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망식 「금서」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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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화택속에서 철없이 놀고있는 아이를 구하듯 허겁지겁 하는 정부 당국의 이념서적 단속은 시비가 분분하다. 단속의 당사자인 출판계는 물론, 학계·정가에까지 파문이 높게 일고 있다.
우리의 국시인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부인하는 이른바 「불온서적」이나 폭력 혁명을 고무하는 급진 좌경사상 서적의 단속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다. 그리고 출판법에 규정된 미풍양속을 해치는 음란 저속 출판물의 단속에도 공감한다.
문제는 무원칙한 대상 서적의 선정과 즉흥적인 단속 방법이었다. 무원칙성은 문공부가 10일 서울 일원의 단속에서 압수, 수거한 3백10여종의 서적중 납본의무등의 단순한 법절차를 어긴 불법 출판물을 대폭 구제하고 문제의 불온서적을 33종으로 축소, 예시한데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기자는 지난해 정부 당국자로부터 82년5월의 이념서적 해금이 비판을 위한 「인용」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특히 학생 독자들의 경우 비판 대목보다는 「마르크스-레닌니즘」의 인용부문에 탐닉해 버리는 것 같다는 우려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한 대학교수로부터는 사지선다형 시험에 시달리느라 전혀 일반 독서 배경이 없이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의 순수하고 하얀 캔버스가 고도의 이념서적을 대하면서 시뻘겋게 물들 위험이 없지 않다는 현장 실정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번 단속의 졸렬성은 우선 이념서적과 단순한 법절차를 어긴 불법서적을 한대 뭉뚱그려 싸잡아 압수한데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납본절차등을 밟지 않은 책이나 음란 출판물은 아예 별도로 분리, 단속을 해야 할 일이다. 원래 이념문제란 날카롭고 6·25전쟁 경험의 세대에게는 섬뜩한 감마저 주는 예민한 문제다.
또 현대 민주국가가 금료옥조로 여기는 「출판의 자유」를 감안할때 출판물의 단속이란 문제 자체가 거듭 신중을 요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속의 효과문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제록스 시대인 오늘에는 인쇄술이 원시적이었던 옛날의 분서갱유 시대와는 달리 개인 소장의 원전들이 얼마든지 있는 이상 즉시 복사, 지하 출판물로 유통 될 위험마저 없지 않다.
따라서 이념서 단속은 고도의 판단으로 정선해 국가보안법 형법등에 의한 일벌백계로 앞으로의 예방 효과를 거두는게 가장 바람직하다. 이번과 같은 단속은 오히려 사후 약방문이 되고 자칫 지하출판이 극성을 부리게 될 위험마저 없지 않다.
또 출판사나 서점의 책장사를 도와준 전혀 예상 밖의 결과는 없었는지도 되돌아볼 일이다. 이념서적의 분석에는 문공당국의 납본 심의요원 전문화와 우수 인력 확보등도 시급한 문제다. 이은윤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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