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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의 완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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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공개적으로 통화긴축의 완화를 공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정책기조가 안정화시책이였음에 비추어 경제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재무장관은 비록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여건이 바뀌었으므로 연말 총통화억제선 9·5를 고수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수치적 목표에 매달리지 않을 방침』까지 덧붙이고 있다.
주무장관의 전례 드문 이 같은 정책변경시사는 두말할 필요 없이 올 들어 계속되어온 경제적 어려움과 혼선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향을 근원적으로 바꾸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간 국내경제의 국면을 파악하는 시각에서 정부와 민간사이에 현격한 격차가 있었던 점에 비추어 이같은 통화정책의 수정은 지금까지 노출되어온 양자간의 견해차이가 좁혀진 결과로 짐작된다. 현재의 경기국면은 어느모로 보아도 낙관할 수 없는 혼미한 상태에 머물러있다. 해외시장의 침체와 내수부진, 민간투자의 침체와 투자환경의 불투명, 판매부진과 자금난등이 겹쳐진 매우 저조한 국면이라는 것이 민간업계의 주장이다. 그에 더하여 부실산업과 국제수지의 어려움마저 가중되어 대외경쟁력과 경제의 자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 같은 현실판단이 어느정도 근거 있는 것이라면 통화정책, 특히 그것이 긴축정책일 경우 기대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총통화나 기타 통화정책의 주요목표들을 신축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통화정책은 워낙 실물경제의 변화에 적응시켜 탄력성 있게 운영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며 「수치에 얽매이는」 경직적 운영은 어느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긴축일변도의 경직운영으로 생산적 투자와 기술혁신투자에 애로를 형성한다면 경기의 자생적 회복력을 잠식할 뿐이다.
다만 우리는 이 같은 통화정책의 수정이 지금까지의 안정화 기조의 근본적 선회나 확대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통화정책의 신축성은 실물경제를 제약해서도 안될 뿐 아니라 그것의 안정적 운행을 교란할 만큼 절제 없는 경우도 바람직하지 않다. 때문에 지금 중요한 것은 실물경제의 침체와 혼미를 풀어나가는 통화의 유도적 기능이 필요할 뿐이며 60∼70년대의 인플레의존정책의 재현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국내인플레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수지의 어려움마저 가중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화정책의 완화는 어디까지나 생산적 통화공급의 채널을 넓히는데 초점을 두어야하며 긴축을 위한 긴축, 자금살포를 위한 완화는 어느쪽도 바람직하지 않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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