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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에 대한 위로 성원 힘입어 해외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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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6 면

시작은 한 편의 그림이었다. 2002년 나눔의집으로 봉사활동을 간 청년은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았다. 처녀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소녀들은 군용 트럭에 실려 울창한 숲으로 끌려간다. 고된 세월로 인해 이미 병약해졌거나 정신줄을 놔버린 소녀들은 차례로 처형된다. 그리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소녀들의 몸 위로 떨어져 불에 타들어간다. 관객 수 30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영화 ‘귀향’은 이같은 사실과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조정래(43) 감독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밤새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영화 제작은 쉽지 않았다. 위안부 소재라는 이유로 투자자도 제작사도 모두 외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포기가 안되기도 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알리겠다고 할머니들께 약속을 드렸으니까요. 불타고 있던 소녀들이 하늘로 올라가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꿈을 꾼 뒤부터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귀향’ 이야기를 했습니다.”


1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 감독은 국립합창단 창단 실화를 다룬 ‘두레소리’(2012)와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 이야기인 ‘파울볼’(2015)을 찍었지만 가슴 한 켠에 남겨둔 숙제를 잊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찍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쳤다. “그동안 해온 일들이 모두 도움이 됐어요. 제가 원래 전통 음악을 하다 보니까 진도 씻김굿을 여러 번 봤었거든요. 무녀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긴 하지만 할머니들의 넋을 달래기에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서편제’(1993)를 보고 판소리에 매료돼 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을 이수한 그의 이력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를 만들어낸 셈이다.


한복 디자이너인 아내 이혜진씨도 큰 도움이 됐다. “어느날 아내가 괴불노리개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의미가 너무 좋더라고요. 3재를 막아주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기능을 하는데 소녀들이 지니고 있다면 큰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뭐 하나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끌려갔겠지만 그렇게라도 속죄를 하고 싶었달까요.” 극중 씻김굿이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을 위로한다면 괴불노리개는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깃든 상징물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정성과 노력이 쌓이면서 조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구 선생의 먼 친척인 임성철 PD는 극중 일본군 악역을 맡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정민 역을 맡은 강하나양을 비롯해 재일교포들도 대거 합류했다. 이들은 자신의 배역뿐만 아니라 일본어 지도 선생님으로 나서기도 하고 번역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결정적으로 힘이 된 건 바로 7만5720명에 달하는 후원자들이다. 수차례 투자가 무산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튜브에 티저 영상을 올렸는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삽시간에 후원자들이 모여 전체 제작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12억원이 모였고, 지난해 6월 마침내 촬영이 시작됐다. 200여 명의 스태프 중 대부분이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하면서 힘을 보탰다. 영화가 끝나고 10분 동안 올라가는 엔드크레딧은 사뭇 장엄하기까지 하다.


‘귀향’은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11일 해외 상영도 시작한다. 미국 LA와 댈러스에서 극장 개봉과 동시에 한국영화 최초로 애플TV 아마존TV 내 KORTV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 영국에서 디지털 상영된다. “이 모든 게 다 꿈만 같아요. 개봉 전부터 영어ㆍ일본어ㆍ중국어 자막을 다 준비해두긴 했는데 실제로 이뤄질 줄은 몰랐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도 꼭 상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편해서 못 볼 것 같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때로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너무 직관적이어서 여기저기서 한숨 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오니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비록 아픈 과거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마지막엔 다 나비가 돼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가 44명밖에 되지 않는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같이 아픔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14년 만에 결실을 맺은 이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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