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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트러스트 베이비’의 출현…상속 다툼 사라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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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상속의 기술판례로 본 상속 분쟁

피땀 흘려 한 푼 두 푼 모은 재산. 눈을 감는 순간부터 그 재산은 다른 사람들의 것이 된다. 이 과정에서 상속 분쟁도 시작된다. 재산이 많든 적든 상속 분쟁은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가족 간 사이가 영영 틀어질 수도 있고, 예상보다 많은 세금을 내야 할 때도 있다. 상속과 관련된 법적인 분쟁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법 개정으로 유언대용신탁 같은 새로운 상속 방법도 등장했다.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들여다봤다.

‘트러스트 베이비’의 출현 … 상속 다툼 사라질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 즉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를 영미권에서는 ‘트러스트 베이비’(Trust Baby)라고도 부른다. 신탁(trust)을 통해 재산을 물려받은 아이라는 뜻이다. 대리인(수탁인)에게 재산의 관리와 처분을 맡기는 게 신탁이다. 대리인은 개인이 될 수도 있고 금융기관이 될 수도 있다. 신탁을 통하면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에게 상속할 수 있다. 이제는 한국에도 트러스트 베이비가 등장할 전망이다. 2011년 신탁법이 개정되면서 증권회사의 금전 신탁처럼 상업적으로만 활용되던 신탁이 상속 등 민사 영역에서도 가능해졌다. 유언을 신탁 형태로 하는 ‘유언대용신탁’이 등장한 것이다. 최근 늘고 있는 상속 관련 소송으로는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 유언 무효 소송, 상속재산 분할 청구 소송의 비중이 가장 많았다.

금융사나 대리인이 관리하는 유언대용신탁
2011년 법개정으로 합법화, 법원도 효력 인정
상속법이 강제하는 재산 분할도 막을 수 있어

유언 존중받지만 법률상 가족 균등 상속 보호
기부 재산도 유류분 소송하면 가족이 가져가
치매 유언 무효…판단 대신할 후견인 필요해

 유언대용신탁의 기원은 중세 십자군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은 미성년자나 여자가 재산을 상속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성주(城主)가 전쟁 중 사망하면 재산이 국가로 귀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수 성주는 ‘믿을 만한’(trustful) 지인에게 ‘내가 죽으면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성과 토지를 맡아달라. 대신 그동안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의 30%를 당신이 가져가라’ 등의 계약을 맺었다. 당시 성주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신탁은 이제 영미권에서는 보편적인 상속 방법으로 자리 잡았으며, 일본도 지난 2006년부터 상속신탁 제도를 도입해 상속에 활용하고 있다.

2011년 법 개정 이후엔 국내에도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0년 국내 최초로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한 상속 설계 상품을 내놓은 하나은행은 현재까지 80여 건의 신탁 상품을 판매했다. 이 신탁 상품의 총자산 규모는 2600여억원으로 건당 32억여원의 상속 재산이 걸려있는 셈이다. 고객의 과반수는 강남 3구(강남 24.5%, 송파 15%, 서초 11.5%) 주민이었으며 분당(15%)과 동부이촌동(6%)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상품을 이용한 사람들의 연령대는 40·5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했다.

실제로 80대인 A씨는 자신의 소유인 빌딩 소유권과 관련해 신탁 계약을 맺었다. A씨는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진짜 성공할 수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동안 수십억원을 조건 없이 빌려줬다. 하지만 아들은 계속해서 사업에 실패했고 A씨에게는 결국 빌딩 한 채밖에 남지 않게 됐다. 그러자 딸들이 A씨를 찾아와 “이 빌딩마저 팔아 오빠에게 돈을 빌려주면 그때부터 아버지를 무슨 돈으로 부양하느냐”며 자신들에게 빌딩의 소유권을 넘기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하자고 했다. 하지만 유언은 A씨 사후에 효력이 발생하는 데다 맨 마지막 유언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걱정이었다. 아들이 나중에 A씨를 설득해 유언장 내용을 바꿔 재산을 가져갈 수도 있고, 자녀들에게 재산을 동등하게 배분하게 돼 있는 상속법에 따라 빌딩 판 돈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당시 법률 자문을 맡은 법무법인 ‘바른’의 김상훈 변호사는 이때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해 A씨가 살아있는 동안 아들이 빌딩을 가져갈 수 없도록 계약을 체결했으며, 신탁의 내용을 바꾸기 위해선 가족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김 변호사는 “유언대용신탁은 기본적으로 재산을 남기는 사람과 대리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이기 때문에 기존 상속법하에서는 불가능한 다양한 조건을 걸어둘 수 있다”며 “재산의 쓰임새에 대한 설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아들이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을 때 병원 건물을 물려준다’거나 ‘지적장애인 아들에게는 부동산에서 나오는 수익 일부만 주고 손자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 손자에게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등의 내용을 상속의 조건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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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대용신탁 효력 법적으로 인정

생전신탁(living trust)이 가능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신탁의 수익자를 재산을 나눠주는 사람(피상속인) 자신으로 지정해 놓으면 자신을 위해 쓸 수도 있다.

