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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호날두 특급 기술? 우린 더 멋진 것 보여줄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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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호 26면

엘리트 선수에게 개인기를 가르치는 ‘텐 마스터’의 김요완 총감독. 별 모양의 축구공에 둘러싸인 그는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나올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현동 기자

왜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안 나올까.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같은 빅 스타 말이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이렇다. 한국 축구는 지금까지 체력·정신력·조직력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 엘리트 시스템의 근간인 초·중·고교 축구부는 성적에 민감하다. 정규직이 아닌 지도자들의 신분은 매우 불안하다. 축구부 운영비의 대부분은 학부모 주머니에서 나온다. 지도자들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합숙과 체력훈련, 체벌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의 눈치를 보는 선수들은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기 어렵다. 어려서 과도한 체력 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부상에 쉽게 노출된다. ‘축구 신동’이라 불리던 아이들은 어느 새 사라지거나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 균열이 생기고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축구를 즐기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개인기를 몸에 익히고, 조직력보다는 개인기를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 나가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이승우(18·FC 바르셀로나) 처럼 감탄을 자아내는 기술을 보여주는 선수들도 늘고 있다. ‘개인기’로 한국축구를 바꿔나가는 사람들을 스포츠 오디세이가 찾아나섰다.


기술축구 보고 “만화축구냐” 비아냥지난 4월 24일 일요일 오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풋살(미니축구) 구장에 20여 명의 유·청소년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축구 개인기만을 가르치는 ‘텐 마스터(10 master)’ 소속 선수들이다. 2~5명씩 수시로 팀을 바꿔 가며 공격과 수비로 나눠 경합을 한다. 공격조는 드리블·돌파·패스를 하면서 골을 노린다. 수비조가 공격을 막아내면 공·수가 바뀐다. 좁은 공간에서 이들은 빠른 몸놀림으로 공을 지켜내고,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상대를 돌파한다. TV에서 메시나 호날두가 보여준 기술들을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와, 축구 정말 잘 한다”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들은 대부분 연령별 청소년 국가대표이거나 프로팀 산하 유소년 선수들이다. 말하자면 여기는 반에서 1, 2등 하는 수재들만 모아 가르치는 ‘족집게 학원’ 같은 곳이다.


‘텐 마스터 스킬 코칭’을 만들고 현재 총감독을 맡고 있는 이는 김요완(31)씨다. 그는 서울 동명초 시절 등번호 10번을 달고 전국대회 10관왕을 이끌었다. 화려한 개인기를 과시하며 골을 펑펑 터뜨려 ‘꼬마 마라도나’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기술축구는 마라도나만큼 화려하게 꽃피지 못했다. 중 3때 일찌감치 일본 프로팀에 ‘입도선매’돼 일본에서 고교를 다녔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03년에는 초등학교 동기 양동현(30·포항 스틸러스)과 함께 스페인 프로축구 바야돌리드 19세 팀에 입단했지만 역시 꿈을 이루지 못했다. 몇 차례의 방황과 좌절, 부상을 겪은 뒤 그는 23세의 아까운 나이에 축구화를 벗고 만다. 그리고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기술 축구 전도사로 나섰다.


그는 실전에서 통할 수 있는 스킬을 8단계로 나눠 수준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회원이 들어오면 테스트를 거쳐 레벨을 정하고, 각 단계를 마칠 때마다 수료증과 함께 훈련 과정을 담은 동영상 CD를 선물한다. 국내와 해외 프로팀에서 뛰었던 8명의 스태프도 각 단계를 이수해야 그 단계를 가르칠 수 있다. 김 총감독과 스태프들이 머리를 맞대 ‘신기술’을 개발하기도 한다. 최근에 개발한 ‘R1’이라는 기술은 ‘알고도 못 막는다’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텐 마스터를 수료한 선수 중 연령별 대표팀 출신이 50명을 넘는다.


김 총감독은 힘들었던 유소년 시절을 회고했다. “중학교 축구부는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잘 정도로 억압적인 분위기였다. 감독님은 전국에서 가장 무서운 지도자였다. 그 분이 추구하는 스타일과 내가 하고 싶은 축구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도자라면 아이가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축구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공을 갖고 논다”지금은 100여 명의 엘리트 축구선수들이 평일 야간과 주말을 이용해 이 프로그램을 익히고 있다. 이들을 보는 기존 축구계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심지어 “만화축구 하는 데 아니냐”며 대놓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훈련장에서 만난 고교 축구팀 선수의 아버지는 “아이가 1년 정도 여기서 배웠는데 좁은 지역에서 볼 간수 능력이 많이 좋아졌더라. 그런데 소속팀 감독은 실전에서 이런 기술을 쓰면 화를 낸다”고 말했다.


