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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농사’ 끝냈더니 ‘자식의 자식농사’ 지으라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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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책임을 부모세대에 떠넘겨 ‘가족 내 갈등’ 위험수위… 맞벌이부부 육아문제 도울 제도적 장치 강화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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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치르는 ‘육아전쟁’은 도저히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육아전쟁에서 얻은 ‘손주병’(손목터널증후군, 척추협착증)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쓸쓸한 훈장일 뿐이다. 급기야 황혼 육아를 두고 깊어진 부모와 자녀 부부 사이의 갈등이 살인범죄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2월 3일, 김을동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새누리당 총선 여성 예비후보자대회 ‘여성, 개혁 앞으로!’에 멘토로 출연해 들려준 말이 화제다.

워킹맘의 생존과 ‘황혼육아’의 굴레

“한 전직 국회의장의 아내는 선거 때 대답이 ‘네네’ 딱 하나였는데, 그 전직 의장님이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우리나라 정서상 여자가 똑똑한 척하면 밉상을 산다. 인간 심리가 이상한데 자기보다 똑똑한 건 안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조금 모자란 사람이라고 할 때 사람들이 다가온다는 것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여자가 지나치게 똑똑하면 안 된다, 남들 앞에서 모자란 척해라, 라는 식의 지도는 위험한 사고를 내포한다. 여자라면 얌전해야지, 조신하게 굴며 나서지 말아야지, 라는 가르침은 인간 모두 겸양을 갖춰야 한다는 교육의 일환으로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성으로 하여금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을 가르는 성 고정관념을 부추기고, 여성에게 어떤 특정하고도 제약적인 태도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멘토링이라고 하기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런 구시대적인 발언에도 그러나 ‘굳이 틀린 말은 아니다’라는 동조가 이어지고, ‘강한 여자를 두려워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식의 권고가 난무한다. 스타강사 김미경 씨는 “시어머니를 파트너로 만들고, 남편 기 살리는 정의로운 싸움에 목숨을 걸며, 회사의 모든 남자를 네 편으로 만들어서 생존하라”고 말하는데, 이런 류의 조언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성별 위계를 더 공고화하고, 도리어 여성에게 안팎으로 과중한 책임을 짐 지우는 데 일조한다.

똑똑한 여자를 ‘밉상’으로 취급하면서도, ‘엄마’로서의 여성에게만큼은 원더우먼이길 요구하는 오늘날의 세태는 문제적이다. 시어머니와 회사의 남자 직원들을 파트너이자 내 편으로 아울러야 하는 강하고 ‘센’ 여성은 기혼인 동시에 전문직이다. 맞벌이로 일하면서 임신을 하고 출산하게 된다면, 퇴직하지 않는 이상 자연히 워킹맘이 된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남편의 기까지 살려줘야 하며, 그것이 ‘정의로운 싸움’이라고 충고받는다. 보육시설은 충분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으며, 도우미를 부르기엔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 가정과 직장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워킹맘이 절박해지는 건 그래서 ‘파트너십’일 수밖에 없다. 직장으로 출근한 뒤 퇴근하기까지 내 아이를 온종일, 사랑으로 책임지고 맡아줄 가족이란 이름의 육아 파트너십.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 어느 쪽이라도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수저론’과 함께 대한민국을 들끓게 한 키워드가 바로 ‘황혼육아’인 건 이런 맥락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조부모의 조력 가능 여부가, 취업 여성의 출산에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수저계급론’ 이어 이번엔 ‘황혼육아전쟁’
결혼한 지 2년이 되어가는 김윤주(여·가명·34) 씨는 이렇게 말한다. “주변의 지인들은 내게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 계획이 없느냐고 물어요. 의례적인 물음이니까 그냥 아직 생각이 없다고만 대답하는데,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임신·출산·육아를 생각하면 모든 게 버겁기만 할 뿐 엄두가 안 나거든요.”

출판 관련직에 종사하는 윤주 씨는 친정이나 시댁 어느 쪽도 아이를 맡아서 돌봐줄 여건이 되지 않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둔 뒤 육아에 전념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혼자 벌어서는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기도 어려운 시대잖아요. 요즘 남편들은 혼자서 벌려고 하지도 않고요. 한 친구는 이런 말도 해요. 아이 낳아서 이나라에 ‘공급’하고 싶지 않다고요. 우스갯소리지만 현실이 그렇거든요. 아이들 둘째 이상 낳으면 축하를 받아야 정상인데 대놓고 걱정부터 하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요. 요즘은 자식을 맡아 키워주는 부모가 있는 것도 금수저로 분류된다고 해요. 나는 아니고요.”

