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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철강은 ‘컨설팅’구조조정 … 전문가가 사업 재편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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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트랙 1·2는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
해운·조선 등 채권단이 나서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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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이 26일 서울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 참석해 “정부와 채권단은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정부가 26일 내놓은 구조조정 방안은 채권단과 기업 중심의 기존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게 골자다. 1997년 외환위기 후 정부가 나서서 ‘빅딜’을 추진했던 당시와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향후 기업 구조조정을 3개 트랙으로 동시에 추진한다.

구조조정, 3트랙 동시 추진
정부, 직접 나서면 통상분쟁 우려
자율 맡기면 기업 따를지가 관건
임종룡 “업계 중요한 참고자료 될 것”

트랙1은 해운·조선 같은 경기 민감 업종 구조조정이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방향만 정하고 이를 기초로 채권단이 개별기업을 수술한다. 트랙2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신용위험 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 ▶워크아웃 ▶회생절차(법정관리) 등을 추진한다. 이런 트랙 1, 2는 이미 정부가 해오던 방식, 즉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이다. ‘늘 하던 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을 수십 년간 해온 것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로운 내용은 트랙3이다. 8월 시행되는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을 활용해 공급 과잉으로 판단되는 기업 스스로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석유화학·철강 등 은 업계 자율의 컨설팅을 통해 수급 전망, 경쟁력 진단 후 설비 감축,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석유화학과 철강업뿐만 아니라 조선업에서도 업체별 최적 설비 규모나 미래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기 위한 컨설팅을 추진한다. 회사 간의 사업 재편 조언을 담은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 결과는 구속력이 있을까.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전문가 집단을 통해 냉철하게 분석할 것”이라며 “업계 전반에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어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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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구조조정의 도구로 컨설팅을 들고 나온 것은 업계의 자율적 선택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다.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의 통상분쟁이나 경쟁당국의 개입을 우려할 필요도 없다. 일종의 ‘우회로’를 찾은 셈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컨설팅을 통해 제3자의 객관적인 판단을 들어보면 각 업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선·석유화학·철강업의 ‘자율 컨설팅’은 기업활력제고법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한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이날 ‘10대 그룹 CEO 전략대화’를 열고 “철강·조선 등 글로벌 공급 과잉이 우려되고 있는 일부 업종에 대해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경쟁력 수준, 향후 수급 전망 등을 분석해 채권단이나 해당 기업에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임종룡 위원장은 “이제 새로운 기업구조조정촉진법과 기업활력제고법 등 구조조정을 위한 법률체계가 정비된 만큼 정부와 채권단은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기업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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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위기의 뿌리인 공급 과잉 해소할 근본적 대책 안 내놔”
③ 조선 3사 빅딜 없다는 정부



정부가 이처럼 채권단·기업 주도의 구조조정 틀을 유지하기로 한 건 정책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이다. 구조조정 방향을 정하는 금융당국 관료들은 “지금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역설해왔다. 은행 빚이 대부분이어서 구조조정 협상 테이블에 앉은 채권자가 단출했던 외환위기 때와 달리 이제는 회사채 보유자 같은 시장 채권자가 많아졌다. 부실기업에 근거 없이 자금을 댔다가는 해외 경쟁 상대국과의 통상 마찰을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엔 거센 저항이 따르는 만큼 처음부터 정부가 단호하고 과감한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권단을 앞세우고 기업 자율에만 맡겨선 채권단이나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조선 3사를 통폐합하는 ‘빅딜’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만성적인 공급 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어려워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구조조정의 의사결정을 누가 하고, 책임질 주체는 누구인지 아직 불명확하다”며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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