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후 아닌 근본의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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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목동 철거민문제가 마침내 부구청장연금에까지 이른 것은 경위야 어떻든 불행한 일이다. 20일 밤엔 현장공사사무실의 방화도 있었다.
지난해 여름 서울시가 목동. 신정동일대 4백30여만평방m규모의 신시가지를 만들면서 지역주민들과의 마찰이 생기리라는 것은 거의 필지의 일이었다. 더우기 주민들의 대부분이 이른바 불량주택 철거시책에 따라 이곳으로 치주해 온 사람들이고 상당수는 세입주자라서 마찰의 양상 또한 수월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어 왔다.
지난해 8월부터 50여차례나 벌어진 주민들의 시위는 한마디로 상대적인 박탈감이랄까, 소외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서울시는 「사회정책적·구호적」차원에서 나름대로 할만큼 했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잃거나 옮겨야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선 그런 배려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동안 도시의 개발·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영세민등 소외계층의 반발이 계속 말썽이 되고 사회문제가 돼온 이유가 사후대책이나 배려에서 근본에의 접근보다 관료의 편의위주로 손쉽게 처리하는 자세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공업화·도시화가 불가피한 이상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일부의 희생 또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발상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해서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만인을 만족시킬 방안이 없다고 해서 주민들의 의견을 소홀히 다루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행정방식은 이제 지양할 때가 되었다.
행정 독주의 70년대 사고방식이 그대로 통용되기에는 시민들의 권리의식이 한층 높아졌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목동의 경우는 사태가 뜻밖에 갈팡질팡하는 인상이며 결국은 과격한 집단행동으로 확대되었다.
그 증후를 보면 문제의 주민들은 공감에 호소하기보다는 감정적인 문원에 치우쳐 있는 것 같다.
오비이락이길 바라지만 이번 사태는 서울시가 세인주자에 대한 구제책이 발표된 뒤에 나왔다. 세입주자에 그만한 혜택이 돌아간다면 주택주에 대한 보상이 상대적으로 약소했다고 여긴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의 합의사항은 제쳐두고 아파트의 무상입주를 요구했다는 얘기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그러나 요구에는 한계와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 또한 제3자의 이해와 동정을 받아야지 무리와 억지의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사태를 풀기가 어렵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맞서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도 불안하다.
문제의 주민들도 그 점에선 서로 의견을 충분히 모으고 그 의견을 가지고 담판할 대표를 뽑아 차근차근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야할 것이다. 이번 목동의 경우를 거울삼아 앞으로의 개발정책은 토지의 공개념에만 지나치게 집착해서 주민과의 타협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법적인 하자가 없는 행정이 꼭 칭찬받는 행정은 아니다. 좋은 행정은 합리적이고 공평한 법에 바탕을 두어야하지만 법적용을 않고도 해결점을 찾아서 말썽의 소지를 없애야하며 이에 못지 않게 꾸준한 설득과 민주방식의 해결점 모색 등도 긴요하다.
매사를 무리하게 강행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원만히 해결한다면 이번과 같은 마찰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증후나 상황에만 매달려서 시비곡직을 가리면 결국 목동사태의 꼴이 되고 만다는 교훈 또한 값지다.
근본에 접근하는 노력은 모든 문제해결의 대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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