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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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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송봉근 기자

1일 오전 11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정문을 지나자 자동차·자전거·소형 트랙터가 세워져 있는 차고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이하 재단) 오상호 사무처장이 100여 명의 관람객에게 “체어맨 자동차는 대통령 당선 뒤 부부가 3개월간 타셨고, 그 옆에는 손주들과 함께 타고다녔던 자전거와 트레일러….”라고 설명하다 말을 잇지 못했다. 앞에 있던 여성 관람객 3~4명이 눈물이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목이 메어 말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길영미(58·여·경기도 남양주시)씨는 “사저에 들어와 평소 손주들과 함께 타고다니던 자전거를 보니 그분의 못 다 이룬 한과 설움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이날 처음으로 사저가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2008년 준공 이후 8년 만이다. 재단은 사저를 5월 한 달간 토·일요일 오전 11시, 오후 1시30분, 오후 3시에 각 100명씩 관람을 허용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 생일(9월)이나 설 등 명절에 비정기적으로 몇 차례 더 개방한 뒤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상시 개방을 검토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사저는 외관상 하나의 건물로 돼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생활했던 개인소유 사저동(안채·서재·사랑채)과 경호원들이 근무하는 국가소유의 경호동으로 구분된다. 부지 4257㎡ 건물면적 594㎡다. 건축가 고 정기용이 설계한 것이다. 모두 채광과 통풍이 잘 되는 한옥 구조다.

오 처장은 “노 전 대통령께서 평소 자연의 품에서 인간의 삶이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 반영돼 낮게 지어졌고 그래서 ‘지붕 낮은 집’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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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사저 내 사랑채를 둘러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 중 사랑채는 노 전 대통령이 평소 손님을 맞이하고 가족이나 보좌진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곳이다. 서재만큼이나 애정을 갖고 자주 머물렀던 곳이다.

사랑채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형태다. 채광효과를 높이고 풍광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디자인돼 있다. 동쪽에는 4폭 병풍같이 생긴 유리창문 4개가 연결돼 있어 봉화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계절 변화에 따라 다른 모습의 자연병풍이 펼쳐지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남쪽 벽면에는 고(故) 신영복 선생이 쓴 ‘사람 사는 세상’이라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그 옆에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모양의 유리창문이 있는데 그 너머로 보이는 산이 노 전 대통령의 부모가 일을 하던 과수원과 자신이 고시공부할 때 생활했던 토굴이 있던 곳이다. 오 처장은 “저 토굴에서 대통령님이 고시공부를 할 때 권양숙 여사가 끼니때면 식사를 날라다 주며 애틋한 정을 키웠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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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내외가 기거하던 안채 거실. 송봉근 기자

안채는 대통령 부부가 생활하던 개인공간으로 거실과 침실로 구분돼 있다. 거실에는 2대의 컴퓨터와 TV가 있었다. 이 컴퓨터는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유서를 남길 때 사용한 것으로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컴퓨터 한 대는 노 전 대통령이 글을 쓸 때, 나머지 한 대는 자료를 조사할 때 사용했다.

거실 벽면에는 신영복 선생이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쓴 액자와 달마도가 걸려 있다. 거실과 연결된 침실에는 침대만 놓여 있다. 침실 앞에는 나무 벤치가 놓여 있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식사 후나 글쓰기 작업 중간 중간에 휴식을 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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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거실에 놓인 노 전 대통령의 안경과 손녀딸과 함께 찍은 사진 액자.

부엌 유리창문에는 손녀가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적은 글이 그대로 남아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재.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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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는 노 전 대통령이 주로 독서·집필을 하거나 퇴임 후 보좌진들과 민주주의 등에 대해 토론하고 회의를 한 곳이다. 이곳에 머무르다 봉하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대통령님 나와주세요”하는 소리가 들리면 서재 앞 지붕이 뚫린 마당을 지나 대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노 전 대통령은 늘 책을 가까이 두었고, 독서량이 방대했다. 그래서 서재는 물론 안채·화장실 곳곳에 책이 놓여 있었다. 그의 독서량을 보여주듯 서재에는 『대한민국 개조론』·『한국의 늪』 등 1000여 권의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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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한쪽에 걸려있는 노 전 대통령의 밀짚모자. 송봉근 기자

사저 내 정원에는 기증받은 나무가 심겨있다. 안채 옆 장독대 부근에 있는 매실나무는 노 전 대통령이 언젠가 진주 단성면을 방문했을 때 무척 마음에 들어 해 주인이 흔쾌히 기증해 이식했다는 일화가 있다. 사저에는 이 나무 말고도 매실나무가 꽤 있어 대통령 부부는 손님들에게 직접 수확한 매실로 차를 끓여 내기도 했다.

사저 내에는 유일하게 표지석이 있는 나무가 있다. 바로 4·3 유족회가 보낸 산딸나무이다. 대통령 재임시절 4·3 제주민중항쟁이 재조명됐고, 유족회가 고마움의 표시로 이 나무를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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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놓인 노 전 대통령 내외의 사진이 붙어 있는 화병. 송봉근 기자

이날 관람객들은 대부분 담장과 창문을 손으로 만져보거나 거실·서재·부엌 등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등 즐거운 모습이었다. 일부 관람객은 노 전 대통령이 생각나는 듯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김홍석(35·경남 진해시) 부부는 “내 인생에서 첫 투표를 한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었고, 퇴임 후 봉하마을에 왔을 때도 몇 번 얼굴을 뵌 적 있었는데 사저에 들어오니 그 모습이 다시 생각난다”며 “평소 소박하고 서민적이던 모습이 집안 곳곳에도 배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희(55·여·부산 해운대구)씨는 “아방궁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실제 와보니 전혀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아담하고 소박하고 검소한 느낌이 든다”며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우리를 안내하고 반겨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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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놓인 노 전 대통령의 안경. 송봉근 기자

오 처장은 “노 전 대통령이 오늘 여러분을 직접 만났다면 귀향 당시 말씀하셨던 ‘야 기분 좋다’라고 이야기하셨을 것 같다”며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언젠가는 사저를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권양숙 여사께서 2013년 그 뜻을 받들어 재단에 기부를 결정했고 오늘 일반인에게 돌려 드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저에 살고 있던 권 여사는 지난해 7월 인근으로 사비를 들여 거처를 옮겼다.

한편 봉하마을에서는 5월 한 달간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오는 5일에는 오전 11시부터 봉하마을 어린이날 행사인 ‘봉하로 소풍가자’가 열린다. 19일 오후 7시에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노 전 대통령 추모강연도 한다.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은 23일 오후 2시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 잔디밭에서 거행된다. 이날 서울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서울~봉하마을 왕복 추도식 봉하열차가 운행된다.

김해=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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