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복지부동 징계, 공직사회 변화로 이어져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앞으로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등 ‘소극 행정’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줄 경우 최고 파면의 징계를 받게 된다. 우리는 이번 대책이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이란 지적을 받아온 공직사회의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인사혁신처는 적극적으로 일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등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다고 어제 밝혔다. 부작위(不作爲)나 근무 태만 등을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 위반’으로 명시하고 비위 정도에 따라 징계하겠다는 것이다. 인사처는 특히 소극 행정으로 안전사고가 일어나거나 국민 불편이 발생할 경우 당사자는 물론 지휘감독자도 엄중 문책하기로 했다. 반면 적극 행정을 하다 발생한 과실에 대해선 징계 수위를 낮출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소극 행정 중징계 방침은 그간 공직사회에 ‘불법과 비리만 없으면 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아온 데 따른 것이다. 그 결과 공무원들 사이엔 몸을 사린 채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게 ‘삶의 지혜’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실제 지난해 말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개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울산에선 이혼 신고가 3년이 다 되도록 처리되지 않아 민원인이 또다시 협의이혼 절차를 밟아야 했다. 경북 칠곡의 경우 옹벽이 불법으로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건축 허가를 내줘 옹벽 붕괴로 주민들이 대피한 사례가 적발됐다.

황찬현 감사원장이 지난달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를 비리에 준하는 선에서 엄단하겠다”고 밝힌 것도 공무원들의 직무 태만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다만 소극 행정 퇴출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선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상부에 밉보였다거나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의 덤터기를 씌우는 일이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공직은 공무원 자신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으로 벌판에서 삭풍을 맞고 있는데, 공무원은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넘기면 된다는 구태에 빠져 있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