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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물 기업들, 3100조원 중국 환경시장 공략 시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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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14면

1 지난해 11월 대구 신천변에 나타난 왜가리와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무리. 동그라미 안은 신천·금호강에 출몰하는 천연기념물 수달. [사진 대구시]

2 폐수 거품이 심각한 90년대 초 금호강. [중앙포토]

지난달 24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3시간을 달려 장쑤(江蘇)성 남부의 소도시 이싱(宜興)을 찾았다. 도심 거리는 흔한 전봇대와 전깃줄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중국에서 둘째로 큰 호수라는 타이후(太湖)를 사이에 두고 항저우(杭州)의 맞은편에 위치한 인구 120만 명의 이 도시는 붉은 진흙으로 만든 자사호(紫沙壺)와 학자의 고장으로 이름 높다. 하지만 최근 중국 언론들은 이 도시를 중국의 ‘환경 수도’로 부르기 시작했다. 중국 국무원이 이 지역에 수(水)처리를 중심으로 한 환경기업을 모아 중국 최대의 환경공단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단의 면적은 212㎢. 이싱 전체 면적(2177㎢)의 10분의 1 규모에 달한다. 서울시 면적(605㎢)의 3분의 1을 가뿐히 넘을 정도로 거대하다. 시내에는 이미 1800개에 달하는 환경산업 관련 기업이 가동 중이다. 이들 기업의 매출은 중국 전체 환경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싱환경공단을 책임지는 기관은 ‘중국이싱환보과기공업원(中國宜興環保科技公業園)’이다. 이싱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중국 과학기술부와 환경부가 공동 관리하는 국가급 기관이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환보과기원 산하 이싱국제환보전시장을 찾았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 같은 곳이다. 전시장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방패연에 태극무늬가 선명한 쇼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문명 ‘KOREA’와 함께 한자로 쓰인 대구광역시와 대구환경공단 글씨가 한눈에 보였다. 엔바이오컨스와 우진 등 대구의 환경 관련 기업들이 대구시와 함께 참여한 전시장이었다. 중국 측이 2년간 임대료를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초대한 대구 기업들이다.


전시장을 나와 차를 타고 서쪽으로 5분여를 달리니 건물 꼭대기에 붉은 글씨로 ‘世界一流曝?系統硏制造基地’(세계일류폭기계통연발제조기지)라고 써 놓은 6층 유리벽 건물이 나타났다. 하수처리장에 공기를 불어넣어 정화 기능을 하는 폭기조(曝氣槽)를 만드는 강소필립이라는 이름의 회사였다. 주차장 앞쪽에는 회사 소개와 함께 발전계획을 담은 대형 입간판들이 늘어서 있었다. 강소필립은 한국 기업이 투자한 한·중 합작 수처리 전문기업으로 중국이싱환보과기공업원과 한국의 대구환경공단이 참여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국, 그것도 대구의 중소기업들이 중국 장쑤성의 이싱까지 진출한 이유는 뭘까. 이들은 대부분의 중국 진출 한국 중소기업처럼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올해부터 4년간(2016~2020년) 약 17조 위안(약 3100조원)이 투자된다는 중국의 거대 환경산업을 선점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의 환경산업은 최근 들어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월부터 대폭 강화된 환경보호법을 시행하면서 환경 기초시설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보호법 시행 6개월 만에 중국 내 9300여 개 공장이 폐쇄되고 2억3600만 위안의 벌금이 부과된 것이 그 증거다.


한·중 합작 강소필립에 투자한 회사는 한국의 중소기업 엔바이오컨스다. 지난해 12월 투자 계약을 하고 강소필립 지분 48%를 받았다. 지분과는 별도로 1억 위안(약 180억원)의 기술이전료도 받았다. 강소필립은 중국 내 6000여 개의 하수처리장 중 500곳에 폭기조를 공급하는 중국 내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강소필립에는 대구환경공단과 중국 환보과기원도 각각 1%의 지분을 투자했다. 양국의 공공기관이 직접 주주와 정책 지원으로 참여하면 한·중 합작기업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전략에서다. 그간 수많은 한국 기업이 중국과 손잡았다가 수년 뒤 기술만 빼앗기고 빈손으로 돌아왔던 사례를 참고했다. 대구환경공단은 현재 직원 2명을 이싱에 파견해 대구~이싱 간 협력사업을 돕고 있다. 강소필립은 환보과기원과 함께 이싱 현지에서 한·중 산업클러스터를 만들어 양국 기업들을 입주시키고 폭기조 외에 다양한 환경 관련 설비를 생산하는 자회사도 설립할 계획이다.


엔바이오컨스 이동완 대표는 “올해 안에 베이징에 있는 제3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몸집을 키우고 실력을 다진 다음 3년 안에 중국판 나스닥인 차스닥으로 올라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엔바이오컨스는 하수 슬러지를 건조시켜 자원화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1위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240억원 수준이다.


