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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 시행 5년인데…학생규칙 인권 침해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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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앞머리가 눈에 닿아선 안된다. 옆머리는 귀를 절반 이상 덮지 않아야 한다.’

광주교육청 학생생활규칙 조사
법에서 금지했는데 예외 조항 유지

광주광역시 일선 학교에서 시행 중인 학생생활규칙 내용 중 일부다. “학생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학교 규정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교육 당국이 개선에 나섰다.

광주시교육청은 31일 “지난해 광주지역 314개 전체 학교의 학생생활규칙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부적절한 규칙들을 정비하도록 각 학교에 안내했다”고 밝혔다. 학생생활규칙은 학생이 학교에서 지켜야 할 내용들과 징계 수위가 담긴 학교 자체 규정이다.

광주는 2011년 10월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상당수 학교들이 체벌을 전면 금지할 정도로 학생들의 인권이 꾸준히 신장돼 왔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은 학생생활규칙이 많이 남아 있다.

교육청이 8개 항목에 걸쳐 조사한 결과 상당수 학교의 학생생활규칙이 학생인권조례에 부합하지 않았다. 항목별로는 체벌과 징계, 학생생활규칙 제·개정, 용모·개성, 전자기기 사용, 소지품 검사, 학생회 임원 피선거권, 기타 등을 점검했다.

체벌규정과 관련해서는 12개 학교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체벌금지 조항을 명시하지 않거나 옛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 체벌을 허용한다’는 조항을 삭제하지 않았다. 현행 초·중등교육법령은 어떠한 예외조항 없이 체벌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관심이 큰 용모 관련 규정도 98개 학교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따르지 않았다. ‘무스·스프레이·젤 금지’ ‘여학생은 춘추복에 살색 스타킹, 동복에는 검은색 스타킹 착용’ 같은 규정이 남아 있다. ‘학생은 두발·복장 등 자신의 용모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는 학생인권조례와 배치된다. ‘학생 신분에 맞는’ ‘학생 품위에 맞는’ 처럼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규정도 많다. 교육청은 학생들에 대한 일괄적인 소지품 검사나 휴대전화 검사, 이성 교제 여부에 따라 학생회 임원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 등을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정이라 판단했다.

일선 학교들의 학생생활규칙 개선작업이 더딘 것은 제·개정 권한을 학교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법상 관할 교육청은 지도나 안내를 할 뿐 제·개정을 강제적으로 이행토록 할 수는 없다. 광주시교육청 김재황 민주인권교육센터 장학사는 “학교별 학생생활규정 제·개정 결과를 각종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마다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도 학생생활규칙 개선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학생생활규칙 자체가 학생 인권에 대한 학교나 교사의 의식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광주지역 중학교 A 교장은 “구 시대적인 조항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일선 학교에서 적용하는 항목은 최근 3~4년새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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