김 총감독도 현실의 벽이 높다고 하소연했다. “이름만 대면 아는 스타 출신이나 프로팀 감독의 아이들이 여기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실전에서 기술들을 써먹기가 매우 어렵다. 볼을 잡으면 감독이 곧바로 ‘야, 저리로 줘’ 라고 지시를 내린다. 감독은 리모컨이고 선수는 자동인식 센서다. 이래서는 창의적인 축구를 할 수 없다.”


문홍(26)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영국으로 축구 유학을 갔다. 프리미어리거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레벨의 팀들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발급하는 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그는 실전 테크닉과 전술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본인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고, 영어로 설명을 했다. 고급 기술에 목마른 엘리트와 아마추어 선수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팔로워 숫자가 4만 명까지 올라갔다.

영국에서 선수와 코치로 다양한 경력을 쌓은 문홍 감독. STV FC를 창단한 그는 “영국 세미프로 팀을 모델로 삼았다. 기술축구, 즐기는 축구로 한국축구의 판을 바꾸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신인섭 기자

국내로 돌아온 문씨는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축구 팀을 만들었다. 이름은 ‘STV(Share the Vision) FC’다. 아름답고 즐거운 축구의 비전을 함께 나누자는 의미를 담았다. 지난해 11월 500명의 지원자 중 테스트와 면접을 거쳐 25명을 선발했다. 엘리트 출신부터 순수 아마추어까지, 연령도 직종도 다양하다. 이들이 낸 회비로 운동장을 빌리고 장비를 마련했다. 매주 화·목요일 오후 8시에 모여 문홍 감독의 지휘 아래 2시간 훈련을 한다.


토요일은 실전을 치른다. 프로 출신이 다수 포함된 팀들과 경기를 하는데 이길 때가 더 많다. 훈련 시간이 절대 부족하지 않느냐고 묻자 “어쩔 수 없다. 대신 우리 스태프들이 연습 장면을 찍고 편집해 나눠준다. 그걸 바탕으로 개인훈련을 한다”고 문 감독은 말했다.


프로 출신들의 ‘속도’를 어떻게 따라갈 수 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속도로 경쟁하면 우리는 필패다. 그래서 볼을 간수하는 기술을 몸에 익힌 뒤 템포를 느리게 하는 법을 가르친다. 우리가 느리게 하면 상대도 함께 느려질 수밖에 없다.”


부주장 이의종(31·경찰특공대 근무) 선수는 “SNS에 감독님이 올린 분석 영상을 보고 크게 공감했다. 감독님 밑에서 꼭 한번 축구를 해 보고 싶었다. 우리 팀에서 언젠가는 프로 1군 선수, 국가대표가 나왔으면 좋겠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개인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축구 프리스타일이다. 손을 제외한 온 몸을 이용해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묘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프리스타일 1세대는 우희용(52) 씨다. 축구 선수 출신인 그는 1989년에 헤딩 오래하기 세계신기록(5시간6분30초, 38만9694회)을 세워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리고 2002년 유럽 축구묘기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우희용씨의 수제자가 전권(27)이다. 전권은 2010년 세계 프리스타일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JK 아트사커 아카데미’를 만들어 프리스타일을 보급하고,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친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 한 명도 이 곳에서 기술을 배웠다.


“펠레·마라도나·호날두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공통점은 공을 자유자재로 갖고 논다는 것이다. 그만큼 볼을 만지는 감각이 뛰어나다는 뜻이고, 이는 프리스타일 훈련을 통해 몸에 밴 것이다. 박지성도 초등학교 시절 하루 1000개 이상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발로 퉁기는 것)을 했다.” 우씨는 프리스타일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축구굴기’를 선언한 이후 중국에도 축구 광풍이 불고 있다. 올 8월에는 중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축구 오디션 프로그램이 중국 전역에 방송된다. 서바이벌 형식을 거쳐 선발된 22명을 한국과 중국 코칭스태프 팀으로 나눈다. 한국 스태프에는 안정환과 박지성, 그리고 텐 마스터 팀이 들어간다. 일정 기간 훈련을 거친 뒤 경기를 갖고, 다시 11명을 뽑아 한국에 축구 유학을 보낸다는 컨셉트다. ‘개인기’를 통해 한국축구의 체질이 바뀐다면 거대한 중국 시장에 성큼 발을 들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경제가 아닐까.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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