무엇이든 다 포기한다는 의미의 ‘엔(n)포 세대’로 지옥 같은 청춘을 보낸 젊은이들이 가까스로 연애·결혼·출산에 성공한다 해도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 ‘육아’의 고통이라는 더 큰 ‘헬(hell)조선’으로 진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다양한 육아프로그램의 내용과, 실전은 다르다. 현실은 예능이 아니다. 이제 막 가정을 꾸려 부모가 된 젊은 세대는 점차로 황혼육아도 가능할 만큼의 건강까지 갖춘 ‘금수저’ 조부모의 존재를 바라는 실정에 이르고 있다. 아이를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에게 맡겨놓은 뒤 출근해서 일하는 워킹맘들은 그래서 주변 동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더라도, 아이의 등원 시간이 출근시간보다 늦고, 하원시간이 퇴근시간보다 빠르기 때문에 부모의 도움이 없다면, 여전히 육아가 여자만의 몫인 이 사회에서 취업 여성들의 직장생활은 불가능한 까닭이다.

프리랜서 정보람(여·가명·35) 씨의 경우, 세 살배기 딸아이의 육아를 친정엄마가 도와준다. 출산 직후엔 매일같이 집으로 왔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뒤로는 월·수·금 주 3일 낮에만 봐주는 걸로 스케줄을 조정했다. 직장으로 출근하진 않지만 출산 뒤에도 프리랜서로 일을 계속하기 때문에, 보람 씨는 친정엄마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 “결혼한 뒤 신혼집은 일산이었고 친정은 의정부였는데, 엄마가 아이를 봐주기 위해 왕복 두 시간 거리를 오갔어요. 월요일 아침에 와서 화요일 밤에 가고, 수요일 하루를 쉬신 다음 다시 목요일 아침에 와서 금요일 밤에 가는 패턴이었죠. 아버지가 이해해주셔서 가능했는데, 작년엔 신혼집을 처분하고 의정부의 친정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어요. 저 정도만 돼도 주변 지인들은 다들 부러워하죠. 한 친구는 아이가 둘인데, 친정이나 시댁 어디에서도 아이를 돌봐줄 처지가 안돼 결국 회사를 그만뒀어요. 그래서 부모가 네 자식을 봐줄 수 있는 것도 복이다, 그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나도 그 말에 동감하고요.”

보람 씨는 아직 예순이 안 된 엄마가 손녀를 봐주느라 친구도 잘 만나지 못하고, 교회 활동에도 전념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엄마와의 잦은 다툼이 생겨 힘들다고 토로한다. “엄마라고 왜 안 지치겠어요.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그래도 일하는 딸의 처지를 조금 더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죠. 사실 요즘, 설 명절 전까지 2주 정도를 엄마가 집에 안 오셨어요. 그래 좀 쉬게 해드리자, 하고 혼자 아이를 돌봤죠. 엄마가 육아를 도와주지 않으니까 하루가 너무 짧고, 아이 돌보고 집안일을 하다 보니 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런데 설 연휴가 지난 첫날에, 엄마가 2주만 더 쉬면 안 되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교회에서 기도원으로 캠프를 왔는데 며칠 더 머물다 가고 싶다고요. 갑자기 울컥 서러워져서 싸우고 말았죠. 괜한 자격지심에 맘보도 고약해지고, 빨리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이 밀려와서 스트레스가 컸어요.”

부모 육아도움이 취업 여성의 출산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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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부부가 늘어나면서 어린 자녀를 양육할 책임이 조부모 세대에게 돌아가고 있다. ‘황혼육아’에 대한 논란과 갈등은 최근 ‘수저계급론’과 함께 한국 사회의 새로운 이슈가 됐다.

보람 씨는 엄마가 손녀의 육아를 도우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보통 오후 4시인데, 보람 씨의 어머니를 비롯해 같은 아파트 단지의 할머니들이 아이를 데리러 와서 모이게 되면 “손주 보는 일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식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유치원 앞이나 놀이터에서 만나면 그 집은 어떻고 이 집은 어떠냐는 식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만족한다고 말하는 할머니들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오히려 만족스럽지 않고, 인생이 허무하고, 손주를 돌보며 얻게 되는 행복의 크기가 작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는 거죠.” 보람 씨는 어머니가 어느 날 식사 도중에 무심코 내뱉은 ‘불행하다’라는 말을 듣고 놀라움과 함께 큰 죄책감에 빠졌다고 했다.

