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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공유도시가 공동체·연결 가져올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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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8 면

어느 날 아침 푸른 눈의 이방인이 짐가방을 끌고 대문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상상을 해 보라.?타인에게 속살을 내어 보이는 듯한 당혹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는 순간을 180도 뒤집은 사람들이 있다.


에어비앤비(Airbnb)의 젊은 창업자 트리오다. 이들은 창업 7년 만에 190개국 200만 개에 달하는 집의 방문을?여는 데 성공했다. 기꺼이 방을 내준 주인에겐 가외 소득을, 여행자들에겐 낯선 도시의 삶을 엿보는?기회를 주자 회사는 255억 달러(약 30조7400억원) 가치로 몸값이 불어났다. 화가의 집,?농부의 집,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의 집과 외딴섬, 고성마저?속속 여행자들에게 열리면서 회사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공유경제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업입니다. 미래의 공유 도시는 우리에게 고립과 분리 대신 공동체와 연결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에어비앤비 창업자 중 한 명이자 최고제품책임자(CPO)인 조 게비아(35)는 중앙SUNDAY에 그의 회사가 몰고 온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얼핏 거창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그가 말하는 포인트는 하나다. 경험을 소비하는 것이다. 원하는 물건을 구입해 쓰는 것이 지금까지 소비의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드리워진 물건을 소비해 그 경험까지 나누는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경험 소비의 핵심은 신뢰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 강연에 나선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잠금 상태를 해제하고 왼쪽에 앉은 사람에게 건네 보세요”라고 권했다. 자신의 스마트폰도 객석에 앉은 사람에게 건넸다. 청중이 순간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그는 “자신의 집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심정도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는 편견(stranger-danger bias)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전달하려는 핵심이었다.


신뢰 쌓이도록 주인-여행자 상호 평가 경험을 주고받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를 쌓기 위해선 촘촘히 디자인된 ‘평판 시스템’이 필요하다. 숙소에 대한 설명과 후기가 대표적이다. 지나친 설명은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판단에 에어비앤비는 단문으로 집 소개를 할 수 있도록 꾸몄다. 주인(host)과 여행자(guest)에 대한 후기도 공유한다. 집을 낯선 손님에게 빌려주려는 주인은 그 손님에 대한 다른 집주인의 후기를 볼 수 있다. 여행객 역시 선택한 집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을 들여다볼 수 있다. 디자이너 출신인 게비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제대로 된 디자인은 편견을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빈방을 타인에게 빌려준다는 이 아이디어의 뿌리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미국 디자인 학교 중 명문으로 꼽히는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에어비앤비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창업 멤버인 브라이언 체스키(34)가 그의 동기였다. “회사를 같이 차리자”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둘은 졸업 후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게비아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출판사인 크로니클북스에 들어갔고, 체스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산업디자이너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체스키는 “창업하자”는 게비아의 전화를 무시하질 못했다. 당시 몰던 낡은 혼다 차량에 짐을 구겨 담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그의 통장에 있는 전 재산은 1000달러였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곧 난관에 빠졌다. 월세가 1150달러나 되었는데 수중엔 돈이 없었다. 체스키는 “샌프란시스코에 오기 전에 (월세가 얼마인지) 물어봤어야 했다”며 농반진반으로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26세 동갑내기 청년들은 곧 월세를 낼 묘수를 떠올렸다. ‘국제 디자인 콘퍼런스가 열리는데 방을 구하지 못한 디자이너들에게 방을 빌려주자’는 것이었다. 게비아가 갖고 있던 공기침대를 꺼냈고, 두 사람은 ‘공기침대와 아침(airbed and breakfast)’ 공고를 냈다.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라고 여겼지만 홍보 첫날 3명의 손님이 이들의 작은 아파트를 찾아왔다. 이때만 해도 방을 빌려주는 건 그저 월세를 벌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체스키는 “한때 룸메이트 프로필을 제공하는 사이트를 만들려고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에어비앤비 공동 창업자 조 게비아, 네이선 블레차르지크, 브라이언 체스키(왼쪽부터).

