금융전공 4학년 노경진(23)씨는 “자산관리사로 세계 1위인 블랙락과 공유경제로 유명한 에어비엔비라는 회사가 인상 깊었다”며 “자금이 부족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 등 세계 금융의 최신 흐름을 생생하게 느낄 좋은 기회였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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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고용정보원 대졸자 직업이동경로조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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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실습처럼 실제 사례 다뤄

금융공학의 핵심은 주식·채권·옵션 등 각종 금융상품의 현재 가치와 가격을 정확하게 계산해내는 일이다. 금융공학자는 신용도에 따른 담보대출의 적절한 이자율을 계산한다든가 환율 변동에 따른 수출입 기업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금융상품을 설계하는 등 산업 전반에 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는 금융의 핵심 브레인이다. 각종 금융상품을 설계하는 퀀트, 주식·채권 등 매매를 중개하는 트레이더, 기업 가치와 시장 동향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등 금융권 종사자들은 실물 경제를 뒷받침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어떤 직종으로 진출하든 복잡한 금융상품을 이해하고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은 공통적으로 요구된다. 금융학과에서는 3학년 이상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금융 특화 수업들이 진행된다. 계량금융·고급투자론·대체투자론·기업재무론·파생증권론·재무금융시계열분석·헤지펀드·벤처투자론 등 고급 금융공학 관련 수업이 이뤄진다. 이런 수업들을 통해 콜·풋옵션 등 금융상품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설계하는 능력을 기른다. 아주대 금융공학과를 졸업하고 한 외국계기업 자산운용사의 채권운용팀에 근무 중인 정유진(25)씨는 “주가연계증권인 ELS 상품은 기초하는 자산이 국내 주식이냐 외국 주식이냐에 따라 이자율이 달라진다”며 “금융학과에서는 이렇게 실제 판매되는 다양한 ELS 상품 등 각종 금융상품을 해체해보고 작동 원리를 증명하는 등 상품 사례 분석이 많다”고 설명했다.

교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실습 기회도 있다. 한양대는 3·4학년 과정에서 ‘학부연구학점’이라는 수업을 진행한다. 교수가 한 학기 동안 연구할 주제를 공지하면 학생 신청을 받아 연구 보조로 참여할 기회를 열어주는 수업이다. 수업은 1:1로 진행된다. 학생은 교수 연구에 참여해 실습 기회를 넓히고, 동시에 관심 분야의 논문을 작성해간다. 교수는 연구에 도움을 얻으면서 학생 논문을 지도해준다. ‘국내 주식 시장의 정보비대칭성이 국내 투자자와 외국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 중인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4학년 김진규(22)씨는 “약 20억 개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며 “이공계 학과의 실험·실습수업처럼 금융학과에는 실제 금융 흐름을 분석하면서 실무 능력을 기르는 수업이 많다”고 말했다.

"수학을 싫어하면 적응하기 힘들어"

금융상품을 분석하고 설계하는 과정은 고도의 수학적 사고력이 요구된다. 구형건 아주대 금융공학과 교수는 “금융상품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1970~80년대 미국 월가는 나사(NASA) 출신 과학자들을 대거 채용했다”며 “금융공학은 로켓 사이언스라고 불릴 정도로 수학적 사고력을 중요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금융학과 1·2학년 기초 과정에서 선형대수학·금융수학·통계학 등 수학 과목을 필수로 가르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학과 재학생들은 “수학을 싫어하면 금융학과에 입학해 적응하기 힘들다”며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적용해보는 일을 즐겁게 느끼는 학생들이 금융학과에 입학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아주대 금융공학과 4학년 이승훈(25)씨는 “2학년까지 내가 수학과를 다니고 있는 건지 착각할 정도로 수학을 많이 배운다”며 “고학년에 올라가서는 금융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대표적인 모델인 블랙숄즈 모형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증명하면서 금융상품 설계에 적용한다”고 말했다.

