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제도속의 「기형」논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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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6학년도부터 실시되는 대입논술고사는 대부분 대학이 배점을 총점의 3∼5%로 낮게 잡은 것이 특징으로 지적되고 있다.
당초 10%까지 허용된 것을 대학 스스로가 이처럼 하향한 것은 채점결과에 대한 수험생들의 승복을 보장받을 수 없고 다른 대학에 비해 배점이 많으면 지원기피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술고사는 해방후 지금까지 사지선다형 교육에만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사고력·창장력·표현력을 길러주고 학생선발 기능이 전혀 없는 대학에 부분적으로나마 학생선발의 재량권을 주자는 취지에서 시행을 보게된 것이다.
그동안 각 대학이 독자적인 실시방안을 확정짓지 못하고 눈치를 보다가 마침내 주어진 재량의 폭마저 축소 조정한 사정은 짐작 못할게 없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율의 확대를 요구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대학의 모습은 좀 뜻밖이라는 느낌을 준다.
논술고사의 배점을 줄인다해서 말썽의 소지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논술고사가 논문이냐, 작문이냐는 성격규정에서부터 맞춤법이나 한자가 틀려도 채점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 교육적으로 타당하느냐에 이르기까지 논난 가능성은 많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3∼5% 정도만 시행해 보았다가 그 결과에 따라 차차 확대하는 것이 현명치 않겠느냐는 논리 또한 이해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논술고사가 교육의 질을 높이고 미내를 살아갈 부장적인 세대들을 기르는데 그 장기적인 주안점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학이 너무 눈치들을 보는 게 아니냐는 일부 여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어진 자율도 소화를 못하면서 어떻게 더 큰 자율을 요구하겠느냐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논술고사에 관한 한 대학이 주어진 자율의 일부를 반환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대학의 허약한 체질보다는 제도의 모순에서 찾아질 수 있다.
다른 모든 과목은 국가에서 관리하면서 유독 논술고사만을 대학에서 맡는데서 오는 수험생들의 혼난이나 갈등을 설득할 자신이 대학에 없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시행과정에서 그 취지가 퇴색하는 일이 생긴다면 곤란하다. 비록 지금은 10%의 한계에 머물러 있지만 논술고사의 목적이 교육적인 것이라면 더욱 그 폭을 넓혀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지 않아도 교육개혁심의회의 발족을 계기로 현행 대입제도의 개혁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판에 박은 듯한 인간을 양산해내는 그동안의 획일적인 교육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인 요청이 되고 있다. 그런 교육제도는 무엇보다 미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못된다는 지적이 나온 지는 오래된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중시하는 논술고사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다른 과목이라고 해서 비슷한 출제나 채점을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다른 모든 분야와 함께 교육 또한 고도정보사회에 맞게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대학의 자율성 확대와 궤를 같이 해서 대학이 입시를 주관하는 것은 하나의 추세라고 보아도 된다. 논술고사는 그 준비과정이란 시각에서 각 대학은 「기형」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논술고사를 소신을 갖고 치르는 것은 대학의 권위을 높이는 계기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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