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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엄마들 “폐렴으로 숨지는 아기들 이젠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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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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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백신면역연합(GAVI)
Global Alliance for Vaccines and Immunization의 약자. 아프리카·아시아·남미의 저개발국가 영·유아들에게 필수 백신을 접종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0년 설립됐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세계은행·빌&멀린다 게이츠 재단·화이자 등 보건 분야 국제 NGO들과 민간 기업·단체가 두루 참여하고 있다.

| “2020년까지 3억 명 더 예방접종
600만 명 아기들 생명 지켜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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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아프리카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동쪽으로 60㎞쯤 떨어진 르와마가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1시간반쯤 올라가니 울창한 수풀 사이로 조그마한 보건소가 나타났다. 수천 개의 언덕으로 이뤄졌다는 르완다에서도 가장 깊은 산골에 위치한 이곳의 이름은 가헹게리 보건센터. 안으로 들어가니 150여 명의 여성이 어린 아이를 품에 앉은 채 빽빽이 모여 앉아 있었다. 대부분 첫돌이 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였다.

[함께하는 목요일]
백신 지원 팔 걷은 국제 NGO들

이들이 이곳에 모인 것은 무료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서였다. 가난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산골 마을의 영·유아들이 이처럼 값비싼 백신을 아무런 경제적 부담 없이 맞을 수 있게 된 것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등 국제보건단체와 비정부기구(NGO)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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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와 우간다는 국제 NGO들의 지원 속에 영·유아 보건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르완다 르와마가나 가헹게리 보건센터에서 갓난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긴 채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사진 박신홍 기자], [사진 화이자]

태어난 지 100일 된 딸을 데리고 온 무카사쿠(37·여)는 “예전엔 폐렴 등으로 동네 아이들이 숱하게 숨을 거뒀는데 예방접종을 받게 되면서 이젠 그런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며 “보건센터 의료진과 백신 제공자에게 감사할 뿐”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오늘 딸아이에게 처음으로 소아마비와 로타바이러스 등 네 가지 백신을 맞혔다”며 “위로 세 명의 자녀가 있는데 이들도 이 센터에서 예방접종을 한 뒤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소개했다. 센터 한쪽에서는 폐렴구균 접종이 한창이었다. 화이자가 개발한 ‘프리베나 13’을 맞기 위해 30여m의 긴 줄이 서 있었다. 마리아(29·여)는 “6개월 된 아들을 데려왔는데 오늘로 세 번째 접종”이라며 “30분 넘게 걸어왔지만 아이의 건강을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센터 책임자인 무기샤 드 디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방접종을 실시하는데 실내가 꽉 찰 정도로 호응이 좋다”며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주민들이 지금은 좀 더 자주 와달라고 요청할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이런 보건센터가 르와마가나 지역에만 14곳이 들어서 있다”며 “예방접종은 물론 1차 진료기관 역할까지 맡고 있으며 제대로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은 곧바로 상급 병원으로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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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예방접종을 기다리고 있는 르와마가나 주민들. [사진 박신홍 기자], [사진 화이자]

GAVI와 NGO 단체들은 2000년부터 르완다의 영·유아들에게 폐렴·소아마비 백신 등을 지원하고 나섰다. 의약품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에 사는 수백만 명의 아이가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숨지는 현실을 극복해 보자는 취지였다. 특히 충분히 사전 예방이 가능한 새로운 백신이 속속 개발됐지만 가격이 비싸다 보니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어린이에게는 사실상 ‘그림의 떡’인 상황이었다.

| 세계백신연합·빌&멀린다 재단 …
폐렴·소아마비 백신 16년째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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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무벤데에서 여자 아이가 보건소를 찾은 엄마 곁에 앉아 있다. [사진 박신홍 기자], [사진 화이자]

이에 백신 공급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제 NGO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7억5000만 달러(약 8600억원)를 출연했고 여러 NGO도 의료진 자원봉사 등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독특한 민관 파트너십 형태의 GAVI가 첫선을 보였다. 이후 화이자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도 아프리카 저개발국가의 어린이들을 위해 자체 개발한 백신을 저가에 공급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예방접종 사업에 한층 탄력이 붙게 됐다. 화이자가 지금까지 GAVI에 공급한 백신 등 의약품만 총 7억4000만 도즈(1도즈=1회 접종)에 달한다.

| 르완다 영·유아 사망률 66% 줄고
전 세계 아기 최소 700만 명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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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갈리대 중앙병원에서 신생아가 돌봄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박신홍 기자], [사진 화이자]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까지 전 세계 5억 명의 영·유아가 무료 예방접종의 혜택을 받았다. 국제보건단체들은 이를 통해 최소한 700만 명의 영·유아 사망을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GAVI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예방접종 대상 어린이를 3억 명 더 늘리고 600만 명의 사망을 추가로 예방하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르완다에서도 무료 예방접종이 확대되면서 지난 20년 새 5세 이하 영·유아 사망률이 66%나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WHO는 르완다의 신생아 필수 접종률이 98%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동안 르완다는 참혹한 종족 간 내전과 대량 학살로 널리 알려져 왔다.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르완다는 다수 인종인 후투족과 소수 인종인 투치족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테러와 보복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가운데 94년 쥐베날 하브자리마나 대통령이 비행기 격추 사건으로 숨지자 이를 계기로 투치족에 대한 대학살(제노사이드)이 자행됐다. 불과 100일 새 80만 명이 무참히 살해됐고 200여만 명이 인근 국가로 피란을 가면서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 키갈리의 한 호텔에서 1268명의 목숨을 지켜낸 호텔 지배인의 실화를 그린 영화 ‘호텔 르완다’도 이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후 어렵사리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르완다는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에 주력했다. 후투족과 투치족도 “우리는 하나”라는 모토 아래 점차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 끝에 르완다는 최근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7%대를 유지하고 아프리카에서 기업 하기 좋은 나라 2위로 꼽히는 등 미래지향적인 나라로 탈바꿈했다. 아프리카에서 치안이 가장 잘 보장되는 나라도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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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무벤데 보건소 입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박신홍 기자], [사진 화이자]

르완다 정부는 특히 보건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며 삶의 질 향상을 도모했다. 2006년 이후 매년 국가 예산의 22% 이상을 보건 분야에 투입하고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에서 단연 최대 규모다. 또 지역사회 기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해 국민의 90% 이상이 저렴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 새 연간 신규 에이즈 감염자 수는 1만3000명에서 6200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고 말라리아 환자 입원율도 75% 이상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NGO들은 르완다와 이웃한 우간다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간다 동부 진자 지역에서는 실명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트라코마 예방과 치료에 발 벗고 나섰고, 서부 무벤데 지역에서는 여성 피임과 모자 감염 예방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아그네스 비나과호 르완다 보건부 장관은 “아프리카 각국의 과감한 예산·인력 투입과 국제 NGO들의 지원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며 “앞으로도 보건 분야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르와마가나(르완다)·무벤데(우간다)=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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