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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맥박 그대 몸속에 살아 숨쉬네” 노래로 상처 보듬는 기증자 유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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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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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단 활동을 통해 장기기증자 유가족과 수혜자들은 새로운 가족을 얻으며 마음속 상처를 이겨냈다. 왼쪽부터 박유나 양, 의형제를 맺은 이봉화·홍광진씨 가족, 의부녀가 된 송종빈·이현주씨. [사진 한국장기기증원·이봉화씨·송종빈씨]

“저희 아이는 한 생명을 살리고 먼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장기기증 홍보 ‘생명의 소리’ 합창단

 지난해 8월 22일 서울 서초구 유중아트센터 강당은 눈물바다였다. 뇌사 장기기증을 알리기 위한 ‘생명의 소리’ 합창단 72명이 처음 모인 날이었다. 교통사고, 갑작스러운 질병, 생각지도 못한 사고…. 기증자 유가족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말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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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세계 장기기증 및 이식의 날`에 공연을 펼친 합창단. 총 3곡의 하모니를 선보였다.

 한국장기기증원이 구성한 합창단은 ‘세계 장기기증 및 이식의 날’(10월 17일)에 맞춰 새롭게 꾸려진 만큼 대부분 생면부지였다. 하지만 기증자 유가족을 비롯해 장기이식 수혜자, 기증 희망 서약자 등 다양한 구성원들은 이내 하나가 됐다. 지휘자 장연정(43·여)씨는 이를 “내가 왜 장기기증 합창단을 맡아야 하는지 첫날부터 알게 됐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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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단을 통해 의부녀가 된 송종빈·이현주씨. 이씨는 아버지가 둘이 됐고, 송씨는 먼저 떠난 큰 딸의 빈 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나의 숨결, 나의 맥박, 그대 몸속에 살아 숨 쉬네….” 연습 도중에도 눈물은 끊이질 않았다. 기증자들을 위해 만든 합창곡 ‘주는 사랑 받는 감사’를 부를 때면 유가족 몇몇은 목이 메어 연습장을 수시로 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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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로 의기투합한 이봉화·홍광진씨와 이씨의 부인 김애자씨. 이들은 거의 매일 연락하면서 안부를 묻고,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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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합창단에 참가해 노래를 부른 임귀녀 할머니와 박유나양.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여덟 살 소녀 유나는 “노래를 부르다 보면 아빠가 곁에 있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유나를 아꼈던 아빠는 2014년 6월 갑자기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새 생명을 선물하고 유나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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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간 아빠를 떠올리며 기도하는 박유나양.

 합창단에 참여한 기증자 유가족 11명과 수혜자 10명의 심정은 남달랐다. 현행법상 기증자 측과 수혜자 측은 상대방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게 돼 있다. 기증자 유가족들은 막연히 ‘우리 가족의 일부가 어디선가 잘살고 있겠지’라는 소망을 가질 뿐이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수혜자들을 실제로 본 유가족들은 설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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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나양이 합창단에서 노래한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적은 편지. 수줍음이 많은 박양은 주로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2014년 12월 딸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박정순(47·여)씨는 “내 자식의 일부를 받은 사람에게 편지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도 딸이 생각나 눈물이 자꾸만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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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나양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박양의 꿈에는 아빠가 자주 나타나는데 할머니나 엄마 꿈에는 잘 안 나와서 `보고 싶다`는 소원을 적었다.

 ‘무명(無名)의 은인’에게 고마움을 품었던 수혜자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2011년 심장이식을 받은 성악가 임해철(59)씨는 “저희를 보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는 기증자 유가족분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앨범도 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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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 모인 생명의 소리 합창단 72명. 이들은 함께 연습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하나가 됐다.

 그로부터 6개월. 3곡의 하모니를 위해 매주 토요일 모였던 단원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가족’이 됐다. 슬픔으로 가득 찼던 시간들도 어느덧 밝은 미소와 웃음으로 바뀌었다. 합창단의 공식 활동은 지난해 10월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모두 끝났다.

하지만 다들 인연의 끈을 놓기 싫어 연말 송년회까지 연습을 이어 갔다. 올해도 서로 전화와 문자메시지, 카톡 등을 끊임없이 나누고 있다.

 2013년 기증 희망 서약을 한 유영희(71) 할머니는 “처음엔 말을 걸기조차 조심스러워 옆에서 바라만 봤는데, 요즘은 안부 연락을 안 하면 궁금해 못 견딜 지경”이라며 웃었다.

박정순씨는 “죄책감으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를 세상으로 다시 꺼내준 게 합창단이었다”며 “이젠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의형제나 의부녀를 맺는 경우도 속속 생겼다. 기증자 유가족 이봉화(58·경기도 김포시)씨와 수혜자 홍광진(39·전남 광양시)씨가 의형제를 맺게 된 건 ‘승용차’ 때문이었다. 매주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는 홍씨를 김포공항에서 연습 장소까지 태워다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형님” “동생”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됐다. 홍씨의 아들과 딸도 이씨에게 “큰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현주(26·여)씨는 다섯 살 때인 1995년 신장이식을 받았다. 병원 직원으로 일하던 그는 장기기증원 달력에 나온 유가족 송종빈(62)씨의 편지를 우연히 접하곤 감동을 받았다. 3년 전 큰딸을 교통사고로 잃은 송씨가 딸에게 보내는 글이었다.

 이후 송씨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합창단에 참여한 이씨는 지난해 말 “아버지의 딸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송씨는 눈물 속에 새로운 딸을 얻었고, 이씨는 아버지가 둘이 됐다.

이씨는 “친아버지도 4년 전 신장이식을 받아 장기기증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다. 친아버지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면 사랑하는 두 아버지와 함께 합창하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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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창단이 ‘힐링 캠프’가 된 데 고무된 장기기증원은 2기 단원 모집에 나섰다. 기증자 유가족과 이식 수혜자를 중심으로 50명을 채우는 게 목표다. 1기 멤버도 상당수 참여한다. 송종빈씨는 “죄책감과 슬픔으로 세상에 나오길 꺼리는 기증자 유가족들이 우리처럼 노래를 통해 치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뇌사 장기기증은 한 사람의 생명으로 또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의미 있는 일이지만 갑작스레 생사의 기로에 놓인 가족을 두고 힘든 결정을 내리긴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장기기증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02년 36명에서 지난해엔 501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2만6000명에 달하는 이식 대기자에 비하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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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증에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도 ‘나눔’을 가로막곤 한다. 이봉화씨의 부인 김애자(53)씨는 “장기기증으로 돈을 얼마나 받았느냐는 질문을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며 “자식을 팔아먹은 엄마 취급을 받을 때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들은 장기기증을 결정하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꿈은 소박하다. “사람들이 합창단을 보며 장기기증을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주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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