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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공소시효 폐지 물꼬 튼 ‘태완이법’은 끝나지 않았다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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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초한예지부

청소년 기자의 미제사건 공소시효 취재기

살인사건 현장에서 수사대가 자외선램프를 이용해 지문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살인사건 현장에서 수사대가 자외선램프를 이용해 지문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TONG청소년기자단 서초한예지부 소속인 우리는 법원 근처에 삽니다. 법과 정의를 향한 막연한 동경을 품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을 알아갈수록, 뉴스를 접할수록 법과 정의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죠.

기자단에 선발된 우리의 첫 기사는 의심 없이 '공소시효'였습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공소시효가 지났기에 더 이상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대구 황산테러사건'이 우리의 공통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대구 황산테러는 1999년 대구에서 신원미상의 남성이 6세 태완 군의 얼굴과 입안에 황산을 들이 부어 사망하게 한 사건입니다. 용의자로 의심되는 인물이 있었음에도 어린이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아 영구미제인 상태로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입니다.

그저 보통의 학생이었으면 인터넷에 올라 있는 정보만 읽고 마는, 뉴스의 소비자에 그쳤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청소년기자가 되었으니 우리가 직접 취재에 나설 차례였죠.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시그널'에서처럼 우리도 미제사건과 공소시효의 진실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처럼 우리도 미제사건과 공소시효의 진실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는 장기미제사건전담팀을 꾸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제사건을 수사한다. [사진=tvN]


취재 계획 세우기

여러 취재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인터넷 등 여러 매체에서 이미 다룬 자료에 기반을 두어 쓰기 보다는 직접 그 사건과 대면해본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바른 기사를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그 사건과 접촉했던 당사자들을 알아내고, 그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인터뷰 요청을 하면 되는 거죠!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습니다.

담당 형사를 찾아라!

먼저 사건의 초동 수사를 맡았던 형사를 찾아 나섰습니다. 화제가 됐던 사건이라 담당 형사가 누군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 뉴스만 검색해도 당시 수사를 담당한 사람의 실명과 현재 근무지가 나왔으니까요.

우리는 여전히 대구 지역에서 근무중인 A형사와 직접 전화연결을 해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황산테러 사건 담당 형사... "지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변호사를 찾아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검색해보던 중 대구황산테러사건의 공소시효 관련 소송을 담당했던 B변호사와 전화연결에 성공했습니다. B변호사는 간단히 인터뷰에 응해주었으나 익명을 요구했습니다.

-대구 황산테러사건이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은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소시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피해자인 태완 군과 목격자 아동의 증언이 수사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요, 아이의 증언이 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나요.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인 만큼 수사기록이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의심스럽다고 유가족이 문제 제기를 하셨지만,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진범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경찰의 초동수사가 허술했다고 생각하시는지.
"당시 나는 상황을 잘 모릅니다. 다만 부모님이 의문을 제기했던 부분을 더 귀담아듣고 치밀하게 수사했더라면 미제사건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공소시효에 관한 법이 바뀌었는데, 그렇다면 법이 바뀌기 이전(2008년 8월) 사건의 피해자들에게는 어떻게 보상해야 하나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별도로 보상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볼 문제 같습니다."

법률 전문가를 찾아라!

공소시효에 대한 정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좀 더 객관적인 법률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야 균형잡힌 기사가 될 수 있겠죠. 법률 전문가로는 법률대학원의 교수진들이 적합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 한양대를 시작으로 성신여대·서울여대·동국대까지 총 28곳의 대학에 전화했습니다. 두 명의 기자가 14개씩 나누어 인터뷰 요청 전화를 걸었으나 전부 거절당했습니다.

법률 전문가를 섭외하려 대학 28곳에 전화를 걸었으나...

하지만 첫번째 기사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죠. 다른 방법을 생각하던 우리는 대구 황산테러사건을 두 가지 측면으로 보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하나는 법적인 측면으로, 하나는 정치적인 면에서 이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한 일명 '태완이법'을 발의한 서영교(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서면 인터뷰를 성사시킬 수 있었습니다.

서영교 국회의원 인터뷰

서영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명

서영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명 '태완이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2015년 7월 31일 공포와 동시에 시행됐다. [사진=JTBC]


-어떻게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태완이 사건에 대한 방송보도, 정확히는 탐사프로그램을 통해 이 사건을 처음 접했습니다. 방송을 보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대구 지역 국정감사 당시 시간을 내 ‘태완이 부모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이후 몇 번에 걸쳐 전화와 면담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울 방안을 모색했죠. 태완이법을 입법하고 청원을 제출하는 등 직접 행동에 나서 왔습니다."

-대구 동부경찰서는 이 사건을 상해치사로 보고 수사했는데, 경찰의 초동수사가 허술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대부분의 강력사건는 초동수사를 통해 범인을 검거합니다. 그러나 미제사건의 경우 이러한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죠. 태완이 사건의 경우에도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진했다는 지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구 황산테러사건 이후 공소시효에 관한 법이 개정되었는데요, 그렇다면 법이 바뀌기 이전 사건의 피해자들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요.
"‘진정소급효’, 즉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에 대해서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하는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이번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는 증거를 보존해 과거 해결할 수 없었던 범죄를 과학수사가 발달한 오늘날에 쉽게 푸는 장면도 나오더군요. 과학이 더 발달할 때까지 가능한 모든 증거를 보관해 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이에 발맞춰 오래 전부터 증거의 수집과 보존을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습니다. 경찰 역시 기존의 과학수사를 2005년 과학수사센터로 확대 개편하는 등 증거수집과 보존을 위한 노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공소시효를 아예 폐지하는 것이 낫지 않나요.
"초동수사 실패로 발생하는 미제사건의 경우 범인을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과 수사기법의 발전, 증거보존기술의 발전에 따라 나중에라도 범인을 잡을 수 있는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을 반영하여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죠. 태완이법을 통과시키는 했지만, 이번 개정은 그 대상이 한정되어 있어 앞으로 그 대상을 넓히는 입법안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태완이법은 아직 진행중입니다."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으로 형법상 최고형량이 사형으로 명시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기존 25년)는 지난해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강간치사·폭행치사·상해치사·아동학대치사·영아살해 등 형법상 사형으로 처벌되지 않는 중범죄는 각 법에 따라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소시효 폐지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서영교 의원의 말대로 태완이법은 '진행형'이었습니다. 취재 계획 세우기부터 서영교 의원 인터뷰까지, 한달 반이 걸린 우리의 '맨 땅에 헤딩하기'식 취재는, 아쉽지만 이 지점에서 마무리됐습니다.

글=박선주(한국예고 3)·정혜령(서초고 3), 인터뷰=박선주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서초한예지부
도움=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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