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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탄식하는 광화문 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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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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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또 한 차례 해프닝이 일어났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쉽사리 판단이 서지 않는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현판 복원 논란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주말 현판 복원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백지 상태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말이 원점이지, 속내를 들여다보면 현재의 현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2006년 철거 공사를 시작해 2010년 광복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복원 축하 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던 광화문의 굴욕이다. 당시 사진을 찾아보니 ‘제 모습 찾은 광화문 현판 제막’ 현수막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다.

광화문 현판은 현재 바탕이 흰색, 글자가 검은색이다. 문화재청은 여기에 잘못이 있다고 인정했다. 최근까지도 원형에 충실했다고 거듭 주장해 온 당국이었다. 일본 도쿄대 소장 유리원판 사진(1902년께)을 디지털 분석한 결과를 판단 근거로 내세웠다. 지난달 공개된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사진(1893년께)에서 바탕보다 글씨가 더 밝게, 즉 바탕이 검게, 글자가 밝게 나타나면서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그리고 사료를 면밀히 조사하고 관련 사진을 정밀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받아들인 건 용기 있는 일이다. 제2, 제3의 논란을 예방하는 길이다. 그런데도 뒷맛이 씁쓸하다. 왜 진작에 관련 사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을까. 현판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빈약하다는 점은 십분 감안하더라도 그간의 검증이 허술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터다. 대통령 참석 행사라는 것을 의식해 복원 공정을 무리하게 앞당긴 건 아닌가 하는 6년 전 비판이 새삼 떠오른다. 3년 전 5월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 또한 박근혜 대통령 참석을 고려해 일정을 재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앞으로 현판 시비가 말끔히 해소될지도 미지수다. ‘장기전’이 예상된다. 문화재청은 외부 용역을 고려하고 있다지만 과연 신뢰성 있는 기관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밀 분석 기준도 불명확한 상태다. 지난해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은 500만 명. 이번 주말부터 열흘간 문화재청 중점 사업인 ‘궁중문화축전 2016’이 경복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서울의 얼굴인 광화문조차 원형을 되찾지 못하고 잔치를 벌이는 게 오늘의 우리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오늘 탄신 471주년을 맞은 광화문광장의 충무공이 남긴 말이다. 이번 기회에 문화재청장이 진퇴 책임을 지고 광화문 현판 복원을 지휘했으면 한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