2014년 8월 재력가 정씨는 현금 9억여원과 경기도 일산에 있는 본인 소유의 토지 1만2000㎡, 4층짜리 연립주택 등에 대해 ‘생전에는 내 병원비와 요양비로 매달 700여만원을 사용하고 사후에는 네 명의 딸에게 동일하게 나눠준다’는 계약을 하나은행과 체결했다. 당시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던 전씨는 ‘이 계약을 해지 혹은 변경하기 위해선 딸 네 명의 동의를 모두 얻어야 한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하지만 5개월 뒤 전씨는 은행을 다시 찾아와 ‘치매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다’며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은행 측은 “이미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됐으며 계약 무효가 되면 치매에 걸린 전씨를 대신해 재산에 욕심을 내는 딸 한 명이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우려가 있다”며 계약 해지를 거부했고 결국 둘 사이의 분쟁은 법정으로 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지난해 11월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의정부지법 민사2부(부장 박주현)는 “전씨가 계약을 맺은 당시 치매 때문에 의사 무능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맺어진 계약이기 때문에 전씨가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은 유언대용신탁의 효력을 법적으로 인정한 국내 첫 사례다. 이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유언대용신탁이 상속의 공식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국내 대형 로펌인 김앤장, 바른, 충정 등은 유언대용신탁 전담반을 준비하며 본격적인 고객 유치 경쟁에 돌입했으며, 시중 은행들도 신탁 관련 금융상품을 본격적으로 내놓고 있다. 법무법인 ‘충정’의 최수령 변호사는 “지난 1월 변호사 10명으로 구성된 유언대용신탁 전담팀을 발족했으며 삼성생명과 제휴해 신탁상품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옵션을 활용할 수 있는 신탁이 상속의 주요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업 승계 방법을 고민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에게도 유언대용신탁은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중소기업 오너 경영자의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공동분할상속을 피해 여러 상속인 중 가장 적합한 한 명의 후계자에게 가업을 무사히 넘겨줄 것인가’이다.

공동분할상속이란 피상속인이 사망했을 때 자동적으로 재산이 자녀 등 상속인들에게 동일하게 공동분할되는 상속법에 따른 것이다. 상속자인 자식이 두 명이면 5대 5로 재산이 분할된다. 구체적으로 회사의 주식 60%를 가진 오너 경영인이라면 사망 후 두 자녀에게 회사 주식을 30%씩 나눠줘야 한다. 이 경우 주식 40%를 소유한 제3자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생긴다. 그걸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생전에 증여할 수 있지만 원치 않은 시기에 경영권을 후계자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김상훈 변호사는 “신탁을 활용하면 유연하게 가업 승계 설계를 할 수 있으며 신탁 재산의 경우 유류분 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분할 상속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 “신탁제도가 단순히 유류분 제도를 피해가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된다면 부분적으로 무효화 될 여지는 있다”고 덧붙였다.

상속 분쟁 중 유류분 반환 소송 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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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분이란 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된 상속 재산 일부분을 말한다. 유언자가 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할 경우 남은 가족들의 생활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법으로 상속분을 정해놓은 것이다.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은 최근 일어나는 상속 분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2011년 471건에서 2014년 811건으로 증가했다. 민법에서는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유류분으로 법정 상속액의 2분의 1을,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인정하고 있다.

“딸아 내가 죽거든 불효자인 너희 오빠와 남동생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 A씨는 죽음을 앞둔 지난 2012년 ‘내가 눈을 감기 전까지 나를 돌봐주고 간호해준 딸에게 전 재산 36억원을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A씨에게 장남은 ‘말 한마디 없이 이민을 떠나 연락 한 번 없는 불효자’였고 차남은 ‘자신의 건물을 가압류한 불효자’였다. 하지만 장남은 A씨가 숨진 뒤 여동생을 상대로 “법적으로 보장된 상속분을 돌려받겠다”며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7부(부장 김진현)는 “A씨의 유언장이 효력이 없는 건 아니다”면서도 “유언장 내용과는 별도로 장남은 민법에서 인정하는 유류분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며 지난해 11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부모가 불효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거나 기업인이 장자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싶어도 유류분 제도로 인해 사실상 그럴 수 없다. 김 변호사는 “현행 법체계로는 상속 시 유류분 문제를 피해갈 방법이 없지만 신탁 상속 재산은 유류분 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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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건 상속재산 분할 청구 소송이다. 이 소송은 2011년 154건에서 2014년 266건으로 늘어났다. 민법에 따라 자녀는 남녀 구분 없이 동등하게 재산을 분할받고 배우자의 경우 자녀가 분할받는 액수에 2분의 1을 가산해 받는다.

