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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시진핑 권력의 완성…‘핵심’ 자리를 꿰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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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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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논설위원

올해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중국 정가에선 2016년을 가르는 최대 정치 용어가 이미 등장했다는 말이 나온다. ‘핵심(核心)’이란 단어다. 핵심은 사물의 중심을 가리킨다. 중국 정치에서의 핵심은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결단을 내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핵심의 한마디로 어떤 사안에 대한 가부(可否)가 결판나는 것이다. 10여 년 넘게 사라졌던 이 말을 부활시킨 인물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다.

중국의 사회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은 중국 향촌(鄕村) 사회의 인간관계를 동심원(同心圓)의 파문(波紋)에 비유한다. 돌 하나를 수면에 던졌을 때 일어나는 동심원의 물결처럼 ‘나(我)’를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나로부터 동심원의 파문이 멀어질수록 인간관계는 약화된다. 여기서 나는 핵심에 해당한다. 나의 위치에 따라 공(公)과 사(私)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핵심에 대한 사유는 중국 사회에 오래전부터 깊게 뿌리 박혀 있으며 중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개념이다.

집단지도부 내 리더 뜻하는 핵심
한마디 말로 중국의 갈 길 결정

중국 정치에서 집단지도체제의 리더를 뜻하는 용어로서 ‘핵심’이 등장한 건 덩샤오핑(鄧小平) 때다. 마오쩌둥(毛澤東)은 흔히 선도자(導師)나 조타수(舵手)로 불렸다. 문화대혁명 시기엔 ‘마오 주석을 우두머리(首)로 하는 당 중앙’이란 말이 사용됐다. 그러던 ‘우두머리’ 표현이 ‘핵심’으로 바뀐 건 1989년 6·4 천안문(天安門) 사태라는 비상 시기를 맞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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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이란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이는 천윈(陳雲)이다. 민주화 시위에 강경 진압을 주장하는 리펑(李鵬) 등 보수파와 온건 대응을 강조하는 자오쯔양(趙紫陽) 등 개혁파 간의 대립으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 내 분열 움직임이 나타날 무렵이다. 당시 원로그룹을 대표하는 중앙고문위원회의 주임이었던 천은 그해 5월 26일 개최된 중앙고문위 회의 석상에서 “(우리는) 지금 물러설 수 없다. 만일 후퇴한다면 2000만 선열의 목숨으로 건설한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자본주의 공화국으로 변하고 말 것”이라며 “덩샤오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을 굳건하게 지키자”고 외쳤다. ‘핵심’의 탄생이다.

그런 핵심이 정치 용어로서 공식화의 길을 걷게 된 건 덩샤오핑에 의해서다. 무력으로 천안문 광장을 평정하고 난 지 12일째 되는 날인 6월 16일 덩샤오핑은 자신의 집에서 장쩌민(江澤民)과 리펑, 차오스(喬石) 등 제3세대 영도집단을 불러 회의를 개최했다.

덩은 이 자리에서 “어떤 영도집단도 하나의 핵심을 가진다. 제1세대 영도집단의 핵심은 마오쩌둥 주석이었고, 2세대 핵심은 나다. 그리고 3세대 영도집단도 핵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바로 현재 우리 모두가 동의한 장쩌민 동지다”라고 선포했다. 그해 11월 장쩌민이 덩으로부터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까지 물려받자 ‘장쩌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란 문구가 처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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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무얼 뜻하나. 크게 두 가지 함의가 있다. 우선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강조다. 핵심은 집단체제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집단을 전제로 한다. 봉건제왕(封建帝王)이나 절대권력에 대한 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그 다음이 집단체제 안에서 진정한 영도력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단결력과 구심력의 상징이다. 집단지도체제는 결단력을 갖춘 핵심이 있어야 비로소 영도력을 가진다는 이야기다.