수학적 소양은 R프로그램·매트랩(Matlab) 등 통계프로그램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울 때 빛을 발한다. 고급금융통계·비즈니스데이터분석·금융시계열분석 등의 수업에선 수천만 건이 넘는 방대한 금융거래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금융시장의 흐름을 분석한다. 매트랩은 공학계열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데, 금융학과에서는 주식·채권 등 금융상품의 현재 가치를 분석하는 데 쓴다.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3학년 왕희지(21)씨는 “삼성·애플 등 실제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면서 주식의 과대·과소평가 등 기업 가치를 분석한다”며 “이자율·만기 등 주식·채권의 미래 가치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변수로 두고 현재의 기업 가치를 분석해낸다”고 말했다.

고급투자론·대체투자론·벤처투자론과 같은 수업에서는 부동산·유가·광물 등 다양한 형태의 자산투자에 대해서 공부한다. 여은정 중앙대 글로벌금융전공 주임교수는 “금융학과는 인문·경제·수학·공학적 지식이 모두 필요한 융합학과”라며 “업무 자체가 글로벌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외국어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분야”라고 말했다.

졸업 후 진로
트레이더·PB·애널리스트 등 활약…대기업 재무팀도 많이 가

전 세계적으로 자본의 이동이 더 활발해지면서 금융 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게 늘고 있다. 한국도 2007년 자본시장법이 제정되는 등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현철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엔 자산운용·트레이딩·자문 등 각 분야가 분리돼 각자 영역에서 경쟁했다면 지금은 자본시장이 통합되면서 무한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한국도 기업의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금융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금융학과를 졸업한 뒤 가장 많이 진출하는 분야는 은행·보험·증권사 등 금융기관이다. 고객의 위탁 자산을 주식·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펀드 매니저, 기업 가치와 시장 동향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옵션·선물 등 파생상품을 설계하는 퀀트, 금융상품 매매를 중개하는 트레이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다. 투자 전략을 수립하는 스트래터지스트, 고액 자산가의 자산 관리를 담당하는 PB(private banker) 등도 대표적인 금융 직종이다.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 등 공기관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많다. 정준영 중앙대 글로벌금융전공 교수는 “금융상품이 점점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금융상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금융 전문 변호사도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2학년 최하송(22)씨는 “금융학과를 졸업한 뒤 로스쿨에 진학해 금융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려는 계획을 가진 선배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학과는 경제 동향 분석 능력을 기르기 위해 경제·경영의 기본 과목을 필수로 이수한다. 대부분 경영대 내에 속해 있어 마케팅·생산관리·경영정보시스템 등 경영학과 세부 전공을 함께 들을 수 있다. 최씨는 “졸업 후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게 큰 장점 같다”며 “금융기관뿐 아니라 일반 대기업의 경영기획·재무팀으로도 많이 진출한다”고 말했다.

학부 과정에서 고급 재무·회계 수업을 듣기 때문에 공인회계사 준비가 수월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지난해 8월 공인회계사 자격증 시험(CPA)에 합격한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4학년 박근홍(26)씨는 “CPA 시험 과목 대부분이 학교 수업 중에 이뤄지기 때문에 초반 준비가 수월하다”며 “많은 학생이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국제공인투자분석사(CFA)·국제재무위험관리사(FRM) 시험을 준비해 합격한다”고 말했다.

금융산업은 인공지능·핀테크 등 IT 기술과 접목이 가장 빠른 산업이다. 금융산업의 구조 개혁은 업계가 요구하는 인재상의 변화로 이어진다. 엄찬영 한양대 파이낸스경영 학과장은 “이미 골드만삭스 등 대형 금융기관에서는 ‘켄쇼’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투자분석가인 애널리스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며 “애널리스트 중에서도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인재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 스페셜리스트를 기르는 금융학과를 졸업하더라도 그 안에서 더 고도로 전문화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한 가지 예가 데이터 애널리스트다. 블룸버그에서 데이터 애널리스트로 재직 중인 류기억(24)씨는 “실시간으로 정보가 반영되고 주가가 변동되는 주식시장에서 핵심은 시간이다”며 “수천만 건의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빠른 시간 안에 흐름을 읽고 실용적인 정보만을 골라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빅데이터 처리 능력을 갖춘 인재가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금융 지식을 갖추면서 원하는 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 설계 능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류씨는 “금융학과를 다니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 큰 도움이 된다”며 “숙달된 통계 분석 기술을 익혀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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