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되면 모방범죄는다" 동문서답|독극물협박사건 공개수사한달…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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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독극물협박사건이 공개수사 한달째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범인신길현씨(38)의 검거에도 사건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협박편지와 전화는 꼬리를 물고있으며 양상도 더욱 심각해지고있습니다. 특히 23일 중앙일보가 특종으로 보도한 「청산가리우송」사건은 실행범죄의 전단계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느낌입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수십통의 협박편지와 전화에도 치명적인 독극물투입등 「큰탈」이 없었지만 청산가리우송으로 사건은 제2라운드를 맞았다고 봐야할것 같습니다.
-특히 검거된 신길현씨와는 별개의 조직인것으로 확실시되는, 공개 수사전의 「이길남-김지혜」「오영권」등 범인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도 잡지못하고 있는것이 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로 그점입니다. 「이길남」등은 치명적인 독극물은 아니라지만 탄산소다를 실제로 과자속에 투입한 조직입니다. 만일 청산가리를 우송한 범인이 그와 동일조직이라면 정말 끔찍한 일이죠. 협박편지 내용대로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범행을 실현하고있는 셈이니까요.
-경찰은 청산가리우송자 「이문래」와 「이길남」의 문체·필체가 모두 틀려 별개의 조직으로 보고있읍니다만 아직 장담할 단계는 아니죠.
-신씨검거후 경찰은 「검거의공훈」에만 안주, 수사를 소홀히한감이 있읍니다.
-결국 경찰이 딴청을 부리는사이 범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계속해왔고 제2,제3의 「신길현」까지 태어났다고도 할수있습니다.
-그동안 선거때문에 경찰의 손이 달렸던데도 수사소홀의 원인이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총선일인 12일을 전후해 협박편지가 많았어요.
-지난10일 서울잠실에서 이물질과자 피해자가 생겼다는 보도가 22일 처음 나가자 경찰은 『공개수사 이건에 이물질이 투입돼 놓여졌던 것인데 늦게 발견됐을뿐』이라며 역시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였죠.
-시경의 한 간부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어떻게 보안할수가 있느냐』는 보도진의 추궁을 받고 『보도가 되면 될수록 모방범죄만 늘어난다』고 동문서답을 하더군요.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였던 협박사건은 23일 중앙일보가 「해태제과에 청산가리 우송」이란 기사를 특종보도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게된것입니다.
-이 기사가 나간뒤 경찰이나 회사 어느쪽도 사실여부 확인을 해주지않아 타사 보도진이애를 태웠어요. 2판신문 마감시간이 지난뒤에야 시경 형사과장은 보도내용을 시인하며 『백색가루가 우송돼왔지만 청산가리인지 밀가루인지 감정결과를 통보받지못했다』 고 말했죠.
-지난19일 감정의뢰한 「백색가루」의 성분분석 결과를 4일이지나도록 통보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지만 『밀가루인지도 모른다』 는 표현엔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시경의 한 간부는 『이게 어떻게 신문에 새어나갔느냐』 며 앞으로는 보안을 위해 군수사기관에 감정을 보내야겠다』 고 흥분하더군요.
-이같은 소동을 보고 일부에서는 수사본부가 해체된뒤 「컨트롤 타워」 가 없기도 하지만 승진과 인사이동의 와중에서 많은경찰들이 마음이 들떠있기 때문이라고 꼬집기도 하더군요.
-지난10일 두번째 피해자인 김택제씨가 이물질이든 과자를 먹고 서울영동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을때 해태제과· 영등포경찰서의 초특급 보안작전은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었어요.
피해자 김씨와 구멍가게 「휴게실」주인 서중순씨(51·여)까지 몰려든 취재진에게 끝내 입을 다물고 『귀찮게 굴면 제소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경찰과 관계사로부터 단단히 「보안교육」(?)을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강남형해태사장은 청산가리우송사건이 중앙일보에 처음보도된 직후 수송동으로 박건배허;장을 찾아 긴급회의를 갖고 더 이상의 보안은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위험이 높아지고 언론의 집중적인 취재대상이 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공개한 것이지요.
