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 서류 위조 의혹 … 첼시 리 ‘한국인 피’ 진짜 안 섞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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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귀화를 추진 중이던 여자프로농구 혼혈선수 첼시 리(27·KEB하나은행·사진)가 귀화 관련 서류를 위조·변조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귀화 과정에 직접 관여한 소속팀은 물론, 상급 체육단체들이 수사에 따른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WKBL 맹활약, 체육회서 귀화 추진
혼혈 입증할 증명서 증거 조작 논란
검찰 "미국 협조 얻어 위조 여부 조사”
선수 측 “조작 혐의 벗을 자신 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강지식)는 첼시 리가 특별 귀화 과정에서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에 제출한 자신의 출생증명서와 한국계로 추정되는 할머니(현숙 리)의 사망증명서를 위조했을 가능성을 놓고 수사 중이라고 26일 밝혔다. 자메이카 태생의 첼시 리는 3세 무렵 부모가 함께 사망해 자메이카의 한 고아원에 잠시 머물다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 자신의 혈통에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는 “루마니아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여권을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전 세계 농구선수 프로필을 제공하는 전문사이트 ‘유로 바스켓’은 첼시 리의 국적에 대해 ‘South Korean-American(한국계 미국인)’으로 표기하고 있다.

루마니아리그에서 걸출한 활약을 펼친 데다 한국계 혼혈 선수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난해 여자프로농구연맹(WKBL) 일부 구단 사이에 ‘첼시 리 쟁탈전’이 벌어졌다. 부모 혹은 조부모 중 한 명 이상이 한국인인 혼혈 선수의 경우 국내 선수로 인정해 외국인 쿼터(팀 당 2명)를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WKBL 관계자는 “처음엔 첼시 리가 할머니와 자신의 혈통 관계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 입양 과정에서 관련 기록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 에이전트가 사립 탐정을 고용해 수소문한 끝에 관련 자료(할머니 사망증명서와 부친 제시 리의 출생증명서)를 찾아냈고, 미국 테네시주(州) 당국의 아포스티유(apostille·국제적인 효력을 갖는 공증서)를 받아와 이를 바탕으로 선수 등록을 허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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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하던 혈통 논란은 대한체육회가 첼시 리를 체육 부문 특별 귀화 대상자로 선정하며 다시 불거졌다. 첼시 리는 WKBL 데뷔 무대였던 지난 시즌 득점상과 리바운드상·신인상은 물론 2점 야투상·윤덕주상·리그 베스트5까지 6개의 트로피를 싹쓸이하며 국내 여자농구의 스타로 떠올랐다. 체육회는 ‘한국계’인 첼시 리가 여자농구대표팀에 합류할 경우 오는 6월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대표팀 전력 강화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고 농구계의 특별 귀화 요청을 승인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측은 “테네시주가 발급한 아포스티유는 문서 발급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증명서다. 수사는 애당초 증거 자료 자체를 조작해 제출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검찰은 미국 대사관 및 정부 기관의 협조를 얻어 서류 위조 여부를 파악할 예정이다.

첼시 리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은 체육계 전체로 번질 전망이다. 소속팀 KEB하나은행과 WKBL은 물론 특별귀화대상자로 추천한 대한농구협회와 대한체육회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WKBL 관계자는 “혐의가 인정되면 해당 선수에 대한 중징계가 불가피하다. 지난 시즌 기록도 무효화 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소속팀 KEB하나은행도 부정선수를 기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WKBL 혼혈 선수 운용 규정 및 대한체육회 특별귀화 심의 시스템도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KEB하나은행 측은 “선수 측에서 ‘혐의를 벗을 자신이 있다’고 밝히고 있어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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