‘자식의 자식농사 시작’이라는 말은 지난해부터 줄곧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광고 카피 중의 하나다. 실버세대의 ‘황혼육아’라는 고단함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KCC건설의 스위첸과 SK브로드밴드의 광고가 대표적이다. 화면 속에서 머리가 허옇게 센 노부모는 포대기에 우는 아기를 업고 달래며, 온종일 집안살림과 육아를 병행한다. 끼니를 거르기 일쑤고, 허리디스크와 관절염, 어깨 통증, 우울증 같은 ‘손주병’을 달고 산다. 아이를 돌봐주는 조부모가 절실한 2030세대의 고충도 크지만, 황혼육아에 시달리며 충분한 휴식과 여가시간을 보장받지 못해 건강마저 해치는 6070세대의 고통도 크다. 바야흐로 6070세대의 헬조선이 시작되고 있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보람 씨는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2주쯤 쉬고 싶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백반증’에 걸리셨거든요. 멜라닌색소가 감소해서 피부에 하얀 반점이 생기는 병이에요. 원인은 따로 없고 면역력이 약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렇다고 하는데,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죠. 엄마가 아이를 돌보면서 좀 우울해했거든요. 활동적이던 분이 매일 집에서 아이와 씨름하다가 몸도 마음도 지쳤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죠. 지난해 말쯤에 그런 사실을 모르고 ‘둘째를 갖고 싶다’고 조심스레 상의했더니 엄마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서운했죠. 서로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보람 씨는 올해 안으로 둘째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 엄마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전히 둘째 아이의 육아에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 조부모의 육아의지에 따라 임신이나 출산 시기를 조절하고 있다. ‘아이를 좀 더 잘 기르기 위해서’라는 목적의식을 공유하지만, 조부모로서는 ‘평생육아’의 굴레에 매여 ‘손주병’에 시달려야 하는 힘겨운 노년 생활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둘째를 가질 계획을 말했을 때 보람 씨의 어머니가 불편해 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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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손녀와 입을 맞추고 있다. 작가 윤이형은 단편소설 ‘대니’에서 황혼육아를 “보석들만 모아 정성껏 만든 귀한 그릇에 매일같이 담기는 타는 듯이 뜨겁고 검은 약을 받아 마시는 일”로 묘사했다.

‘할마’와 ‘할빠’는 각각 할머니+엄마, 할아버지+아빠의 줄임말로, 몇 해 전부터 사용되는 신조어다. 조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황혼육아의 세태를 그대로 방증한다. 지난해 말 YTN의 보도에 따르면 약 510만의 맞벌이 가구 중 절반이 ‘할마’와 ‘할빠’의 육아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통계청의 발표 자료를 보면 예순 살 이상의 고령층 3명 중 1명 꼴로 자녀와 함께 살며, 성인된 자녀가 육아 조력을 이유로 부모에게 의지해 합가하는 캥거루족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황혼육아를 둘러싼 갈등도 점점 커지고 있다.


고부갈등으로 며느리 살해한 사건까지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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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의 손주 양육능력이 맞벌이부부의 출산을 좌우하기도 한다. 육아가 보장되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한 정부의 출산 장려정책들은 헛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2013년 3월, 둘째 손주를 임신하자 화가 난 나머지 며느리를 살해한 시어머니(57세)가 있었다. 며느리에게 수면제 두 알을 탄 국수를 먹인 뒤 잠이 들자 스카프로 목을 졸라 죽인, ‘대구 만삭 며느리 살해 사건’이다. 당시 며느리(34세)는 임신 8개월이었고, 시어머니는 차로 10분 거리인 자택에서 매일 오가며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를 대신해 첫째 아이를 돌봐주었다. 표면적으로는 임산부 며느리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지만, 시어머니가 남긴 유서에는 평소 ‘며느리가 나를 무시했으며 파출부 취급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논란이 됐다. ‘설거지를 제대로 못하니까 그냥 두라’고 일갈하거나, ‘내가 깨끗이 빨아 입힌 손자 옷을 며느리가 다시 벗겨 세탁기에 넣었고, 열심히 청소를 했는데 며느리가 잔소리를 하며 다시 청소’하는 등 시어머니의 자존감을 깔아뭉개고 모욕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밖에 지난해 10월에는, 자녀 양육비 문제로 갈등을 겪던 시어머니를 며느리가 청테이프로 묶은 뒤 락스를 부어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 말 한 방송사의 스토리텔링 다큐 프로그램에서는 육아 갈등 때문에 딸을 상대로 노부모가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아이를 낳아도 내 손으로 키울 수 없는 현실, 육아를 위해 부모의 손을 빌려야 하는 현실은 결과적으로 부모와 자녀 세대 간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불화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딸과 며느리 그리고 그들의 자녀를 돌봐줘야 하는 부모들은 서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수원에 사는 이인선(여·가명·63) 씨는 남편과 사별 후 아들 내외와 함께 살며 지윤(7), 지환(4) 두 손주를 돌본다. 아들 부부는 맞벌이 직장인으로, 아들은 새벽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고, 며느리는 출근 시간이 여유로운 대신 퇴근 시간이 늦다. 며느리가 지윤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면, 인선 씨는 둘째 지환이를 돌보며 집안살림까지 병행하고 있다. 아이 먹을 밥을 챙기느라 정작 본인의 끼니는 제때 챙겨 먹지 못하는 날이 잦고, 청소와 빨래를 하다 보면 어느덧 버스정류장에 지윤이를 마중 나갈 시간이 된다. 하원은 격일마다 다른데 오후 4시 반, 또는 6시다. 첫째 아이가 돌아오면 두 아이의 저녁식사를 챙겨 먹이고 아들 부부가 퇴근해 돌아올 때까지 돌봐야 한다.

