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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손 떠난 한진해운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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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67·사진) 한진그룹 회장이 구조조정 태풍 속에서 결국 백기를 들었다. 독자적으로 진행하던 한진해운의 경영 정상화를 채권 은행에 맡기기로 했다. ‘경영권 포기’를 각오한 조치다. 상황은 그만큼 심각하다.

채권단에 자율협약 신청, 경영권 포기
조선·해운 등 구조조정 막 올라
6조 넘는 빚에 독자생존 좌절
채권단 "현대상선과 합병 가능”

한진해운을 시작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의 막을 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선 이후 정치권과 정부는 고강도 구조조정 의지를 비쳤다. 5대 취약 산업으로 지정된 ‘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건설’의 대수술이 시작된 것이다.

한진해운은 22일 이사회를 열고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 25일 채권단에 ‘자율 협약’을 신청키로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자율협약이란 채권 금융회사들이 빚 상환을 연기해 주는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이다. 워크아웃·법정관리와 달리 법적 구속력 없이 채권단 합의로 진행한다.

이날 결정은 예상 밖이다. 한진 관계자에 따르면 조 회장은 최근까지 ‘정부가 해운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도와주면 한진해운도 충분히 살아날 수 있다’며 호소해 왔다. 하지만 ‘빚 더미’ 압박에선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한진 관계자는 “그룹이 2013년부터 유상증자·대여금 등 1조원을 지원했지만 해운업황이 급격히 나빠지며 독자적 노력만으론 정상화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진해운 부채는 지난해 말 현재 6조6000억원에 이른다. 역시 지난달 말 자율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4조8000억원)보다 많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말 조 회장을 만나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다음주 채권단 회의를 열어 자율협약 구조와 수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진해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현대상선처럼 조건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런 시나리오에 따르면 현대상선처럼 한진해운도 해외 선주와의 선박 사용료 인하 협상과 회사채 채무 재조정 등에 성공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채권단은 대출 만기를 연장해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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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회장은 “지금보다 구조조정 방법 선택지가 늘어날 것”이라며 “아직 예단할 순 없지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도 경우의 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합병 논의는 두 회사 모두 채권단 통제 아래 완전히 들어가야 가능하다. 그래야 채권단이 양사의 대출금을 주식 지분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통해 최대주주가 되기 때문이다.

채권단 일각에선 “조 회장이 대주주로서 ‘사재 출연’ 등 고통 분담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사재 300억원을 출연한 바 있다.

오정근(아시아금융학회장)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 교수는 “구조조정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선박을 잘 아는 제3의 민간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정치적 입김에 좌우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준술·이태경·박성민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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