-해태측은 사건을 공개하면서도 「모리나가」회사의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고 있읍니다.
『일본언론에서는 모리나가의 투쟁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일본재계일부에서는 쓸데없는 만용으로 평가, 손가락질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공개와 보안에서 오는 문제점에 계속 신경을 쓰더군요.
-일부 독자들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왜 협박을 받는 회사만 계속 협박을 받느냐』고 의아스럽다는 의견을 말하는 경우도 있어요.
-해태에만 집중적으로 협박이쏟아지고, 라이벌 제과회사인 L사나 D사에는 왜 협박이 없느냐는 뜻이겠죠.
-전화를 건 독자로서는 혹시 라이벌회사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니죠. 그보다는 지금까지의 협박편지가 식품회사 사이의 경쟁관계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점에 착안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예컨대 라면메이커인 삼양식품과 농심, 우유제품메이커로서의 해태와 빙그레, 맛동산과 새우깡을 각각 만드는 해태와 농심등 라이벌관계를 최대한 악용하고 있거든요.
-실제로 유독 L제과에만 협박편지가 안갔다는것은 납득이 안되지요. 신고를 안했거나 숨기고 있다고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아뭏든 해태와 농심이 신길현씨에게 요구대로 은행 온라인구좌에 3천만원을 입금시켰다는 사실이 일련의 협박사태를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어요.
-그래요. 『되게 겁을주면 돈을 뜯어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들을 한것 같습니다. 더구나 해태의 경우는 본사는 부인했지만 경찰모르게 돈을 범인들에게 건네줬을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나돌지 않았읍니까?
-그러나 일부 수사관들은 해태의 경우는 꼭 금품을 노린 범행만은 아닐수도 있다고 보고있어요.
-지난해 12월27일자로 「이길남」이 보낸 편지에 『우리와 해태사이에 부도덕한 사실이 있었다…』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도덕한 사실」이 돈을 몰래 건네줬다는 이야기이기 보다는 회사내부에서 과거에 얽혀있던 어떤 밝힐수없는 사실을 지칭하는게 아니냐는 견해이겠지요.
-사건이 제2라운드에 접어든만큼 식품가공업협회측으로서도 곧무슨 움직임이 있어야겠지요.
-식품가공업협회의 현상금은 어떻게 된겁니까?
-신길현씨를 신고한 이웅엽씨에게 전달돼야 마땅한데 아직 전달되지는 않았읍니다. 이씨의 「석연치 않은점」 때문에 그동안 지급되지 않았읍니다만 이제야 경찰이 『완전히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지급을 요청한 겁니다.
-그 3천만원은 이씨에게 간다 치고 아직 해결되지않은 무수한 협박사건에 대해서도 현상금이 걸렸읍니까?
-그게 식품가공협회의 고민입니다. 한건 한건마다 현상금을 주자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격이거든요.
-신문광고를 「암호」로 악용한것도 이번 사건의 특징이예요. 한 회사간부는 경찰이 법인의 광고요구에 응하라고 권해놓고는 막상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광고를 낸것처럼 경찰은 발뺌을 한다고 불평하더군요. 피해회사들은 또 「수사협조」의 구실에 끌려다니는 고충도 많다고들 불평하기도 해요.
-과자에 실제로 탄산소다가 투입되자 제과업계의 매출은 크게 떨어졋습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아예 거래가 거의 없는형편이며 슈퍼마킷·대리점에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나와 과자봉지를 살피고 제조연월일을 확인한 다음 사가는 사람이 눈에많이 띄였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명제과점의 빵이나 케이크등은 판매량이 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피해회사들은 법인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며 자구책마련과 함께 적극적인 대응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경찰도 다시 긴장, 범인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요. 국민들도 각자의 생명을 스스로 지킨다는 차원에서 경찰과 관계회사들을 격려하고 슬기를 모아 범인검거에 합심해야할것입니다.

<참석자>
한천수 기자 고도원 기자 도성진 기자 김일 기자 박보균 기자 제정갑 기자 이덕영 기자 양헌석 기자 이상언 기자 최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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