“이런 일과가 매일 반복됩니다. 내 시간이 없고, 몸이 아파도 병원 한 번 가기가 어렵고,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기도 힘들어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지윤이를 버스정류장으로 데리러 나갈 때나 사람들을 만나는 정도죠. 그때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손주 기다리는 노인들이죠. 아파트 단지 정류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밖에 없으니까요. 우리끼리 만나면 인사가 그거예요.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항상 똑같죠. ‘식사는 하셨어요’가 아니라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묻는 것이 인사예요. 아이들 때문에 다들 제대로 식사를 챙기지 못하는 걸 서로 아니까 밥을 어떻게 먹었느냐, 하고 묻는 거예요. 예, 어찌어찌 틈이 나서 재빨리 먹었어요, 이런 식의 대화를 하다 보면 또 ‘어떻게’가 나옵니다. 아이와는 어떻게 놀아주세요? 이럴 땐 어떻게 하셨어요? 저럴 땐요…? 서로 손주를 어떻게 키우는지 정보를 공유하느라 바쁜 거죠.”

보람 씨의 어머니처럼 인선 씨도 손주 둘을 봐주면서 결국 허약한 몸에 병을 얻고 말았다. 허리와 목 디스크, 무릎 통증으로 입원도 여러 번 해왔고, 아이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불면 증도 생겼다.

“다 키워주고 나니 문도 안 열어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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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가 마련한 ‘예비 할아버지, 할머니 교실’ 프로그램에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육아 실습을 하고 있다. 황혼육아가 보편화되면서 ‘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김진실(여·가명·65) 씨는 미혼인 아들과 함께 살다가 아들이 먼저 세상을 뜬 바람에 혼자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시집 간 큰 딸이 마흔 두 살 나이에 아이를 가졌는데 “출산하면 아기 좀 봐달라”는 부탁을 받게 됐다. “딸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데 용인에서 살고 나는 화성에 살아요. 자동차를 운전해서 40분 거리예요. 딸아이가 손녀를 낳는데 요즘은 매일같이 양쪽 집을 왕복하며 손녀를 돌보고 있어요.”

진실 씨는 딸부부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궁시랑 할머니’로 불린다. 놀이터 같은 곳에서 비슷한 처지의 조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다 보니 붙여진 별명이란다. “그런 말이라도 안 하면 내 속이 터질 것 같아서요. 나는 아들 잃고 멀리 떨어져 혼자 사는데, 딸아이는 제 자식만 봐달라고 하지 ‘함께 살자’는 소리는 죽어도 안 하거든요. 결국 내가 가정부처럼 출퇴근을 하면서 손녀를 돌보는데 때때로 얄미운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예 같이 살면 차 기름값도 아끼고 생활비도 절약할 수 있잖아요. 이용만 해먹으려고 한다고 생각하면, 괘씸하죠.”