고(故) 반야월(1917~2012, 본명 박창오)씨가 타계한 후 박씨의 2남4녀 사이에서 벌어진 법정 분쟁도 이 경우다. 박씨는 2012년 3월 눈을 감으며 5000여 곡에 대한 저작권과 아파트 한 채 등을 유산으로 남겼다. 다툼은 석 달 뒤 벌어졌다. 셋째 딸인 가수 박희라(63)씨가 별도로 보관하던 3억9000만원이 분할 대상에서 빠졌다는 이유로 나머지 자녀들이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박씨는 법정에서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받은 월급”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공동 상속재산이니 똑같이 나누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박씨는 이번에는 남동생 A씨를 상대로 1억2000만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대신 내준 수천만원의 상속세를 돌려받지 못했으며 상속재산 분할 협의로 결정된 자신의 몫을 동생이 아직 주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에 A씨는 “누나가 저작권 수입을 반씩 나누기로 구두 합의했지만 주지 않고 있다”며 “나도 받을 돈을 못 받고 있기 때문에 줄 돈이 없다”고 주장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민사 1부는 지난달 11일 양측이 주고받을 돈을 정산한 결과에 따라 A씨는 박씨에게 7500여 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또 반야월의 모든 저작권은 박씨가 단독 상속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상속재산 분할 협의에서 망인의 유언에 따라 저작권은 박씨가 승계한다고 명시적으로 합의했다. 이와 다른 합의가 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언장 작성 당시 치매 여부 중요

유언 무효 소송도 늘고 있다. 이 소송은 유언자가 ‘치매에 걸려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는 등의 이유로 제기하는 소송이다. 치매 등의 이유로 합리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단되면 유언은 무효가 된다. 2012년 3월 B씨는 치매와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던 70대 노모가 갑자기 연락이 두절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확인 결과 노모는 남동생 집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노모는 ‘20여억원 상당의 전 재산을 동생들에게 물려주며 재산 관리도 동생 두 명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약정서와 유언장을 작성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법원에 “어머니가 치매로 판단력을 잃어버렸다”며 금치산자 선고 요청과 유언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윤강열)은 “약정서와 유언장을 쓸 당시 치매 증상이 상당히 진행돼 그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약정서와 유언장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민법 제1063조에 “금치산자의 경우 의사 능력이 회복된 때에 유언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즉, 치매 등으로 금치산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한 유언은 효력이 없는 것이다.

김현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피상속인이 사망하기도 전에 재산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가정법원에 성년 후견인 신청이 늘었다”고 전했다. 성년 후견인 제도는 치매나 노환 등 건강상의 이유로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운 사람에 한해 의사 결정을 대신해 줄 후견인을 정하는 제도다. 최근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 와중에 신격호 회장에 대해 넷째 여동생이 성년 후견인 지정을 신청하면서 화제가 됐다.

기여분 산정에 대한 분쟁도 많다. 자녀나 배우자가 아니어도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재산을 불리는 데 도움을 줬거나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전까지 돌봐줬다면 상속재산 중 일정 비율을 기여분으로 받을 수 있다. 나머지 상속인들은 이 기여분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을 나눠 가지게 된다.

독일에 살던 C씨는 이혼 후 1990년 홀로 한국에 귀국해 조카 D씨와 자주 교류했다. 2011년 췌장암이 발견되어 투병할 때도 D씨가 극진히 병간호하자 다음 해 4월 D씨를 입양하며 “현금 1억원을 제외한 전 재산을 D에게 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해 10월 C씨가 사망하자 자녀들이 나타나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졌다. 서울가정법원 제2부(재판장 배인구 부장판사)는 D씨가 C씨의 자녀들에게 낸 재산분할 청구 소송에서 D씨의 “기여분을 25%로 정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피상속인의 재산을 늘리는데 여러 상속인 중 누군가 더 많은 기여를 했다면 이 부분도 인정을 해준다.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던 부부 중 남편이 사망했다. 그런데 부부가 투자 목적으로 사들인 오피스텔이 남편 명의로 되어 있었다. 부인은 “남편과 내가 함께 운영한 분식집의 매출로 사들인 것이므로 오피스텔에 대해 절반의 기여분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부인이 매일 남편과 함께 일한 점을 감안해 부동산 자산에 대해 20%의 기여분을 인정했다. 이송호 김앤장 변호사는 “상속재산을 나누는 절차가 진행될 때 기여분이 많은 사람이 청구를 하고 그게 법원의 인정을 받으면 기여분만큼 청구인이 가져가게 된다”며 “보통 돌아가신 부모님의 병 수발을 들거나 부양을 한 자녀가 기여도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재산은 큰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인식이 점차 흐려지면서 ‘자신들의 몫’을 주장하는 형제자매들이 많아져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과거에는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많이 옅어지면서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던 다툼이 점차 법정 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판례 1 불효자도 웃는다

