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편의 가사돕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남편도 가사를 도와야 한다는 말은 맞벌이부부가 늘어나면서 나오기 시작한 여성들의 주장이다.
아직 미국이나 일본처럼 주부의 50∼60%가 직장을 가진 정도는 아니지만 맞벌이 가정은 이제 우리에게도 점차 도시가정의 한 전형이 되고 있으니만큼 남편이 가사를 어디까지 돕느냐가 관심사로 등장한다. 82년 중앙일보가 조사한 「한국주부의식조사」에서 주부들의 23.5% (전국7백93명대상)가 남편이 집안일을 거의 돕지 않는다고 대답했으며 42.4%가 겨우 못이나 박아주고 전기나 고쳐주는 정도라고 답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여성개발원이 조사한 「여성공무원 직무실태에 관한 조사연구」에서도 많은 응답자가 『남편이 아내의 직장생활에 대한 이해는 하고 있으나 집안일을 도우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하고 있다.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다는 것은 그 사회의 전체 의식문제에 속한다는 것이 대부분 맞벌이 아내의 의견이다.
몇해전 이혼한 K교수의 경우 미국에서 함께 공부할때는 그 사회의 습속에 따라 집안일을 나누어 맡았던 남편이 한국에 돌아와서는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여서 결국 이혼할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리집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는 귀가하면 발길이 저절로 부엌으로 간다고 농담하던 그이가 한국에 나와서는 집안일에 일체 무관심이예요. 그런데 이같은 그의 태도를 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해요. 사회적인 의식이라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가 봅니다』 이경희씨(37·이대강사)는 「남편의 집안일 돕기」가 개인적인 성향에도 관계가 있지만 역시 사회전체의 의식에도 크게 좌우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의식의 변화에 기대를 거는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주부의식조사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남편의 집안일 돕기」는 연령이 높을수록 거의 돕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젊은 연령층에서나마 집안일 돕는 남편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의식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처음부터 맞벌이였지만 집안일은 내가 맡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화춘씨 (46·치과의사)는 자신이 결혼한 20년전만해도 남편이 집안일 돕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딸의 세대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가사는 부부사이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씨의 경우도 결혼초에는 집안일 때문에 직업이 위협받을 정도였지만 경제적인 안정이 이루어진 후에는 큰 문제가 되지않고 있다고 했다.
박계춘씨 (36·KBS근무)는 맞벌이부부의 경우 당연히 가사는 부부가 분담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직 「남편의 집안일 돕기」가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는 아내의 지혜가 필요 한것 같다는 의견.
가족 한사람 한사람에게 「잘하는 일거리」 하나씩을 정해놓고 그 일을 「신나게」하도록 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고. 예를 들어 남편은 커리라이스를 잘 만든다든가, 딸은 누구보다 청소를 깨끗이 한다는 등의 장기를 한가지씩 만들어 두는 방법이다.
최금자씨 (36·이대부속병원의사)는 집안일뿐만 아니라 이제 남편의 외조시대가 되고 있다는 의견이다.
밤늦게 응급수술이 있어 병원으로 달려가야할 때 남편의 이해나 협조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아내의 직업이 워낙 신경을 써야하고 바쁜 일이어서 자연 집안일은 남편이 돌보지 않을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수도꼭지가 고장이 났을 경우 거기에 주의를 기울일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는 편보다 여유가 있는 편이 이를 고치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장수현씨 (32·약사) 역시 집안일은 여자의 일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장씨 자신의 경우말고라도 주변의 친구가정에서는 이미 가사의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앞으로 부부사이에 자연스러운 가사분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민학교에서부터 교과목을 정해 남자에게도 「가정」을 배우도록하는 교육적인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는 장씨의 의견이다. <김징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