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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왜 안 뽑나" 기다리다 지친 양상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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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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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

"안 뽑는 게 아니고 못 뽑는 거죠."

빅리그 탈락 선수 이삭줍기 실패
LG, 선발진 구멍나 불안한 출발
지난해 초반 싸움 밀려 9위 아픔

양 감독 "늦어도 15일까진 와야"
침묵 깨고 불편한 심기 드러내

지난 5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를 앞두고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만난 양상문(55) LG 트윈스 감독은 정규시즌 개막 이후에도 외국인 선수 한 자리가 비어있는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LG는 현재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인 선수 한도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즌 활약한 투수 헨리 소사(31), 3루수 루이스 히메네스(28)와 이른 시기에 재계약을 체결했지만 나머지 한 명을 뽑는 데 시간을 지체하다 시즌 개막을 맞이했다.

프로야구 팀별로 외국인 선수 3명(kt는 4명)은 팀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1·2선발 투수나 중심타순을 맡기 때문이다. 매년 바뀌는 외국인 선수 구성에 따라 팀 순위가 출렁인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 당연하지만 2016년 LG는 좀 이상하다.

1998년 프로야구가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한 뒤 선수를 선발하지 못한 건 드문 일이다. 쌍방울 레이더스가 98년 모기업 재정난으로 외국인 선수를 뽑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스카우트한 선수가 다치거나 부진해서 대체 선수를 탐색할 때 공백이 생기는 경우는 있어도 LG처럼 아예 뽑지 않았던 사례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LG 구단은 ‘이삭 줍기’를 시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개막 로스터에서 탈락한 선수를 기다리는 전략이었다. 지난 시즌 LG에서 뛰었던 외국인 타자 잭 한나한에게 스카우트 역할을 맡겼다. 그러나 LG가 점찍은 선수들은 모두 MLB에 올라갔다. 1차 데드라인으로 삼았던 지난달 25일 전후에도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결국 LG는 선발 투수 한 자리를 비워둔 채 지난 1일 개막전을 치렀다. MLB도 지난 4일 시작됐다.

양 감독은 “늦어도 4월 15일까진 (외국인 투수가)와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선수를 뽑을 시기는 이미 지났다. 시장에 나와 있는 선수 중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양 감독은 외국인 선수선발 얘기만 나오면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데드라인을 언급한 건 LG 구단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10개 구단 중 가장 공격적인 스카우트를 하는 한화도 외국인 한 자리를 채우지 못하다가 3월 초 투수 알렉스 마에스트리(31·이탈리아)를 뽑았다. 마에스트리의 연봉(5000만엔·약 5억2000만원)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한화가 원하는 수준급 선수는 아니지만 외국인 투수가 2명은 있어야 선발진을 꾸릴 수 있기에 스카우트를 서둘렀다.

지난해 LG의 순위는 90년 창단 후 가장 낮은 9위에 머물렀다. 우규민(31)·류제국(33) 등 국내 선발들이 부상 때문에 5월 이후에야 복귀하면서 초반 싸움에서 밀린 탓이다. 올해는 외국인 투수 공백으로 고민하고 있다.

올해 LG에는 젊고 빠른 야수들이 많다. 시범경기에서 빠른 야구를 선보였고, 한화와의 개막 2연전에서 소사와 우규민을 내세워 모두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3일 한화전이 비로 취소돼 하루를 벌었고 5일 KIA전에 류제국이 나와 1-4로 졌다. 소사가 나흘 만 쉬고 6일 KIA전에 등판할 예정이었으나 경기가 또 순연됐다. 4·5선발 공백을 비가 메워주는 것이다. 5선발 요원 봉중근(36)의 컨디션도 나빠 신예 이준형(23)·임찬규(24) 등이 대신 나설 전망이다.

양 감독은 “(선발 로테이션이) 두 번 정도 돈 이후엔 외국인 투수가 꼭 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았던 초반 분위기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 감독의 바람대로 일주일 안에 새 선수를 구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마운드에 서기까지 최소 일주일이 걸린다. 훈련이 덜 돼 있는 선수라면 실전등판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양 감독의 원망을 들어도 LG 구단 프런트는 할 말이 없다.

LG 팬인 한민석(31)씨는 “LG의 젊은 선수들이 좋은 기량을 보여 주고 있어서 올 시즌 기대가 정말 크다. 그런데 외국인 선발에서 구멍이 나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팬들 사이에선 ‘아직 팀을 구하지 못한 팀 린스컴(2009년 MLB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이 LG에 온다더라. 외국인 선수가 이미 입국했다고 하더라’는 소문만 꼬리를 물고 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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