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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사이일수록 친한 사이가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2호 29면

지난해 4월 중앙SUNDAY에 처음 칼럼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1년 동안 12편의 글을 최선을 다해 써보겠노라고 말이다. 골인 지점에 접어들었을 때쯤 편집국으로부터 창간 9주년(3월18일)을 맞아 개편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의 칼럼은 앞으로도 계속 연재된다는 것이다. 가만, 그렇다면 경기장을 떠나지 않아도 된단 얘긴가. 퇴장 명령 없이 1년간 더 글을 쓸 수 있게 되다니!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난달부터는 e메일 주소도 게재했다. 독자들이 보낸 편지를 읽다보니 그들이 보내주는 지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일일이 답장을 할 수는 없지만 이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전문 작가라면 한 달에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테다. 하지만 나처럼 늘상 오선지만 들여다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열 손가락을 이용해 피아노를 치는 것이 한 손가락으로 아이패드 화면을 넘기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나는 인물을 주로 글의 소재로 삼는데 주위 친구들, 그것도 한국 독자들이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이미 한 번씩 등장시켰다. 당초 류더화(劉德華) 이야기를 할 예정이었으나 순서를 조금 바꿔 지난주 생일을 맞은 남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를 위해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축수도(祝壽圖· 그림)도 한 장 그렸다.


내가 라이언팍슨 그룹 중팅썬(鍾廷森) 회장과 결혼한지도 벌써 3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올해로 73세를 맞은 양띠인 그는 평상시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 (물론 그는 불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귓가에 대고 듣기 좋은 말을 속삭여주는 것도 아니니 이 글은 그를 위한 나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글과 그림이라니, 명품 넥타이와 비교해봐도 결코 밀리지 않는 선물이다. 게다가 모든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선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는 수십 년을 함께 산 사람이다. 평범한 생활이라 해도 크고 작은 풍파가 있고 잔잔한 에피소드가 있는 법인데 우리 부부라고 없겠는가. 더구나 한 명은 화교 출신 부호이고 한 명은 잘 나가던 여배우인데.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한 세월을 다 적자면 장편소설 한 권은 족히 나오리라.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1 더하기 1이 반드시 2는 아니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만 머릿 속에 맴돌았다. 중국에는 지친불친(至親不親)이라는 말이 있다. 더할 수 없이 친한 사이일수록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의미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말은 칭화(淸華)대 류스(劉石) 교수가 내게 일러준 말이다. 나는 5년 전부터 칭화대와 함께 2개의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칭화대학보에서 우수 논문을 심사해 수상하는 것이다. 모든 중국 교수들이 쓴 논문 중 가장 훌륭한 것을 골라 그들의 업적을 치하하기 위함이다.


다른 하나는 서법문화연수센터를 만들어 서예와 수묵화를 널리 보급시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라이언팍슨 그룹이 지난 20여년 동안 중국에서 받은 사랑과 관심에 보답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 환원 작업이다. 파운데이션 주석으로서 세계 정상의 학자들과 교수들을 만날 일이 많다보니 나의 업무처리 능력에 대한 중 회장의 기준도 자연스레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류 교수 말이 맞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욱 엄격한 법이다. 그러니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딸들 역시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최대한 매끄러운 일 처리를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우리 모두 내로라 하는 인재라 할 순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달까. 진실되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 가족 구성원으로서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 조건이다.


남편은 친구들 앞에서는 종종 “집에서는 자신이 최약체”라고 웃으며 말하곤 한다. 사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집 안엔 강아지와 고양이를 포함해서 모두 암컷밖에 없었으니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억울하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그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해왔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가 가진 지위는 태산처럼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알지 못한다는 말은 곱씹을수록 딱 맞다.


사실 이번주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한층 더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편집자에게 부탁해 사진으로 부족한 글자 수를 메워볼까도 생각했다. 한데 마감 3일 전에는 도리어 더 큰 지면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한없이 써내려가다 보면 더욱 허심탄회한 얘기들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려면 이 사람의 회고록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천추샤(陳秋霞·진추하)라이언팍슨?파운데이션 주석onesummernight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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