2012년 죽음을 코앞에 둔 A씨는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준 딸에게 ‘전 재산 36억원을 양도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A씨 사망 직후 장남은 여동생을 상대로 “법적으로 보장된 상속분을 받겠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판결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7부는 “A씨의 유언장이 효력이 없는 건 아니다”면서도 “유언장 내용과는 별도로 장남은 민법에서 인정하는 유류분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2014년 11월)

판례2 기부한 주식도 돌려받는다

2009년 타계한 고(故) 허영섭 녹십자 회장은 유언장을 통해 “내가 죽으면 재산 중 일부를 새터민 돕기에 사용하라”며 녹십자홀딩스 주식 56만 주를 사회복지재단 등에 기부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던 장남 허성수 녹십자 전 부사장은 복지재단을 상대로 “내 몫의 주식 지분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재판부는 “허씨는 본인 몫의 유류분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며 “주식 37만 주와 배당금 6억4000만원을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2014년 8월)

판례3 기여분을 인정한다

이혼 후 홀로 지내던 C씨는 2011년 췌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곁을 지켜준 건 조카 D씨. C씨는 그런 D씨를 양아들로 삼은 후 “현금 1억원을 제외한 전 재산을 D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겼다. C씨가 눈을 감은 후 자녀들이 나타나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졌다. 서울가정법원 제2부는 D씨가 C씨의 자녀들에게 낸 재산분할 청구 소송에서 D씨의 기여분으로 25%를 인정하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5년 12월)

판례4 치매 환자의 유언은 무효

2012년 3월, 치매와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던 70대 노모가 사라졌다. 아들 B씨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수소문을 한 끝에 노모가 남동생 집에 머물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노모는 ‘20억원 상당의 재산을 동생 두 명에게 모두 맡긴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남겼다. B씨는 “외삼촌이 판단 능력이 떨어진 노모를 설득해 엉터리 유언장을 작성했다”며 법원에 노모에 대한 금치산자 선고 요청과 유언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6부는 “유언장을 쓸 당시 치매 증상이 상당히 진행돼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유언장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2015년 10월)

판례5 저작권은 유언에 따라 승계한다

‘소양강 처녀’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을 작사한 반야월(본명 박창오)씨가 눈을 감은 지 석 달 후 2남4녀는 법정에서 다시 만났다. 셋째 딸 박씨가 별도로 보관하던 아버지의 재산 3억9000만원이 분할 상속재산에서 빠졌다는 이유에서다. 박씨는 남동생을 상대로 “대신 내준 수천만원의 상속세를 돌려받지 못했다”며 1억2000만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고 남동생은 “누나가 저작권 수입을 반씩 나누기로 합의했지만 주지 않고 있다”며 맞섰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민사 1부는 “망인의 유언에 따라 저작권은 박씨가 승계한다고 명시적으로 합의했다”며 “이를 제외하고 정산한 결과에 따라 남동생이 박씨에게 7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2016년 3월) 


법적 효력을 갖는 유언의 5가지 방법

1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자신이 직접 유언의 내용을 작성하는 방법. 유언장 작성일·주소·성명을 직접 작성해야 하고 날인까지 마무리해야 효력 발생. 작성법이 편리하지만 필체의 진위 여부를 두고 다툼의 소지가 있음.

2 녹음에 의한 유언

녹음기나 영상 기기를 이용해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와 성명, 연월일을 육성을 녹음하는 방법. 녹음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자 본인의 유언임을 확인한다는 내용과 자신의 성명을 함께 녹음해야 효력 발생.

3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유언자가 증인 2명을 참석시켜 공증인 앞에서 유언의 취지를 말하는 방법. 공증인이 이를 필기 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내용을 확인하고 각자의 서명을 기입해야 효력이 발생.

4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유언자가 유언장을 봉인해 유언의 내용을 비밀로 지키는 방법. 유언자는 봉인된 유언장을 2인 이상의 증인에게 제출하여 유언서가 자신의 것임을 표시한 후 봉서 표면에 날짜를 기재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각 서명 또는 날인하는 방식. 표면에 기재된 날짜로부터 5일 이내에 공증인 또는 법원 서기에게 제출하여 확정일자를 받아야 효력 발생.

5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유언자가 2명 이상의 증인을 참석시켜 말로써 유언을 남기는 방법. 증인 중 1명이 필기 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에게 내용을 확인받은 후 7일 이내에 법원에서 검인 신청을 해야 효력 발생.

김민관·박미소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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