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22·경희대 영문과졸업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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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까마득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대학 4년이 벌써 지났다. 알을 깨고 태어나는 새처럼 나와 사회를 새롭게 인식하려고 애쓰던 시절이 아쉬움 속에 지나가 버린 것이다.
4년전 나는 자신이 택하는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갖추지 못하고 대학의 문에 들어섰다. 내가 갖고 있었던 것은 하고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다양한 대학생활에 대한 호기심뿐이었다.
대학생활의 성격을 서클활동이 결정짓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도 그랬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자율에 오히려 당혹스러워 하던 1학년초 나는 대학영자신문사를 찾았다.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창조적일 것이라는 생각에다 영어를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올챙이 학생기자가 되어 교내외 등 뛰어다니며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여섯 번이나 구겨져 내던져졌던 영문기사가 활자로 박혀 나왔을 때 「아다다」처럼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교양과정 1년간은 나도 모르게 지나갔다. 새로운 대학의 분위기를 익히랴, 선배를 따라 다니며 전공과 서클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으랴 정신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앞으로의 공부를 위한 바탕으로 영어회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신문사의 외국인지도교수와의 영어 토론이 큰 도움이 되었다.
2학년이 가까워지자 가장 큰 문제는 전공의 선택이었다. 문학에 대한 관심과 학문의 도구로서의 영어에 끌려 영문과를 택했다.
난 대학생으로서 최소한 삶에 대한 자기논리는 확보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공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학·심리학·법학 등 사회과학 각 분야의 개론서 정도를 읽는데 많은 시간을 바쳤다.
관심이 컸던 매스커뮤니케이션학도 부전공으로 선택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면 4년 동안은 폭넓은 교양을 쌓아 본격적 학문탐구나 직장생활에 대비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학년 들어서는 영미시인들의 시를 주로 읽었다. 결국 졸업논문도 「프로스트」와 「엘리어트」의 시를 주제로 썼다.
가장 인상깊었던 기억 중의 하나로 교생실습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수업시간에 배운 교육학·교육심리학 등 교직과목의 허실을 확인하고 때묻지 않은 학생들과 순수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였다.
학교를 오가는 시간마저 아까워했던 내게 낭만이란 이름 하에 펼쳐지는 축제나 미팅 등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제 나는 대학 4년을 매듭짓고 또 다른 출발점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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