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서의 문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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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어뢰정사건은 우리나라와 중공사이의 「각서」 교환으로 마무리를지었다. 「각서」 (메모랜덤) 는 「조약」 보다는 약하지만 외교문서의 하나로 엄연히 기록성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 담겨 있다.
문서의 형식도 형식이지만, 그 속의 글귀들도 「외교문서」 인 이상한마디, 한마디의 의미와깊이에 신경을 쓰지않을수없다.
외교는 형식이 전부라고 할만큼 체면이 중시된다. 바로나라의 체통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한· 중공 각서의 서명자(ad-dresser)는 우리쪽에선 홍콩 「총영사」이고, 저쪽은 신화사통신 홍콩분사「부사장」이다. 「총」과 「부」의 차이는 있지만, 「부」쪽은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의 권한을 위임받아」라는 직위의 수식어가 정확하게 붙었다.
「권한을 위임받아」(authorized by)라는 영문표기를 보면 우리 외교관의 상대로서 모양은 갖출만큼 갖추었다.
중공어뢰정이 우리영해를 비록 「부주의」(inadvertently) 이긴 하지만 침범한 사실을 어떻게 사과했는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외교의「형식」과 주권국인 우리의 「체면」과 미묘한 관계를 상징하고 있는문구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중공은 바로 그런 문구들가운데 「풀 어폴러지」full apology)라는 표현을 선택했다.
외교상 시비를 가리는 「사과」 형식엔 몇가지 격이 있는데 가장 가벼운사과의 경우가 「디플로」 (deplore), 그보다 좀 진지한 사과가 「리그레트」 (regret), 그리고 가장 진지한 사과가 「어폴러지」 다.
가령 「디플로」 같은 예는 1974년 일황(부황)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2차대전때의 일을 미국에대해 그렇게 표현했다. 『나는 깊이 개탄하노니…』 (I deeply deplore)라고 한것이다.
그 엄청난 전화에 대해 「디플로」정도의 사과를 한것은 미국이 「대인다운 아량」으로 귀엽게 봐준 경우다.
지난해 가을 전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때 일황은 두나라 사이의 불행했던 역사에 대해 『참으로 「유감」스런 일』로 『깊이 반성』한다고 표현했었다. 바로 「리그레트」의 경우다.
이번에 중공이 「어폴러지」라는 문구를 고른 것은 그런 시각에서 보면 우리의 격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물론 잘잘못으로 보면 중공은 꼼짝없이 사과해 마땅하지만 「외교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번 「어폴러지」는 두나라의 외교사상 하나의 「마일스톤」(이정표)이 될만하다. 다만 이런 해석은 형식상 그렇다는 얘기일 뿐이지만, 그러나 어떤 「조짐」으로 평가할 가치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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