민주당 전당대회 계기로 도약 시작 이들의 궁여지책이 창업 아이템으로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부터의 일이다. 2008년 2월 하버드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네이선 블레차르지크(32·최고기술책임자)가 합류했다. 3주에 걸쳐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용자는 고작 3명에 불과했다.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건 그해 여름의 일이었다.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대통령 경선을 위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풋볼 경기장 2만7000석이 모두 매진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3명의 청년은 “숙소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방을 알려주자”는 생각에 뉴스 검색에 들어갔다. ‘민주당 전당대회 숙소 부족’ 검색어를 입력해 뉴스 기사 말미에 붙은 기자들의 e메일 주소를 끌어모았다. 잘 곳이 없다는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무작정 홍보 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온 건 한 블로거였다. 무작정 홍보는 행운으로 이어졌다. 블로거의 글에서 지역신문으로, 또다시 CNN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번져 나갔다. 게비아는 한 인터뷰에서 “100명을 모으는 데 1년이 걸렸는데 이후로 전국에서 방을 등록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제대로 된 ‘회사’의 모양새를 갖춘 것은 이후의 일이었다. 입소문은 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는 최악이었다.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3명의 청년에게 손을 내민 건 폴 그레이엄(51)이었다. 작가이자 프로그래머, 벤처캐피털 투자가인 그는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미다스의 손으로 꼽힌다. 그가 주도하는 Y컴비네이터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끔찍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3명이 고안안 생존법을 보곤 마음을 바꿔 먹었다.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집용 시리얼’을 만들어 팔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존 시리얼 상자 위에 경선에 나온 오바마를 모델로 ‘오바마 오스’란 이름을 붙여 포장하고 ‘변화의 아침식사’란 그럴싸한 부제까지 떡하니 달아놓았다.


그해 11월 그레이엄은 시리얼을 팔아서라도 회사 자금을 만드는 넉살 좋은 청년들의 가능성을 높이 사 투자를 결정했다. 회사 이름이 에어비앤비로 간소해지고, 지금의 사업구조를 갖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평소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고 말해온 그레이엄에게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하고, 걱정하기보다 도전하는 이들의 기개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체스키는 “그레이엄이 당시 시리얼을 팔던 우리를 보고 ‘아이디어는 최악이지만 회사가 죽진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관광객 취향 세분화, 다양한 호스트 필요” 에어비앤비는 그레이엄과 만나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유럽의 비슷한 사업모델을 갖고 있던 회사를 인수해 첫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이용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기준 누적 이용객이 6000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엔 새로운 시장도 개척하기 시작했다. 바로 비즈니스 여행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가 기존 호텔 외에 에어비앤비를 출장 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정도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미 지난해 이용자 수에서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인 힐튼을 넘어섰다.


이준규(43) 에어비앤비 한국 대표도 이 회사의 가능성에 이끌려 합류했다. 구글 출신인 그는 에어비앤비 대표 제안을 받고 제주도 집을 빌려 여행을 떠났다. 어린 아들과 함께 제주 여행길에 들른 삼겹살집 사장이 “관광객이 잘 안 오는 곳인데 서울 사람이 왔다”고 반기는 것을 보곤 “지역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구글에 있을 때도 기술을 활용해 소상공인을 돕는 일에 관심이 있었는데 에어비앤비로 관광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2014년 한국 법인 대표로 부임한 뒤 제주와 전주 가이드북을 내고, 영월과 손잡고 한국의 농촌체험 상품을 해외 여행객에 알리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화장실마저 불편한 영월 산골마을에서 관광객이 체험할 수 있는 거라곤 고구마를 캐고 감자를 캐는 것이었지만 멀리 노르웨이에서도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왔다. 이 대표는 “경험 위주의 경제로 바뀌면서 관광객들의 취향과 관심이 세분화되는 상황”이라며 “이런 수요에 맞는 상품을 제공하려면 다양한 호스트들밖에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게비아와 이 대표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도 관심이 많다. 이 대표는 “대규모 건설 공사를 통해 숙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며 “평창 올림픽을 세계에 알리면서 대안 숙소를 제공하는 협업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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