유희란(여·가명·69) 씨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가 70년대였는데, 그때부터 정말이지 갖은 고생을 하면서 두 아이를 키웠거든요. 그래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아파트를 사뒀는데 값이 뛰어 재산을 좀 모았죠. 그런데 10년 전쯤 아들이 장가를 가고 며느리가 출산을 하더니 손주를 봐달라는 거예요. 의정부 집을 비우고, 아들 집으로 가서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손주를 돌봐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슈퍼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거예요. 이 말을 사람들이 믿어줄지나 모르겠네요? 몇 시간 동안 밖에다 세워놓는데 ‘어머니 이제 가세요’ 하는 의미였겠죠. 어쩔 수 없이 지갑 하나 달랑 들고, 의정부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들은 내가 가고 싶어서 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애 다 키워주고 나니 이렇게 찬밥 취급인가, 너무 분했습니다. 지금은 아예 의절한 듯 살고 있어요.”

이런 상황을 딸에게 말하자 딸이 자기 집에 와서 함께 살자고 권유했단다. 결국 혼자 사는 게 엄두가 안 나고, 딸도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아이 세 명을 혼자서 키우고 있으니 도와주는 셈치고 그러기로 결심했다. 그 뒤로 손주들이 다 큰 뒤로 희란 씨는 다시 의정부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외롭고 울적해서, 손주라도 키워주면서 자식들에게 붙어 있으려고 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죠. 더는 내 도움이 필요 없는 것 같고, 사위 눈치도 보이는 게 사실이었거든요. 그래서 작년부터 의정부로 돌아와 아파트 단지 내 새댁네 집에서 도우미 일을 하고 있어요. 아기도 돌봐주고, 집안 살림도 돕는 일이에요. 아들과 딸 집에서 손주 돌보면서 돈 한푼도 못 받았는데, 요즘에는 먹고 살만큼은 벌고 있어요. 지금은 이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아요.”

육아문제에 있어 집단 양육방식보다는 친족에 의한 일대 일 보살핌이 더 안심이 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출산·육아와 관련한 사회적 시스템의 미비로 파생되는 문제를 오롯이 개인의 책임과 의무로만 돌리는 현실은, 부모와 자식 세대 모두에게 힘겨운 일이다. 특히나 새해부터 종일제 국가 돌보미 수당을 올린다는 정부 발표에 대다수의 워킹맘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근무시간이 긴 직업 여성들은 한 달에 170만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게 돼 웬만한 직장을 빼놓고는 ‘적자’를 떠안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맞벌이부부들은 더욱더 시댁이나 친정 부모에게 육아문제를 기댈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황혼기에 접어든 노부부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손주의 육아를 떠맡게 되는 딱한 처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부모가 직접 양육하게 제도적 뒷받침돼야
결국은 황혼육아의 대안으로 어린이집, 유치원, 아이돌보미 파견 등의 공공 육아 서비스를 더욱 확충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이에 앞서, 보육교사와 유치원 교사의 불공정한 계약직 처우를 개선해 보육시설의 서비스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도 선행돼야 한다. 젊은 세대의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사회의 노령화 문제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노인세대의 건강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한 사회적 시스템의 정비도 필요하다. 최근 호주에서는 손자녀 양육을 맡은 조부모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일본도 3세대 동거 지원책을 발표한 점을 고려한다면, ‘손주를 안을 땐 무릎 꿇고 온몸을 이용하세요’라는 등의 ‘글로 배우는’ 육아 방법보다 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정부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하겠다. 참고로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를 대상으로 한 한 설문조사에서, 할아버니·할머니들의 가장 큰 바람이 “자녀 부부의 (유연한) 육아휴직”으로 나타났다. 탄력근무나 정시퇴근 등으로 맞벌이부부들이 제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는 제도의 활성화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윤이형의 단편소설 ‘대니’는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 ‘대니’와 교감하는 예순아홉 살의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소설 속에서 손자인 민우를 주중에 홀로 돌보는 할머니는 놀이터에서 만난 스물네 살 청년 대니가 “아름다워요”라고 한마디 말을 걸어준 것을 계기로 친구가 된다. 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이는 곱고 사랑스럽고 반짝반짝 빛났다. 세상에 하나뿐인 보석들만 모아 정성껏 세공해서 만든 귀한 그릇 같기도 했다. 그 빛나는 그릇에 매일같이 담기는 타는 듯이 뜨겁고 검은 약을 남기지 않고 받아 마시는 것이 내 일이었다.”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가상의 세계를 그려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반짝이는 그릇에 담긴 사약 같은 그것을 매일 받아 마실 수밖에 없는 노인세대의 황혼육아 현실은 더 이상 가상의 현실이 아니다.

소설가 염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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