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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2억2300만 명 찾아오다, 꿈을 키워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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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돌 맞은 용인자연농원(에버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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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이 개장 40주년을 맞았다. 마흔 돌을 맞아 에버랜드의 마스코트 레니와 라라, 퍼레이드 연기자들이 week& 독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1976년 4월 18일 일요일 오전 8시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전대리 310번지(현재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 199).

용인자연농원(이하 자연농원)이 처음 문을 연 날, 용인의 허허벌판에는 이른 아침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당시 서울 전철 요금(40원)을 생각하면 입장료(어른 600원, 어린이 300원)가 만만치 않았지만 사람들은 새벽같이 나와 줄을 섰다. 이날 하루 입장객은 2만5000명이 넘었다.

오전 9시 마침내 자연농원 정문이 열렸다. 문 안에는 별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의 청룡열차와는 차원이 다른 롤러코스터 ‘제트열차’가 쏜살같이 내달렸고, 머리 위로 비행기 8대가 빙글빙글 맴돌았다. 지금이야 촌스러워 보이지만, 그때만 해도 눈이 번쩍 뜨이는 최신식 놀이기구였다. 9대가 전부인 놀이기구 앞에는 온종일 긴 줄이 늘어섰다.

수많은 인파가 충격에 빠진 곳은 따로 있었다. 사자 20마리가 우글거리는 정글로 버스가 들어갔다. 사자가 버스 창문에 매달려 입을 쩍 벌렸다. 아이들은 울고 어른들은 움찔했다. 자연농원의 사자는 창경원(현재의 창경궁)에서 봤던 철창 속의 가축이 아니었다.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맹수였다. 당시 언론은 자연농원의 ‘라이언 사파리’에 대해 “아프리카의 동물원을 연상케 한다(『중앙개발(지금의 삼성물산) 50년사』)”고까지 보도했다.

올해는 자연농원 개장 40주년이자 에버랜드 20주년이다. 자연농원은 96년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꿨다. 자연농원 40년 세월엔 그만큼 많은 추억이 쌓여있다. 40대가 어렸을 적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갔던 그곳을, 지금은 아이들 손을 잡고 간다.

“어릴 때 엄마 아빠랑 ‘귀신의 집’에 갔는데 아빠가 실수로 귀신 발을 밟았어요. 그때 귀신이 아빠를 잡아먹는 줄 알고 엉엉 울었어요. 진짜 귀신인 줄 알았으니까요.”

다섯 살 딸과 에버랜드를 찾은 고지연(41)씨가 지금은 사라진 ‘귀신의 집’ 얘기를 꺼냈다. 지난 40년간 자연농원의 누적 관람객 수는 2억2300만 명이 넘는다(에버랜드·캐리비안 베이 포함). 대한민국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잡으면 1인당 최소 네 번은 들렀다는 얘기다.

태초의 자연농원은 이름 그대로 자연 속 농원에 가까웠다. 전체 면적 1500만㎡(약 450만 평) 가운데 놀이기구를 설치한 ‘패밀리랜드’는 약 67만㎡(20만 평)에 불과했다. 나머지 땅 대부분은 밤나무·복숭아나무 등을 심은 과수원이거나 돼지를 키우는 농장이었다. 실제로 ‘생밤 5t을 5705달러를 받고 일본에 수출했다(76년 10월13일자 중앙일보)’ ‘살구로 만든 넥타(과실 음료)를 쿠웨이트에 2만200달러어치 수출했다(77년 7월28일자 중앙일보)’ 등의 뉴스가 심심치않게 전해졌다. “미국의 디즈니랜드처럼 어린이가 자연을 배우면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꾸미라”는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뜻이 반영된 결과였다(『호암자전』).

자연농원은 96년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꿨다. 그때 바꾼 건 이름만이 아니었다. 에버랜드는 어린이가 자연을 벗 삼는 농원에서 꿈과 환상을 키우는 테마파크를 지향했다. “디즈니랜드보다 낫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건희 회장의 의지가 있었다(『중앙개발 50년사』). 사실 자연농원은 80년대 들어 꾸준히 변화를 시도했다. 후룸라이드(81년)·바이킹(83년)·지구마을(85년) 등 거의 해마다 새 놀이기구를 선보였다. 장미축제(85년)를 시작으로 튤립축제(92년)·국화축제(93년) 등 자연을 테마로 한 이벤트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자연’보다 ‘환상’으로 넘어가 있었다.

에버랜드 개장 3개월쯤 뒤인 96년 7월 12일엔 국내 최초의 워터파크 ‘캐리비안 베이’가 문을 열었다. ‘워터파크’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기껏해야 조금 더 큰 수영장이겠지’라며 코웃음 쳤던 뭇 청춘이 엄청난 물세례를 받고 쓰러졌다. 집채만한 파도가 덮쳤고, 한꺼번에 2.4t의 물벼락이 쏟아졌고, 26m 높이의 미끄럼틀에 몸을 맡겼다. 국내 물놀이 역사가 캐리비안 베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지난 21일 에버랜드에 판다월드가 개장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중국에서 들여온 판다 두 마리가 아니다. 200억 원 이상을 투입한 첨단 IT기술이다. 입구부터 압권이다. 초고화질TV 36대가 지름 9m의 커다란 원을 그리며 판다 영상을 보여준다. 동물원에 IT기술이 동원된 데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독려가 있었다고 한다(지난 12일자 동아일보). 40년 전 할아버지는 디즈니랜드처럼 만들고 싶었고, 20년 전 아버지는 디즈니랜드보다 잘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이 부회장은 세계 최고를 만들자고 한다. 자연농원 40년에는 우리네 어렸을 적 꿈도 있지만, 한 기업의 치열한 꿈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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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손민호·이석희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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