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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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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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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정확히는 ‘결혼할 여자가 없는 남자들’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단편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 이혼·사별 등으로 혼자가 된 남자들의 얘기를 다뤘지만 대한민국 현실 세계에선 좀 다른 이유로 ‘여자 없는 남자들’이 늘어나는 모양이다. 자발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非婚)’ 성향이 강해지면서다.

결혼을 ‘못’ 하는 미혼(未婚)이 아니라 ‘안’ 한다는 거라고 비혼주의자들은 강조한다. 결혼이 필수 아닌 선택이라는 것.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특이한 이들의 지극히 마이너한 성향으로 치부됐던 ‘비혼’이란 단어가 이젠 일상 속으로 쑥 들어왔다. 숫자가 증명한다. 온라인에서 ‘비혼’을 언급하는 횟수가 2011년엔 2453건이었지만 올해는 4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1만9730건을 넘겼다고 한다. 704%나 증가한 셈.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2011년 1월 1일부터 지난 20일까지 블로그 7억489만1299건과 트위터 89억1699만6004건을 분석해 내놓은 결과다.

관혼상제의 골간이 흔들린다고 탄식을 하기 전에 왜 그런지 살펴보는 역지사지가 먼저다. 결혼과 관련된 단어로 ‘현실적’ ‘스트레스’ 등 부정적 단어가 증가하고 있다는 데 힌트가 있다. 가뜩이나 살기 팍팍한데 결혼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똑 떨어지는 통계는 없지만 남성보다는 여성 사이에서 비혼주의자가 많아지는 분위기도 읽힌다. 인터넷엔 “결혼하니 무료 가정부가 된 것 같다”거나 “괴로운 것보다 외로운 게 낫다”는 여성들의 댓글이 넘친다. 암묵적으로 가사일은 여전히 여성이 우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주된 원인이 아닐까. 남자들은 아직도 이렇게 말하지 않나.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자기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서다. 비혼이 저출산으로 이어진다며 신혼부부용 임대아파트를 늘리는 것보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게 우선이다. 작금의 정책은 ‘결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그보다는 ‘결혼을 하고 싶은 사회’로 바꾸는 게 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닐까. 지금의 비혼주의는 결국 결혼을 현실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져 더욱 안타깝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각자 자유지만 하루키도 어느 결혼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 나는 늘 뭔가 딴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