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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설비 29대…‘마타하리’의 첨단 리허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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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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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타하리’ 중 물랑루즈 장면의 무대 스케치. 화려함이 돋보인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영점 맞추시고요, 왜 속도가 어긋나죠?”

제작비 130억 창작 뮤지컬
세트 동선, 10분의1초까지 맞춰

이진호 무대감독의 목소리가 칼칼해졌다. 5일 경기도 광주의 한 물류센터. 무려 13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개막까지 고작 20여 일 남은 상태, 당연히 배우의 땀냄새가 흠뻑 배어있으리라 예상했건만 출연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시커먼 기둥 등 엉성하게 생긴 덩어리만 왔다갔다 했다. 그게 리허설이란다. 게다가 하적물을 쌓아두는 500평 크기의 휑한 창고에서 뮤지컬 막바지 점검이라니, 이건 또 무슨 괴이한 일인가.

사연인즉 이렇다. 엄청난 자본력만큼 ‘마타하리’는 최첨단 기술의 향연이다. 무대를 위한 자동화기기만 29대가 작동한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급 무대 메커니즘이라는 ‘레미제라블’(16대)과 ‘위키드’(15대)보다도 두배 가량 많다. “다소 구식”이란 기존 창작 뮤지컬에 대한 선입견을 한방에 날릴 요량이다.

바닥·옆면·뒷면·공중 등의 세트가 다 따로 논다. 한꺼번에 이동하기도 하고, 서로 겹치기도 하다. 부딪침이 없기 위해선 10분의1초까지 정교해야 한다. 자연히 무대 설치 및 작동에만 최소 두 달이 요구된다. 그래서 ‘마타하리’ 제작진은 정식 공연장(블루스퀘어)과 비슷한 공간에서 올 1~2월 예행 연습하기로 했다.

수도권의 문예회관, 대학 체육관, 중·고교 강당 등 100여 곳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기업 단합대회 등으로 사전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고심 끝에 대형 창고라는 묘안을 냈고, 10m 높이에 기둥이 없는 이 물류센터를 찾을 수 있었다. 이연구 기술감독은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데만 꼬박 사흘밤을 새고 말았다”고 전했다.

당초 계획은 한 달 안에 세트를 설치하고 가동시킨 뒤 나머지 한 달 출연진이 투입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정밀한 무대장치는 변수가 많았다. 시일이 늦춰진다고 배우간 호흡 맞추기를 미룰 수도 없는 일. 결국 별도의 공간에서 출연진이 연습을 하면, 그걸 찍은 영상을 물류센터에서 틀면서 시간·동선 등을 맞추는 이중작업을 감행해야 했다. 배우없이 연습하는 ‘섀도 리허설’이었다. 각기 따로 예열과정을 거친 무대와 배우는 9일 공연장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합(合)을 맞출 예정이다. 엄홍현 프로듀서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였던 마타하리의 스토리인만큼 이중의 연습과정은 운명이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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