결국 핵심이란 말은 마오쩌둥과 같은 독재자의 출현을 예방하고자 하면서도 또 수많은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선 강인(强人) 정치를 필요로 하는 어찌 보면 상호 모순된 현실의 정치가 낳은 시대적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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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쩌민 시대까지 존재했던 핵심은 그 권력의 바통을 이어받은 후진타오(胡錦濤) 시기에 이르러선 사라졌다. 후진타오 시대의 표현은 ‘후진타오를 총서기로 하는 당 중앙’이지 ‘후진타오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만큼 약세 리더로 평가받는 후진타오에겐 그래서 ‘여러 서기 중 첫 번째에 불과하다(first among equals)’는 말이 따랐다. 이에 대한 중국식 표현은 아홉 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권력을 나눠 중국을 통치한다는 구룡치수(九龍治水)다. 서방은 이 같은 현상을 중국 공산당에도 마침내 서방의 민주화 바람이 스며드는 것으로 해석하며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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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후진타오 10년 세월 동안 잊혀졌던 핵심이 시진핑 집권 3년여 만에 부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시진핑을 핵심으로 일컬은 이는 시진핑의 측근으로 알려진 황싱궈(黃興國) 톈진(天津)시 당 대리서기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1월 8일 “시진핑 총서기를 핵심으로 하는 영도집단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단결하자”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각 지역의 당 책임자들이 적극 호응에 나섰다. 쓰촨(四川)성과 안후이(安徽)성, 후베이(湖北)성, 산둥(山東)성, 하이난(海南)성 당 서기 등 이제까지 14개 성·시 책임자가 시진핑을 핵심으로 불렀다. 이제 중국의 각 지방 제후(諸侯) 사이에선 ‘시진핑 핵심’을 언급하는 게 하나의 새로운 정상 상태인 ‘신창타이(新常態)’로 자리 잡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당 중앙 차원에선 1월 27일 역시 시진핑의 측근인 리잔수(栗戰書)가 당 중앙직속기관 공작위원회에서 ‘핵심의식을 증강하자’고 말한 데 이어 이틀 뒤 열린 정치국 회의에서도 ‘핵심의식 강화’가 강조됐다. 정치국 회의에서 핵심의식 확립을 주동적으로 제기한 이는 장쩌민 시절부터 후진타오를 거쳐 시진핑까지 삼조(三朝)의 제사(帝師)로 활약 중인 왕후닝(王?寧)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국 상무위원 아래 그룹인 정치국 위원 차원에서는 핵심의식이라는 말은 써도 시진핑을 직접 핵심으로 부르지는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시진핑의 권력 공고화가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한다. 시진핑에 대한 충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충성 고취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지방에서부터 일고 있는 ‘시진핑 핵심’의 바람몰이는 장쩌민의 말을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장쩌민은 핵심과 관련해 "우리처럼 큰 나라를 다스리려면 핵심이 있어야 한다”며 “핵심은 스스로 정하는 게 아니라 투쟁과 실천 중에서 점차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은 바로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쩌둥의 전략과 같이 지방에서부터 ‘시핵심(習核心)’ 용어를 유행시키며 자연스럽게 핵심 자리를 굳히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늦어도 내년 가을 19차 당 대회까지는 문건상으로도 확실하게 핵심 자리를 꿰찰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이 핵심이 된다는 건 무얼 뜻하나. 권력의 완성을 의미한다. 현재 시진핑을 포함한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시진핑 사람이라고 할 만한 이는 서열 6위의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하나다. 자연히 시진핑의 지난 3년은 권력 집중의 세월이었다.

당의 임시 조직으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소조(小組)를 여러 개 만든 뒤 이를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소조정치(小組政治)를 통해 권력을 다졌던 것이다. 전면개혁심화 영도소조나 인터넷안전 및 정보화 영도소조, 그리고 군 장악을 굳히기 위한 국방 및 군대개혁심화 영도소조 등이 다 그런 예다. 이제 정치 핵심이자 영도 핵심이며 또 시대 핵심으로서 진정한 시진핑 시대를 연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은 시진핑의 말 한마디로 그 방향이 결정되는 핵심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완성한 후 시진핑의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선집권(先集權) 후분권(後分權)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진핑 집권 1기인 내년까지는 권력과 권위를 집중시키고 이후엔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권력을 나누는 방식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대권은 독점하되 작은 권한은 분산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머지 상무위원의 적극성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중국 공산당은 모든 면에서 조이고 푸는 데(收放) 익숙하다. 그 조이고 푸는 전환점이 바로 시진핑에게 핵심 칭호가 부여되는 순간이다.

시진핑 핵심 시대의 개막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나. 시시각각 변하는 중국 정가의 풍향을 세세히 살피며 정부와 기업 모두 각각의 대응 전략을 짜야 함을 일깨워준다. 한 예로 과거 한 우리 기업이 중국 군부 산하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큰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중국 정부가 중국 해방군의 상업활동 금지를 추진하고 있는 걸 몰랐던 것이다. 올해는 중국의 모든 권력이 시진핑 1인에게 집중되는 ‘시진핑 핵심 원년(元年)’이 될 전망이다. 시진핑 정책과 시진핑 사람에 집중할 때다.

유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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