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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안철수 정치의 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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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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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안철수현상’에서 비롯된 ‘안철수정치’가 몰락과 연명의 기로에 섰다. 정치참여의 핵심 기치인 ‘새 정치’의 내용과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는 결과제시를 제일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국회의원·정당대표(2회) 동안 실제 업적은 찾기 어렵다.

강점 분야인 경제·보안·IT·의료 부분에서조차 문제해결 업적은 없다. 보안전문가로서 국가정보원 선거개입과 테러방지법 논란에서 보여준 전문성은 없었다. IT 전문가로서 추락하는 한국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신성장동력 발굴과 IT산업을 부흥시킬 대안은 제출하지 못했다. 의사 출신으로서 온 국민을 슬픔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및 메르스 사태에 대한 효과적 해법도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삶의 문제와 실제과제를 학습하는 현장정치·바닥정치 대신 말과 세(勢)를 앞세우는 대권정치·기성정치를 답습했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 인식과 훈련부족도 추락이유였다. 두 가지는 특히 두드러진다. 먼저 제도적 경쟁과 타협의 일관된 회피다. 소통과 타협의 결여는 일방주의와 독선을 기본속성으로 갖는 경제인·기업인·금융인 출신들이 서구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국가정치로부터 배제되어온 핵심 요인이었다. 오랜 대화가 필요한 정치·선거·득표·타협을,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사업확장·주식투자·이윤추구 행위와 동일시하기 때문이었다. 기업인 출신 정주영·문국현·안철수 정치의 공통점은 근대 민주주의의 지혜가 옳았음을 보여준다.

경쟁 없는 대선후보 전격 포기, 창당 준비 도중의 당내 토론없는 전격 합당, 야당대표 시기 당선보장지역 후보의 경쟁배제와 일방적 지명(광주시장 및 광주광산을 선거), 파벌투쟁시기 일체 타협안의 거부(혁신위원장·인재영입위원장·공동대표) 과정에서 그는 공적 경쟁·내부 토론·투표·타협·승복보다는 일방적인 고독한 자기결단을 반복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표적 멘토·참모·동료들은 자주 갈등·이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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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기득권강화의 행태다. 제3지대를 추구하는 안철수 정치는 한국사회의 구조를 반영한다. 즉 87년 이후 총선의 유효정당과 대선의 유효후보 숫자는 평균 3.7에 달한다. 지역(김종필·이인제·이회창), 기업(정주영·정몽준·문국현·안철수), 이념(권영길·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이라는 세 기축 요인으로 인해 제3정당과 제3후보가 계속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 정치의 제3지대 추구는 민주개혁진영을 분열시키고 보수기득세력을 강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특히 문제는 호남기득정치와의 연대이다. 한국정치에서 지역구도는 가공할 현실이다. 안철수 정치는 왜 영남에서 한국사회의 가장 강고한 기득세력인 영남패권·TK패권의 타파를 추구하지 않고, 당내투쟁의 산물인 호남정치복원 담론과 연합하여 야당 내 비호남 세력의 견제와 축출에 집중하고 있는가? 민주화운동세력과 친노세력을 야당패권세력으로 규정하여 호남-비호남 개혁세력을 분리한 뒤 후자를 무너뜨리고, 그리하여 야당을 호남이라는 지역구도에 다시 가두어 국가 전체의 패권을 지속하려는 보수세력의 중심전략을 안철수 정치가 선도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더구나 친노세력은 3당합당으로 괴멸된 비호남야당을 부활시키고, 호남과 연대하여 대통령을 배출한 뒤 가장 친호남적인 지역균형·인사·예산정책을 실시한 정부였다. 객관적 조사를 하면 ‘친노의 호남홀대론’은 허구다. 입법·사법·행정부의 수장이 동시에 호남 출신인 정부는 건국 이래 노무현 정부가 유일하였다. 총리 2인, 여당대표 2인, 국가정보원장을 포함한 고위직에 호남출신이 가장 많은 정부도 노무현 정부였다.

국가기관 이전, 투자와 예산배정도 같았다. 지역총생산은 김대중 정부는 호남이 평균 28.82%를 성장, 전국보다 9.37%가 낮았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호남이 평균 39.86%를 성장, 전국보다 5.84% 더 성장하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하 전남의 성장은 충남과 함께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민주개혁세력의 연대는 보수압도의 한국현실에서는 민주발전과 국가균형의 최소요건인 것이다.

민주화 이후 호남은 ‘공천이 곧 당선’인 야당기득세력의 중심이었다. 본선이 필요없기 때문에 예선=공천을 위한 당내패권투쟁은 호남정치의 핵심이었다. DJ 이후 ‘전국’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지역’에 매몰된 ‘기득적’ 호남정치가 ‘민주적’ 호남민심과 괴리된 결정적 이유였다. 보수야당과 함께 노무현 탄핵을 주도한 파벌도 구호남·동교동세력이었다. 호남민심이 전국에서 물갈이 요구가 가장 높은 민주시민의식을 갖는 연유도 지역구도·당내기득이익·파벌투쟁을 넘는 민주주의 실현요구 때문이었다. 호남민심은 호남정치세력을 훨씬 앞서 보편적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독선과 지역을 넘어 보편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안철수 정치의 자기퇴출은 더욱 빨라질지 모른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