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로 몸 안에 새 핏줄을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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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주사 한대로 몸 속에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각종 질병을 치료해 보려는 꿈같은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름하여 혈관신생인자(AF)에 대한 연구다.
이것만 실용화가 된다면 뇌혈전증(중풍)이나 심근경색·관상동맥경화 등 혈관이 막혀 목숨을 잃거나 폐인이 되는 일은 없어질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암의 퇴치에도 한몫을 하리란 전망이고 보면 이들 연구자들의 주장대로 「위대한 의학혁명」또는 「의학사의 신기원」 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AF연구동향을 꾸준히 추적해오고 있는 임수덕 박사(피부과전문의·서울대 의대 외래 교수겸 서울대 암 연구소특별연구원)로부터 AF에 대해 알아본다.
AF의 중심 그룹은 미국보스턴대학의 「해리·골드스미드 교수 (일반의과). 그는 장수술을 한 후 장간막(장관을 싸고있는 막)을 덮어주면 상처가 잘 낫는 것으로 미루어 이 장간 막이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는데 착안하여 73년부터 실험에 들어갔다.
우선 개의 장간막을 뇌 조직에 연결한 결과 3일만에 덮은 뇌 조직에서 새로운 혈관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고 장간막에는 혈관을 만드는 신비의 물질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되었다. 이 실험은 혈관이 분포되어있는 곳에 연결한 것이었지만 다음 단계로서 뇌 조직과 뇌혈관을 손상시킨 후 한쪽은 장간막으로 연결하고 다른 한쪽은 그대로 둔 결과 연결한 쪽에서만 새로운 혈관이 형성됨으로써 장간막에 혈관신생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이어 76년부터는 개의 뇌 조직으로 가는 혈관을 묶어 피의 소통을 인위적으로 중지시킨 후 세포가 빈사상태에 빠졌을 때 장간막으로 상처를 덮은 결과 역시 혈관이 새로 생기면서기능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80년에는 뇌혈전증으로 언어 및 운동중추가 마비된 식물인간을 대상으로 그의 장간막을 꺼내 머리 속에 연결시킨 결과 1주일만에 말도 하고 웃을 수 있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이어 말단 부위에 피가 통하지 않아 손을 절단해야할 위기에 처한 환자의 손등에 그의 장간막을 연결시켰더니 손에 열기가 생기면서 창백하던 피부색깔도 점차 정상으로 돌아와 3주만에 정상기능을 회복했으며, 그후 1년 동안 관찰한 결과 복부와 손이 장간막으로 연결돼 있어 보기 흉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후 장간막을 갈라내 뇌 조직이나 피부 속에 연결시켜 새로운 혈관이 생기길 기대해봤으나 이것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그후 연구방향도 장간막 속에 있는 미지의 물질을 찾아내는 쪽으로 옮겨갔으며 그간의 연구결과 뇌혈전증이나 심근경색을 일으킨 부위의 조직 속에서 극미량이나마 「신비의 물질」을 추출할 수 있었고 84년에는 고양이의 장간막에서 이 물질을 다량 추출하는데 성공해 광범한 임상실험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기대되는 적용범위는 우선 뇌혈전증. 증상이 생긴 2일 이내에 이 물질을 주사하면 뇌 조직의 손상 없이 치료할 수 있으며 심근경색증(심장마비)도 24시간 이내에 주사하면 혈관재생으로 위험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혈관의 협소나 경련으로 인한 협심증도 단 1회의 주사로 치료될 수 있으며 이밖에 류마트스 관절염·만성창상에도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고있다.
뿐만 아니라 암 치료에도 적응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있다. 즉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더 많은 영양분(혈액)을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해 종양혈관인자(TAF)가 존재해 암세포의 젖줄인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TAF의 기능을 막는 항혈관종양인자를 암 부위에 투여하면 암세포가 자라지 못할 것이라는 논리다. 말하자면 암세포에 영양분을 차단해 굶겨 죽이자는 것.
많은 반론이 있는 가운데 현재 동물에서 추출한 AF로 임상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인데 영국 맨체스터대 팀을 비롯, 일본·이탈리아·중공·인도 팀이 이 연구에 가담하고 있으며 이물질을 합성하기 위한 구조식 구명연구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한편 임박사는 창상치료에 대한 AF의 적용연구를 시도해 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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