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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 이기고 이렇게 축하받긴 처음" 알파고에 첫 승리 거둔 이세돌 9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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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승후 기자회견장에서 웃고 있다. 강정현 기자

"한 판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받은 건 처음이다."

13일 알파고와 네 번째 대국만에 첫 승리를 거둔 이세돌 9단이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대국 직후 기자회견장에 그가 들어서자 장내에는 큰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9단은 "이번 경기 전에 4대 0, 5대 0을 얘기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한 판 정도 졌다면 진 게 아까웠을 듯 한데, 이제는 한 판 이긴 게 이렇게 기쁠 수 없다"며 "값어치로 매길 수 없는 1승"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적인 성원과 응원을 의식한 듯 "여러분의 격려 덕에 한 판이라도 이긴 것 같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이 9단은 취재진과의 문답에서 "알파고가 노출한 약점은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첫째로 "흑을 더 힘들어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둘째로 "오늘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수가 나왔을 때 일종의 버그 형태로 몇 수가 진행됐다"며 "생각 못한 수가 나왔을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 측의 정보 비대칭성이 지적된 데 대해서는 "알파고에 대해 처음부터 정보가 있었으면 수월했겠지만 기본적으로 내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대범하게 말했다.

세 번의 패배에 대해서는 "충격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있긴 있었는데 대국을 중단할만한 건 아니었다"며 "물론 그 결과가 좋지 않아써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즐겁게 바둑을 둬서, 내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날 승리를 가져온 묘수에 대해서는 "그 장면에서는 다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던 한 수였는데 이렇게 칭찬을 받아서 어리둥절하다"고도 했다.

이 9단은 마지막 5국에서 흑을 쥐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한 판 이겨서 많이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이번에 백으로 이겨서 5국에서는 흑으로 두고 싶다"며 "흑으로 이겨 보는 게 백으로 이기는 것보다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백으로는 이겼으니 마지막 대국은 흑으로 정하고 두는 게 어떨까 한다"는 이 9단의 말에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CEO도 "좋다.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다.

기자회견에서 하사비스는 이 날 알파고의 버전에 차이가 있냐는 질문이 나오자 "동일한 버전인 분산형 시스템을 사용했다"며 "단일형도 있는데 분산형이 더 능력이 좋다"고 답했다. 그는 "알파고의 수들은 인간이 보기에 직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중에 보면 묘수일 수도, 실수도 있는데 승패에 따라 그 수를 평가할 수 있다"며 "오늘 알파고가 졌으니 그 수들은 실수인 것"이라고 말했다.

하사비스는 "알파고를 이 9단의 기풍에 맞춰 훈련하지는 않았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알파고의 학습방식에 대해 "인터넷상의 아마추어 기보를 알려주고 훈련해 스스로 바둑을 두는 범용 학습방법을 사용했다"며 "이 9단의 기보를 입력했거나 맞춤형 대응을 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그렇게 하고 싶었도 못 했던 게 알파고가 학습하려면 수 백 만 개, 수 천 만개 정보가 필요하다. 수 백, 수 천 개 정보로를 알파고를 학습시킬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날 현장 영어해설을 맡았던 마이클 레드먼드 9단은 특히 이 9단의 78수를 두고 "나도 놀랐고, 상대인 알파고도 놀랐을 것"이라며 "중앙에서 그 묘수가 정확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말 해설을 담당한 송태곤 9단도 "중앙에서 승부수가 멋있었다"고 평했다. 송 9단은 "(이 9단이) 알파고와 대국하면서 알파고의 생각을 알아가고, 익숙해지는 것 같다"며 "오늘 알파고의 미세한 약점을 파악했기 때문에 5국에서 좀 더 재미있는 승부를 펼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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