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부정신질환|남편외도·성격차가 주범|이시형·홍종화 팀 10년간 환자2백91명 조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결혼 2년째인 박모씨(30·사업· 서울 신당동)부부는 동갑에다 대학동창으로 서클에서 만나 결혼한 자타공인의 잉꼬부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서로 믿음이 컸고, 남편의 사업도 잘 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류 가정을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사업을 핑계로 귀가시간이 늦어지기 일쑤였고 집안에 있는 부인은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부인은 이런 생각으로 혼자서만 끙끙 앓게되자 가슴이 답답하고, 소변이 자주 마려워지며, 소화가 안 되는 가벼운 신경증이 나타났다.
어느 날 집으로 놀러온 남편의 친구들이 며칠전 남편과 술집 호스티스와의 소위 「땅콩게임」 (땅콩을 입에 넣고 입을 맞춘 후 땅콩이 누구 입에 들었는지 알아맞히는 놀이)얘기를 무심코 꺼낸 것이 박씨 부인의 증세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게 됐다.
「남편이 불결하다」 고 생각한 부인은 이때부터 잠자리를 피했고 급기야 별거를 선언, 친정으로 돌아갔다.
성 불감증에다 불면증이 겹쳤고 식사 때면 구토증에 시달려 체중이 5kg이나 줄었다.
참다못해 부인은 지난해 5월 종합병원 정신신경과를 찾았으며 진단명은 심한 의부증에다 우울증이 겹친 신경증으로 나왔다.
담당의사는 박씨 부인의 자라난 환경이 「티없이 맑고 고운」 배경이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앞의 예는 정신신경과 진찰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남편 외도로 빚어진 가정주부의 정신질환의 전형적인 예다.
이렇듯 남편의 외도가 가정주부의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인자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노년층보다 젊은 층일수록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병원 신경정신과 이시형·홍종화박사 팀은 지난 73년부터 83년까지 이 병원에서 정신질환으로 확인된 주부 2백91명을 대상으로 「주부환자의 정서적 갈등에 대한 원인 및 패턴」을 조사한 결과 이중 90%가 가정문제에서 비롯됐고 62%가 남편문제로 정신질환을 일으켰음이 밝혀졌다.
남편문제로 정신질환을 앓은 1백34명의 주부 중 남편외도가 32%인 43명으로 가장 많았고 성격차이, 질병 또는 죽음, 이혼의 순 이었다.
남편 외도는 지난 73년 전체환자 13%에서 83년 24%로 증가추세를 보였다.
다음으로 문제아·학업실패 등 자녀문제와 관련된 환자로 전체의 16%(48명), 시모와의 갈등 등 시가문제와 관련된 주부환자는 12% (35명)였다.
이밖에 계 실패·복부인 등 자신의 문제로 비롯된 주부환자는 전체의 l0%로 아직도 우리 나라 주부는 가정을 벗지 못하는 「한국형 신경증」 이었다는 것이 이박사의 분석.
특히 시모와의 갈등은 20대가, 남편 외도는 30∼40대가 심해 주부정신질환자는 젊어지고 있는 실정.
이들 주부들의 정신질환의 경우 심리증상은 불안·우울·초조가, 신체증상은 두통·위장장애·불면증 등 2∼3개가 복수로 나타난 것이 공통된 특징.
특히 신체증상은 주로 노년층에서, 심리증상은 젊은 층에서 주로 호소했다.
한편 증상패턴은 지난 73년 우울 (33·2%), 불안(21%) 의 순에서 83년에는 불안(28·4%), 우울(11·1%), 긴장성두통(8·6%) 의 순으로 판도가 뒤바뀌었다.
또 주부 정신질환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남편문제는 지난 73년이 성격차이에서 83년 남편 외도로 비중이 바뀐 것은 주목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가정문제가 주부정신질환의 핵으로 등장한 이유로 이박사 팀은▲핵가족화로 인해 가족의 갈등이 많아진데다▲가정이 부인 주도형으로 바뀌면서 주부의 역할 부담이 늘어났고▲주부들의 높아진 의식수준으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현상이 커진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가정에서의 대화 부족, 성적 불만, 경제문제 등 주부들의 책임압박감 등 구체적인 것으로 발견돼 의견대립을 촉진하게 되며 나아가 주부들의 정신질환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우리 나라 가정주부들의 정신질환 유발인자는 가정이며 특히 남편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남편은 가정이 편안치 않으면 밖에서의 일도 안 된다는 심리적 부머랭 효과를 중시, 대화 등을 통해 부인의 불만을 해소하는 등 부인의 섬세한 감정을 존중하는 지혜가 주부 정신질환을 막는 처방』이라고 강조했다.<방원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