올 상반기에 또 하나의 한국 기업이 강소필립에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대구 토착 중소기업인 우진이다. 하수처리장의 정수 처리 전 오폐수를 고루 섞어주는 교반기 전문기업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진은 지난해 4월 중국 허난(河南)성의 성도 정저우(鄭州)의 하수처리장에서 중국 기업이 10년 동안 풀지 못한 고농도 오폐수의 문제점을 우진의 교반기와 제어기술로 단 5일 만에 해결했다. 우진의 설비가 중국 제품에 비해 에너지를 70%까지 절감한 것도 강점이었다. 이를 지켜본 중국 현지 환경기업들은 물론 환보과기원이 곧바로 합작 ‘러브콜’을 불러댔다. 강소필립에 한국의 엔바이오컨스를 소개해준 것도 우진의 주윤식 대표였다.


주 대표는 “엔바이오컨스와 함께 중국 강소필립을 종합 수처리기업으로 변신시켜 중국 환경시장을 석권하는 것이 목표”라며 “우진이 한국에서는 매출 100억원에 불과한 중소기업이지만 중국에 본격 진출하면 1000억원 매출은 가뿐히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 컨설팅을 담당하는 ‘이싱환경병원’조감도.

엔바이오컨스와 우진의 중국 진출에는 대구시와 대구환경공단의 미래전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대구시가 침체된 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한 미래산업 육성 방안 중 첫째로 내놓은 것이 ‘세계적 물산업 도시 조성’이었다. 2014년 12월 사업타당성을 통과하고 산업단지 조성이 한창인 국가물산업클러스터가 대표적이다. 대구시는 국비 2522억원을 포함한 총 3137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달성군에 2018년까지 64만5000㎡(약 19만5000평) 규모의 종합 물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곳에는 엔바이오컨스와 우진 등 중국에 진출한 한국 물 관련 기업들은 물론 롯데케미칼 등 국내 대표 환경 관련 대기업들도 들어설 예정이다. 2014년 7월에는 대구환경공단과 중국 이싱환보과기공업원이 플랫폼을 구성해 양국 기업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국내 물 관련 기업이 중국에 보다 안전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공공 차원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해 4월에는 대구 엑스코에서 ‘물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제7차 세계물포럼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김연창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환경산업은 민간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중국에 진출하기에는 기술 유출이나 합작 부담, 현지 영업 등 리스크가 크다”며 “대구시와 중국 지방정부가 참여해 신뢰를 끌어올림으로써 그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대구시는 앞으로 대구환경공단을 공사 형태로 변경해 이싱환보과기원과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중국 물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전략도 세우고 있다. 또 중국뿐 아니라 미국 밀워키와 브라질 브라질리아, 프랑스 마르세유 등 세계 물산업 선도도시와 파트너십을 구축해 대구를 글로벌 물산업의 허브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대구가 왜 하필이면 물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았을까. 그 배경에는 대구의 ‘물 흑역사’가 있다. 대구시를 가로지르는 금호강은 1980년대까지 전통적 주력 산업인 섬유 염색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로 심각히 오염됐다. 91년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으로 대표되는 구미공단의 수질파동도 대구에 ‘최악의 수질 오염 도시’라는 오명을 씌웠다.


대구환경공단에 따르면 84년 금호강은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이 111ppm에 달할 정도로 말 그대로 ‘폐수 덩어리’였다. 그러다 대구의 첫 하수처리장인 달서천하수처리장이 87년 건설되고 이후 최근까지 7개 하수처리장이 만들어지면서 하수처리 시설용량이 전국 최고 수준인 130%에까지 이르렀다. 대구시 전체 하수를 처리하고도 시설에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금호강의 BOD는 94년 12.8ppm로 크게 낮아졌다. 2003년 이후에는 2급수에 가까운 3ppm대로 관리되고 있다. 국내 환경 기준에 따르면 수질 1등급은 BOD 1ppm 이하, 2등급은 3ppm 이하, 3등급은 6ppm 이하로 구분된다. 수질 오염이라는 대구의 위기 극복 과정이 물산업의 경쟁력으로 이끈 것이다.


윤용문 대구환경공단 이사장은 “대구는 이제 하수처리장 방류수를 전국 최고 수준인 1급수(BOD 0.8ppm) 수준으로 내보내고 있다”며 “금호강과 신천 일대에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서식할 정도로 맑은 강으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상수도 역시 낙동강 물을 100% 고도정수 처리해 전국 최고 수준의 수돗물을 시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 역시 페놀사태와 수돗물 악취사건 등으로 홍역을 치른 경험이 바탕이 됐다. 대구시는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2011, 2012년 2년 연속 환경부 주관 물수요 관리 추진성과 평가에서 최우수기관에 선정됐다.


거대 중국 환경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물산업의 허브가 되겠다는 대구시의 미래비전에는 아직도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 많이 남아 있다. 우선 중국의 환경산업에 대한 한정된 정보 수집력과 네트워크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중국이 한국 기업의 면허와 실적을 인정하지 않아 중국 내 환경사업에 한국 기업이 단독 입찰할 수 없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난제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장재호 본부장은 “중국은 정부기관이든 기업이든 본질적으로 자국 기업의 이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과 신뢰·협력에는 한계가 있다”며 “대구시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중국의 물시장에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하이·이싱=강찬수·최준호·문희철 기자?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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